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진실규명 외치는 이은덕 씨

“세월호가 물속으로 가라앉던 밤은 추웠어요. 그래도 어떻게 아이들을 구하겠지 생각하며 눈을 붙였죠. 자다가 추우니까 이불을 끌어당기는데 아이들이 생각났어요. 애들이 얼마나 추울까?”

평범한 주부였던 이은덕 씨는 세월호참사를 만나면서 삶이 많이 달라졌다. 구조될 줄 알았던 아이들은 한 명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고 아직까지 시신조차 찾지 못한 실종자 수는 10에서 멈춰 버렸다.

“가만히 집에 있으려니 미쳐 버리겠고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근데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밖에 있을 줄을 몰랐어요”

답답한 마음에 광화문에 나왔고 일주일, 길어도 한 달이면 무슨 변화가 있지 않을까 기대를 했지만 어느새 시간은 훌쩍 흘러 넉 달이 지나 버렸다. ‘나는 할 만큼 했으니 집으로 돌아가야지’ 하는 생각도 했다. 광화문에 안 나간다고 누가 뭐라 할 사람도 없었다. 빨갱이다, 나쁜년들하며 욕을 하는 것도 듣기 싫었고 사람들의 싸늘한 반응도 견디기 힘들었다. 

“그러다가도 안 되지 싶은 거에요. 6월초에 은평 사람들 몇몇과 안산분향소에 갔는데, 정말 가서 보니 기가 막히더군요. 눈물만 흘리다 아이들하고 약속을 했어요. 너희들을 대신해서, 너희 부모님을 도와서 끝까지 진실을 밝히겠다고……”

그녀의 말처럼 세월호 참사를 만나기 이전의 삶은 평범했다. 갈현동에 신혼살림을 차리고 24년을 살았고 지금은 대학생이 된 예쁜 딸을 하나 낳았다. 영화 보는 걸 너무 좋아해서 영화동아리활동을 했고 일 년이면 백 여 편의 영화를 보았다. ‘인셉션’을 최고의 영화로 꼽고 하정우를, 로버트 드니로를 좋아한다. 음악도 좋아해서 2000년부터 7년 동안 사이버자키로도 활동했다. 정치의 ‘정’자도 관심 없었고 진보니 보수니 따지는 것도 싫어했다. 교회에서 봉사활동하고 갈현동에선 갈곡리놀이터 만들기에 관심을 갖고 활동했다.

좋아하는 건 많았지만 생활이 여유로웠던 아니다. IMF, 전세대란 등을 겪으면서 어렵고 힘든 시간도 많았다. 

하지만 세월호는 그녀를 세차게 흔들어 버렸다. 그렇게 좋아하던 영화도 세월호 참사이후엔 거의 보지 못했고 대신 지난 52년간의 삶을 되돌아보았다. ‘내가 뭘 너무 모르고 살았구나’ 그동안의 무관심에 대한 죄책감도 컸다. 그저 우리식구 배부르고 등따시면 된다 싶었던 게 허망하게 다가왔고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섰다. 그녀는 다음카페 세대행동과 함께 하면서 일주일에 최소 두 번은 세월호 유가족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광화문에서 혜화동에서 진실을 알려달기 위해 마음을 모으는 서명작업 활동을 하고, 홍보활동을 돕는다. 

“날은 추워지고 세월호는 점점 잊혀지겠죠. 진실을 밝히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거에요. 하지만 세월호 문제만큼이나 중요한 게 바로 민영화 문제에요”

그녀는 세월호 문제에만 갇혀있고 싶지는 않다고 한다. 세월호 진실을 밝히는 일은 멀고도 험한 길이고 꼭 밝혀내야 하는 일이지만 당장 우리 삶을 흔들 철도, 의료 민영화 문제 등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고 싶어요. 우리 가족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사회에도 좀 더 관심을 갖고 눈을 넓히고 싶고 봉사도 더 열심히 하고 싶어요”

세월호 문제가 잘 해결되어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면 무얼하고 싶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그토록 좋아하는 영화도 실컷 보고 역사공부도 열심히 하고 봉사활동도 다양하게 해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다. 사람이라면 아니 사람이기에 가져할 너무도 당연한 따뜻한 마음을 보여 준 밝은 사람 이은덕 씨를 은평에서 자주 만나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그녀의 따뜻한 마음과 용기에 감사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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