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번동 수제화소상공인협동조합 매장을 가다

▲녹번동에 있는 수제화소상공인협동조합 1호 매장    ⓒ은평시민신문

은평에 자리 잡은 청년 연극인, 수제화에 빠져들다

정석규 이사장(44)은 원래 연극인이다. 그가 속해있던 극단 ‘미추’는 한국 ‘마당극’의 형식을 정립하고 발전시키며 현재까지도 완성도 높은 작품들을 활발하게 내놓는 유서 깊은 극단. 그가 20대 시절 젊은 연극인으로써 열정이 넘치던 1990년대, 아직 개발의 흔적이 닿지 않은 진관동에 살았던 문화예술계의 ‘대선배’들과 왕래하면서 은평과 인연을 맺었다.

그는 극단 ‘미추’ 소속이자 마당극과 판소리의 대가인 연극배우 김종엽의 수제자이기도 하다. 현재 김종엽 선생은 은평뉴타운 개발 이후 양주시 송추로 이사가 독일의 ‘숲 유치원’같은 교육철학을 가진 자연유치원 ‘아름솔 유치원’을 운영 중이기도 하다.

“원래 마포구가 고향이에요. 그런데 외삼촌이 중풍으로 쓰러지셔가지고, 돌아가실 때까지 저희 집에서 7년간 모셨어요. 저희 어머니가 병수발을 하셨는데 너무 힘드시잖아요. 밖에도 못나가고 밥 떠먹여드리고 대소변 받아드리고... 그런데 어머니가 제일 친한 친구 분이 역촌동 사세요. 그러면 덜 답답할 거 같아서 역촌동에 자리 잡았다가, 뉴타운 생기고 한 5년 살다가, 2년 전에 지금 사는 곳(응암동)으로 이사 왔죠”

사실 그 자신도 신발과 관련된 일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한다. 특히나 전문가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수제화와 관련된 일은 더더욱. 발단은 10여년 전, 동생이 일하던 신발업체를 퇴직하면서 받은 3000켤레의 구두를 판매하게 되면서였다. 부업 개념으로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판매가 잘 되서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바빴다고.

“아무런 사전조사도 없이 뛰어든 일이었죠. 그런데 장사를 하다보니 기존 신발의 문제점에 대해 알게 되고 이를 보정하면 좋은 사업 아이템이 되지 않을까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됐어요. 키높이 구두같은 것도 당시엔 고객이 뒷축도 정하고 안굽도 정하고 했는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어요. 그때 수제화라는 분야에 눈을 뜨게 되고 나도 모르게 빠져든거 같아요”

 ▲매장에는 가지각색 다양한 종류의 수제화들이 판매되고 있다. ⓒ은평시민신문
▲매장에 진열되어 있는 예쁜 신발들    ⓒ은평시민신문

‘조합’ 이름으로 주문생산, 유통과정 줄이니 소비자 ‘웃음’

수제화소상공인협동조합(이하 조합)은 녹번동에 1호 매장이 있다. 정 이사장은 “은평에 매장을 낸 이유는 집에서 가까웠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매장을 운영하며 은평에도 수제화 기술자가 생각보다 많았다는걸 느꼈다. 가끔씩 일자리를 찾는 분들도 계신다고.

조합은 작년 7월에 조합원 5명이 100만원씩 출자해 시작했는데 현재 월 평균 매출 2000만원이 훌쩍 넘는다. 현재 여의도와 ‘수제화의 메카’ 성수동에 분점을 낸 상태.

기존의 수제화협동조합과 다른 점은 수제화 장인들이 직접 만든 생산자협동조합이 아니라 패션디자인, 유통, 마케팅, 회계 등 전문가들이 모여서 만들었다는 것. 의견을 모아 조합을 만드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지만 사실 정 이사장 주변에서 수제화에 관심 있던 지인들이었기 때문에 초기과정은 순탄했다.

아직까지 사람들은 ‘수제화’라면 왠지 비쌀거 같다는 인식이 있는게 사실이다. 그런데 녹번동 매장에 진열된 수제화들은 1켤레에 평균 가격이 7~9만원 선이다.

“개인이 수제화 사업을 할 때, 고객이 원하는 디자인의 수제화를 택해도, 일정 수량이 안 되면 마진이 남지 않기에 공장에서 주문을 거부하죠. 그런데 협동조합의 형태를 띠니까 주문량을 모을수 있게 되니 오더 들어가는게 쉬워졌어요”

게다가 중간유통과정을 생략하고 조합에서 직접 제품을 들여오고, 브랜드값이 없으니 소비자들은 좋은 품질의 수제화를 아주 합리적인 가격에 구매할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대기업 메이커에서 30% 할인해 23만원 가량에 판매하는 수제화와 유사한 제품을, 조합에서는 고객이 직접 패턴, 디자인, 색상을 선택하고 사이즈까지 맞춰서 13만원 정도에 판매하고 있다.

녹번동 매장 매니저(좌), 정석규 이사장(우)    ⓒ은평시민신문

‘기술력 확보와 기술 가치 전수’가 목표, 올 가을 체험형 공방 낼 예정 

구두 1켤레를 만들기 위해서는 재단, 갑피, 창, 골 작업 등의 큰 공정과 각각의 세부적인 공정들이 필요한데 정 이사장에 따르면 현재 국내엔 그 작업을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힘으로 해낼 수 있는 장인이 거의 없다. 시중에 판매되는 수제화들도 사실은 기성화같은 공정을 통해 만들어진게 대부분. 조합도 거기서 자유로울 순 없다.

“유럽에 가면 100년, 200년의 전통을 가진 구두 장인들이 있죠. 과거 한국 신발기술자들이 기능올림픽을 석권했거든요? 그런데 제품의 경제성을 따지다보니 고유한 기술에 대한 평가가 절하됐어요. 기술력이 죽으면 소비자들이 비싸고 품질 낮은 신발들을 살 수 밖에 없죠. 현재 중국제 기성화들이 물밀듯이 들어오고 장인들은 고령화되는데 이 속도면 10여년 후에 한국 수제화 기술은 없어질지도 몰라요. 현재 엔드(End)까지 전 과정을 다루는 장인들과 그 기술력, 기술의 가치를 지켜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조합은 올 가을, 수제화 기술을 가진 장인들과 방문객이 전체 공정을 지켜볼 수 있고 수제화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는 체험형 공방을 낼 예정이다.

정 이사장은 “전 과정 장인 중 구기동에 살고 계시는 분이 있으신데, 저희 협력업체 작업장을 운영하시다 지금은 의족, 의지 등을 만드는 회사의 신발팀장으로 계십니다. 이 분도 저희가 공방 만들 때 도와주시기로 약속하셨어요”라고 알렸다.

 ▲평소 발 건강이 좋지 않은 정민구 인턴기자가 직접 발 건강 테스트를 해보았다. 좌측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족압측정, 보행습관측정, 풋스트로폼 측정 ⓒ은평시민신문

정 인턴, 발 건강 테스트 받다! 

녹번동 매장에선 수제화 판매만 하고 있지 않다. 방문객의 발 사이즈뿐 아니라 족압, 보행습관, 발 폭 등을 측정하고 건강을 체크해 맞춤형 밑창의 견본으로 삼는다. 뿐만 아니라 건강이 좋지 않은 고객을 위한 무릎관절화, 당뇨화 등을 주문받고 있다. 이런 건강화는 전체 매출액에서 평균 3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50대의 색소폰 연주자 분이 있었는데, 이분은 발이 아파서 평생 동안 구두를 한번도 못 신어보셨대요. 발 사이즈가 295인데 발 볼 사이즈가 35에요. 기성화엔 이런 사이즈가 없거든요. 일반 수제화 매장에서도 이런걸 맞추는건 귀찮은 일이구요. 그런데 저희 매장에서 신발을 맞추시고 잘 신고 다니세요”

백문이 불여일견. 함께 취재를 온 정민구 인턴기자는 어릴 때 평발이었다가 군 생활을 하면서 족저근막염 등으로 오랫동안 고생을 했다. 정 인턴의 발 건강상태는 어떤지 매장에 있는 기계로 한번 측정을 해봤다.

“보시면, 오른발이 약간 팔자 형태로 구부러지는데 12cm 정도 팔자 걸음이 되고 있어요. 이때 골반이 왼쪽으로 내려가서 걸을 때마다 압력 때문에 뻐근한 느낌이 드는거거든요. 이런 경우 발바닥 모양에 맞춰 교정용 안창을 깔아드리는데, 기존 교정화는 깔창만 넣으니깐 발등이 아프죠. 저희는 구두 등도 같이 높여드려요”

 ▲컴퓨터프로그램을 통해 정민구 인턴기자의 발 건강 테스트 결과와 진단이 내려진다    ⓒ은평시민신문

 ▲당뇨 환자들을 위하여 특별히 제작된 당뇨화 ⓒ은평시민신문

“10대, 20대 여성 처음부터 높은 힐 신으면 발, 척추에 무리”

발 건강 테스트는 족압기, 보행측정기, 브라노(발 가장자리)측정, 풋스트로폼(아치형태)측정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측정기계에 입력된 데이터를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정리하고 결과를 진단한다.

현재 이 과정은 김연아 전 국가대표 등 스포츠 선수들의 신발을 제작하는 족부학 전문가, 신발 관련 특허 70여개를 보유한 생명공학박사 등과 협력해 갖추어진 것.

“요즘 10대, 20대 여성들이 처음부터 힐을 너무 높게 신는 경향이 있는데 발과 척추건강에 안좋고 ‘안짱다리’가 될 우려가 있죠. 지난번 한 20대 여자분이 높은 구두를 신으면 자꾸 앞쪽으로 넘어지게 된다고 해서, 신발바닥을 틀어줬더니 잘 걷더군요”

그래서 그는 10대, 20대 여성들이 처음 힐을 신는다면, 수제화를 신는 것이 좋지 않을까 살짝 운을 띄었다.

구두 골 만드는 공정을 견학하다 

우리는 정 이사장의 안내를 받아 정릉에 있는 한 협력업체를 잠시 방문했다. 이곳은 다른 작업장에서 갑피, 창 작업 공정을 마치고 온 재료를 발 모양의 골(라스트)을 이용해 이어붙이는 곳이다. 본드 냄새와 약품 냄새가 진동하는 작업장은 추석 연휴를 앞두고 분주해보였다.

이곳의 공정은 간단하게 나열해도 갑피를 골에 대는 ‘토라’, 신발 모양대로 뒷축을 이어붙이는 ‘휠러’, 열을 가해 모양을 유지하는 ‘세팅’, 가죽표면을 연마하는 ‘그레딩’, 밑창에 본드칠을 해서 이어붙이는 작업, 약품으로 코팅처리를 하는 ‘사상’, 상표 붙이고 마무리를 하는 작업, 포장으로 나누어진다.

 ▲정릉에 있는 한 수제화작업장. 이곳은 구두의 갑피와 창 사이를 이어붙이고 모양을 내는 골(라스트) 작업을 주로 한다.  ⓒ은평시민신문
 ▲주문해 온 가죽을 재단해서 갑피 작업장으로 보내는 공정   ⓒ은평시민신문

공장 사장님은 형제가 가업을 이어받아 수제화 작업장을 운영 중. 그는 “원래 정릉엔 수제화 공장이 많았는데 지금은 인터넷 판매, 값싼 외국제에 밀려 많이들 문을 닫았다. 주문량도 하루 800~900족이었는데 최근 경기가 안 좋다보니 70~80족까지 줄었다”고 전했다.

각 공정을 맡아서 작업하는 기술자들은 평균 30~40년 이상의 경험이 있는 장인들이다. 정 이사장은 “이분들은 주로 물건량에 따라 노임을 받는 도급제에, 작업 환경이 열악한 편이다. 향후에 장인, 생산자, 판매자를 아우르는 수제화직원협동조합을 설립해 전국에 구두 수선과 제작을 할 수 있는 작업장을 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구두 뒷축을 이어붙이고 모양을 유지하는 '휠러' 기계  ⓒ은평시민신문
▲섭씨 400℃의 열을 20분 동안 가하여 신발 모양을 내는 '세팅기'  ⓒ은평시민신문
▲작업장에서 일하는 장인들은 한가지 공정만 30~40년 이상씩 해온 베테랑들이다.    ⓒ은평시민신문

수제화는 비싸고 왠지 나와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는 편견을 깨게 한 수제화소상공인협동조합 방문. 궁금한 사람은 녹번동 42-24 1층에 있는 매장을 찾아가면 된다. 전화번호는 070-8920-2123, 쇼핑몰 사이트는 http://www.toetoo.co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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