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평전환마을네트워크(준) 소란 인터뷰



작년 11월 29일 은평상상허브에서는 기후변화와 화석연료 고갈에 대비하기 위한 마을공동체 만들기, 이른바 은평 전환마을 설명회가 열렸다. 첫 발표자였던 소란(본명 유희정)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전환마을인 영국 남부의 토트네스에서 마을활동가로 일하며 겪은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그로부터 2개월이 지난 1월 15일 은평에서의 전환마을에 대한 비전과 올해의 구상을 듣기 위해 구산동의 한 카페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그는 새해 들어 20여 명과 함께 ‘공복친구들’이라는 소모임을 만들어 단식을 하고 있었다. 단식을 통해 몸속 노폐물과 나쁜 것을 배출하고, 몸의 면역력을 높이기 위한 모임이다. 2주간의 짧은 단식 모임이었지만 참여자들은 큰 효과를 봤다고 한다. 그는 “속을 완전히 비우면서 얼굴이 붓거나, 통증을 느꼈던 것들이 완전히 없어지는 경험들을 한 거죠”라고 말했다. 또 단식과 함께 비누나 치약, 샴푸와 같은 ‘화학제품 쓰지 않기 실천’도 했다고 한다. 이 역시 효과만점이었다고.

 

그런데 단식 모임이 전환마을 네트워크의 첫 활동이라는 그의 설명은 다소 의외였다. 탈석유과 탈핵, 에너지 전환을 목표로 하는 전환마을과 단식 모임은 쉽게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관성을 물었더니 다른 사람들도 같은 질문을 했다고 한다.


“은평의 지속가능한 선택, 전환마을 은평을 만듭시다.”함께 더 많은 시간을 나누고, 자본이 아닌 관계의 힘으로 자립을 위해 노력하면 전환마을은 쉽게 만들어지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전환마을 운동, 온화하지만 치열하다

 

화석연료를 폭발시켜 뽑아내는 에너지를 기초로 세워진 자본주의. 그는 생태적으로 산다는 것은 자본주의 생산에 의존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을단위에서 이웃들과의 관계를 통해 함께 자립하는 노력이 필요하단다. 에너지 전환은 본질적으로 사람 사이의 관계 전환이라고.

 

따라서 그는 전환마을 운동이란 거창한 운동이 아니라 일상에서 이웃들과 함께 벌이는 생활운동이라고 설명한다. “어떤 운동이라고 틀을 짜 놓으면 굉장히 큰일처럼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전환마을 운동은 생활운동인 것 같아요. 전환마을은 일상적으로 활동하고, 점조직처럼 한 사람이 바뀌어서 한 사람을 설득하면서 계속 전파가 되더라고요. 그런 생각으로 첫 모임을 시작했죠” 


생활운동이라도 전환마을 운동은 전복적인 성격을 띤다고 그는 말한다. 자본이 생산한 상품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에. 또 상품을 사기 위해 돈을 버는 노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생산과 소비에서, 자본에서 벗어난다. 마을에서 텃밭을 일궈 먹거리를 생산하고, 태양광발전소를 만들고, 자립적 경제공동체를 만드는 등 생태주의적 방식으로 생산하고 나눈다. 그는 “굉장히 온화하지만, 굉장히 치열한 운동”이라고 말했다. 단, 그 실천들은 재밌는 놀이여야 한다. “사람들은 재밌으면 하게 되잖아요”

 

‘이상한 마을’ 토트네스에서의 경험, “다른 삶은 가능하다”

 

그는 과거 성폭력 가해자를 상담하는 여성운동가로서 일했다. 피해자 상담도 어려운 데 가해자 상담은 더욱 힘든 일이라고 했다. 그는 정말 힘들어서 단지 쉴 목적으로 2009년 토트네스로 무작정 떠났다. 당시 토트네스는 지금처럼 유명한 곳은 아니었다고 한다. 전환마을이 무엇인지조차 잘 알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도착한 다음 날 바로 그곳이 이상한 동네란 걸 깨달았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이 품은 생태주의적 가치를 당당히 드러냈고, 마을 전체가 그 원리로 움직였다. 아침에는 마을에서 생산한 친환경 먹거리가 집 앞에 배달되고, 집에 딸린 정원에는 꽃과 나무 대신 먹을 것이 자라고 있다. 지붕마다 태양광 발전소가 올라가 있고 ‘토트네스 파운드’라고 하는 지역화폐를 사용한다.

 

무엇보다 소모임이 넘쳐나고 주민들의 참여로 활기찼다. 소모임에서 각자가 습득한 지혜를 나누며 생태적으로 사는 방법을 배운다. 야생초를 활용해 먹거리와 약을 얻는 기술도 나누는데 소란은 거기서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고추장 담그기 워크숍, 야생초 워크숍도 진행했다. 특히 도토리 워크숍은 마을 사람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고 한다. “영국인들은 도토리를 안 먹거든요. 도토리가 많이 떨어져 있는데도. 도토리묵도 쒔어요. 그 워크숍에 주민 200명이 신청을 했죠.”

 

서양음식하고 결합한 요리법도 개발하고 책도 출간했다. 그의 노력으로 이제는 전 세계의 전환마을에서 도토리 워크숍을 진행한다. 그의 워크숍이 유명해지자 BBC에서도 방송했다. 그 후 도토리 워크숍에 참여한 사람들은 ‘도토리 선진국’인 한국에 오고 싶어 한다고 한다. 그래서 소란은 그들과 교류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다.

 

그가 토트네스에서 얼마든지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본주의의 풍요에서 배제된 사람들이 그 속에 들어가기 위해 아등바등 노동하는 것이 아니라, 마을의 자립경제에 참여함으로써 충분히 만족할 수 있고, 여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 토트네스 주민의 수입은 많지 않다. 하지만 큰돈을 벌지 않아도 만족할 수 있는 삶이 있다.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충분한 훈련이 돼 있고, 함께 해 힘이 되는 이웃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돈 떨어지면 돌아와야지 생각하고 떠났던 그곳에서 마을활동가로 3년을 보냈다.

 

은평에서 전환마을 실험은 가능할까?

 

그런 삶이 은평에서도 가능할까? 무엇보다 인구 2만 5천 명 정도의 농촌 소도시인 토트네스의 실험이 거대도시 서울에 속한 50만의 은평에서 가능할지 궁금했다.  


그는 너무도 분명하게 그렇다고 답했다. 전환마을 운동은 특히 도시에서 더 활발하다고 한다. 도시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있고 일정한 거점을 중심으로 사람들의 관계가 만들어지면 훨씬 더 큰 상승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사람이 가장 중요한 자원이라는 것이다.

 

생태 자원이 없다는 지적은 오히려 우리가 어떻게 활용할지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이라고 그는 말한다. 옥상텃밭처럼 도시 곳곳에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은 많다. 그는 생태적인 공간으로 탈바꿈한 갈현텃밭을 예로 들며, 사람들의 욕구만 있다면 그런 공간을 또 만들 수 있다고 설명한다.

 

관 주도의 전환마을 만들기에 그는 매우 비판적이다. 그는 “사람들의 관계 복원이 중심이 되어야지 개발하듯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지적했다. 오히려 관이 돈을 들여서 전환마을을 만들고 성과로 포장하는 게 걱정이라고 한다. 전환마을의 본질을 왜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환마을은 주민들의 자발적인 의지가 없으면 절대 만들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곧바로 관의 지원에 의존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철칙이라고도 했다. 주민들이 에너지를 줄일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을 쌓은 다음에야 관의 지원을 받을지 말지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 굉장히 재밌네. 여기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도록

 

올해 전환마을 운동의 목표는 많은 소모임 만들고 활성화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은평에 있는 자원을 발굴해 소모임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연결하는 활동을 벌여나가기로 했다. 또 전환마을 운동의 거점 공간으로 로컬푸드 식당을 열어, 마을기업 형태로 운영해 나갈 계획이다. “마을부엌이나 건강한 먹을거리는 도시 농업의 한 부분이기도 하지만, 전환마을 운동에서는 핵심이거든요. 먹는 것은 쉽게 사람들을 모으고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고 보니 그가 구상하는 모임 대부분은 먹는 모임이었다. “그래서 술 만들기 모임도 만들 거고요. 이번에 순창에 장 담그기 체험을 갔다 오면 발효 모임도 만들 거예요. 다행스럽게 공복친구들도 좋은 먹을거리 모임으로 바뀔 거예요. 이런 식으로 확장하면서 쭉 거미줄처럼 퍼져 나가지 않을까. 거미줄을 쳐놓으면 언젠가 걸리겠죠. 사람들이 ‘여기 굉장히 재밌네. 여기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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