제11회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 김근우 작가를 만나다

 

“불광천에는 오리가 산다. 나는 돈이 없다”

 

장편소설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의 첫 구절이다. 나이 서른셋에 재산이라곤 4,264원이 전부인 ‘나’는 불광천을 산책하다 한 장의 구인 전단지를 발견한다. 자신이 키우던 고양이를 불광천의 오리가 잡아먹었다고 주장하는 한 노인이 가난한 삼류작가인 ‘나’와 주식투자를 하다 바닥까지 내려간 여자를 고용해 범인 오리를 잡는 일을 시키면서 벌어지는 사건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어르신, 고양이를 잡아먹는 오리는 없습니다’ 라고 현실을 일깨워 줄 것인가, 아니면 적당히 망상에 장단을 맞춰주고 아쉬운 대로 일당을 챙길 것인가. 허나 실성한 이의 헛소리라기엔 노인의 눈에 어린 비분강개가 너무나 진실되다. ‘나’는 기꺼이 추적을 시작한다. 무엇보다 성공보수가 천만 원이다.

 

소설의 배경은 불광천. 익숙한 공간이 무대이고 지나온 시간이 기록되어 있다. 거기에 황당한 사건이 더해져 궁금함을 불러일으키고 그 밑바닥엔 아름답고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흐른다. 역시나 작가 김근우는 은평구 토박이다. 세계일보가 주최하는 제11회 세계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가 우리에게 특별하게 다가오는 또 다른 이유이다.

 

 

▲ 신사동 '민종의집 랄랄라'에서 만난 김근우 작가   ⓒ은평시민신문

 

 

은평구를 배경으로 한 허구, 하지만 너무나 생생한 우리들의 이야기

 

4월 3일 신사동에 있는 ‘민중의집 랄랄라’에서 김근우 작가를 만났다. 그의 집은 응암역 2번 출구 근처다. 그의 집에서 민중의집까지는 걸어서 5분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지만, 그는 20분이나 걸렸다고 했다. 태어날 때부터 신경계 이상으로 하반신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수술도 아홉 차례나 받은 그는 정상적으로 학교를 다닐 수 없었기에 중학교를 다니다 말았다. 집에 있어야 했고 그는 자연스럽게 책과 친해졌다. 하지만 꼭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꿈을 꾼 것은 아니라고 한다.

 

“사실 어쩌다보니 작가가 됐어요.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 있는 동안에 심심해서 PC통신에서 소설을 연재했거든요. 그 당시 PC통신에서 글을 연재해서 출간하는 게 유행이었거든요. 저도 거기에 편승해서 책을 냈습니다. 그렇게 작가가 되어서는 어쩌다보니 거의 20년을 글을 쓰며 살게 됐습니다.”

 

1996년 PC통신에 <바람의 마도사>라는 소설을 연재하면서 90년대 판타지 소설의 붐을 이끌었던 건 그의 나이 열일곱의 일이었다. 그런 그가 유서 깊은 문학상의 대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에 문학계 일각에선 ‘개천에서 용났다’는 반응이다.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를 쓰게 된 계기에 대해 묻자 그의 대답은 또 ‘어쩌다보니’였다. 불광천에 자주 산책을 나가는데, 오리는 늘 보는 것이었다. 어느 날인가 고양이와 산책하는 주민을 보고, 그 모습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고양이와 오리를 연결해보면 어떨까 싶었다고 한다.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는 말 그대로 허구의 존재, 가짜를 상징하는 것이죠. 가짜지만 무의미한 것은 아니고 가짜이기 때문에 오히려 진짜보다 더 강력한 힘으로 사람들을 사로잡을 수도 있는 존재죠.”

 

‘진짜’ 글을 쫓는 운명으로서의 글쓰기

 

소설 속 노인의 캐릭터는 <모비딕>의 에이허브 선장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이라고 한다. 고래라는 운명을 쫓다 패배하는 비극적 영웅. <모비딕>의 결말을 따라간다면 노인에게도 에이허브 선장처럼 비극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김근우 작가는 그 운명에 비켜서서 다른 길을 생각했다.

 

“운명에 패배하는 비극적인 영웅상 같은 건 요즘 같은 시대에는 맞지도 않거니와 제가 감당하기엔 힘들더라고요. 패배라기보다는 굳이 표현하자면 그냥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그러니까 어떻게든 살아가는 사람들이요.”

 

그래서 결말은 따뜻하다. ‘가짜’ 속에 허우적거리는 인물들의 위기는 유사가족, 즉 ‘진짜’는 아니지만 ‘진짜’보다 더 힘이 있는 가족 같은 관계를 맺으며 극복된다. 김근우 작가는 거의 매일 불광천을 걸으면서 무슨 글을 써야 될까 고민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진짜’ 글을 써야겠다는 것이었다. 그에게 ‘진짜’ 글은 무엇일까?

 

“그걸 알았으면 벌써 쓰고 있었겠죠. 그걸 알아나가는 과정이 저의 글쓰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쩌면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처럼 진짜소설이라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데 제가 허상을 찾아다니는 것인지도 모르고요. 그렇게 쫓다가 허망하게 죽을지도 모르고요. 아니면 소설을, 진짜 글을 쓸 수 있게 될지 모르고요.”

 

‘어쩌다보니’ 작가가 되었다는 그에게 이런 대답을 들었을 때, 얼핏 모비딕을 쫓는 에이허브 선장의 모습이 스쳐지나간다. ‘진짜’를 쫓는 운명적 글쓰기라.

 

“운명이라기보다는 소설 속에도 나오는 얘기인데 진짜를 찾아내거나 가짜를 찾아내거나 다 모험이고 투쟁일 수밖에 없어요.”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의 배경인 은평구는 소설 전체 주제와도 맞닿아 있다. 그의 소설 속 은평구는 역시 가난한 동네다. ‘어쩌다가 이런 신세가 되었냐’고 묻는 질문에 여자 주인공은 자신의 이야기에 앞서 은평구에 대해 말한다. 그 이야기 속에서 김근우 작가는 7살부터 살았던 은평구에 대한, 불광천에 대한 기억들을 풀어낸다. ‘진짜 서울’도, ‘진짜 시골’도 아닌 경계의 구역, 자신의 가난한 삶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으며 벗어나고 싶었던 마을에 대해. 그래도 은평구는 그에게는 각별한 곳이다.

 

“태어난 곳이 고향이라고 한다면 제 고향은 여기가 아니겠죠. 전 서울에서 태어난 게 아니니까요. 하지만 누가 고향을 묻는다면 은평구라고 대답할 거 같아요. 7살 때 이사 와서 계속 이곳에서 살아 왔으니까요. 이사를 다녔어도 계속 은평구 안이었어요. 제겐 딱 고향이죠.”

 

은평구의 매력을 물었을 때 그는 집값이 싸다고 말하며 웃는다. 그리고 사람 냄새가 난다는 것. 그가 맡은 은평구 사람들의 냄새는 어떤 것인지 그의 소설 속 주인공에게서 짐작할 수 있다. 좀 궁상맞지만 따뜻한 바로 그 냄새.

 

그는 지금도 은평구를 배경으로 새로운 소설을 쓰고 있다고 한다. ‘고양이을 잡아먹은 오리’와 함께 또 한편의 따뜻한 소설이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당부하는 한마디를 부탁하자 그는 말한다.

 

“즐겁게 읽으셨으면 합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제 책이 아주 대단한 주제의식이나 심오한 메시지가 있어서 평생 연구해야 될 그런 책은 아니니까요. 그리고 책값이 사실 비싸지 않습니까? 13,000원이나 하니까요. 그 돈 내고 샀는데 즐거워야죠.”

 

동네만큼이나 참 소박한 당부 아닌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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