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이야기

오늘 나무 이야기는 ‘팽나무’다. 팽나무 이야기를 하기로 결심한 이유는 심리기획자인 이명수님의 다음 글을 읽고서이다. “팽나무 알은 대나무로 만든 장난감총의 총알로 쓰이는데 총알이 날아갈 때 ‘팽’ 하는 소리를 낸다고 해서 팽나무란다. 팽목항의 팽목이 바로 그 팽나무다.

슬픔과 고통이 총알처럼 팽팽 날아다니는 현장. ‘지금 한국에서 가장 슬픈 이름이 된 팽목항’ 이라는 누군가의 말이 생각나서 어둠에 잠겨 있는 팽목의 바다를 가만히 바라봤다(한겨레21)”

실은 세월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팽나무면 이석이조이겠다 싶었다. 잊지 않겠다더니 평생 잊지 않겠다더니 얼마나 지났다고 이제 그만 잊자고 한다. 심지어는 지겹다는 사람도 비난하는 사람도 생겼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힘센 자는 철저한 조사와 반성을 통해 국가개조를 하겠다더니, 필요하면 언제든 찾아오라며 눈물을 흘리던 때가 엊그제인 것 같은데, 유가족이 만나자 해도 만나주지 않고 목숨을 걸고 수사권과 기소권이 보장되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데 자기가 나설 일이 아니라고 나 몰라라 한다. 그러면서 민생을 이야기한다.

요즘도 세월호 관련기사를 읽으면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가슴이 답답해지는데, 생존자, 유가족, 실종자 가족은 어떤 심정일까! 나만 아니라 무릇 측은지심의 감정을 가진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고 있을 이 고통과 트라우마를 어찌해야만 할까! 상식으로 생각해보면 그 치유의 확실한 첫걸음이 철저한 조사를 통한 반성과 재발방지일 텐데, 그 분명한 치유와 새로운 희망의 길을 결코 갈 수 없는 상황이라니, 그리고 그 길을 결사코 막아서는 이들이 있고 우리는 이 상황을 어찌하지 못하고 있으니, 어찌하면 좋을까!

아직도 전쟁은 진행 중이다. 어쩌면 총알이 팽팽 날아다니는 현장은 팽목항만이 아니라,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모든 곳일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잊을 수 없고 잊어서도 안 된다. 팽목항의 팽나무는 안녕하신가?

팽나무 이름유래는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다. 초여름 날이면 아이들은 ‘팽총’을 만들어 놀았다. 콩알만 한 굵기의 열매를 따다가 작은 대나무 대롱의 아래위로 한 알씩 밀어 넣은 다음, 위에다 대나무 꼬챙이를 꽂아 오른손으로 탁 치면 공기 압축으로 아래쪽의 팽나무 열매는 팽하고 멀리 날아가게 된다. 팽총의 총알인 ‘팽’이 열리는 나무란 뜻으로 팽나무란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익은 열매는 달콤하기까지 하다. 아이들도 좋아하지만 새들이 무척 좋아한다. 새들의 도움으로 팽나무는 멀리 퍼져 나간다. 

팽나무는 포구나무라는 다른 이름도 갖고 있다. 주로 남부지방에서 그리 부른다. 배가 들락거리는 갯마을, 포구에는 어김없이 팽나무 한두 그루가 서 있었던 탓이다. 팽나무가 자라는 환경을 잘 보여주는 이름이다. 아마, 팽목항의 이름의 유래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팽목항 마을 어딘가에 자라고 있을 팽나무는 묵묵히 4월 16일을 목도하고
이후 우리사회에서 벌어진 일들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팽나무는 오래 사는 나무이다. 느티나무처럼 1,000여 년을 살지는 않지만, 500여 년은 예사로 산다. 오래된 나무를 개수로 따지자면 느티나무 다음으로 많다고 한다. 팽나무는 추운 지역보다는 따뜻한 남쪽 그것도 바닷바람을 쐴 수 있는 곳을 좀 더 좋아한다고 한다. 그러자니 남부지역의 섬지역이나 제주도에서 오래된 나무를 쉽게 볼 수 있다.

오래 사는 나무는 자연스럽게 신격을 부여받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오래 산 팽나무는 마을의 당산목이 되는 경우가 많다. 신격화된 나무는 인간에게 특별하다. 인간이 안녕을 빌면 들어주고, 풍년을 기원하면 풍년이 들 것 같았다. 그렇게 믿으니 정말 그렇게 되기도 했다.

봄에 일제히 싹이 트면 그래서 풍년이 들 것이라 좋아했고 동쪽에서 싹이 나면 동쪽이 풍년, 서쪽에서 먼저 싹이 나면 서쪽이 풍년이라고 믿었다. 믿음은 전설을 낳기도 했다. 그래서 팽나무에 얽힌 전설은 마을마다 무수하다.

팽나무의 쓰임새도 제법 다양하다. 스카톨, 인돌 등을 함유하고 있어 진통, 소종에 효능이 있어 혈액 순환을 빠르게 하고 요통, 관절염, 월경 불순, 심계 항진, 습진, 종기를 다스리는 데 효과가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5리마다 이정표로 오리나무를 심었던 것처럼 일본에서는 1리마다 이정표로 팽나무를 심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팽목항의 팽나무는 우리의 안녕을 들어주실 것인가?

팽목항 마을 어느 구석에 자라고 있을 팽나무는 묵묵히 4월 16일을 목도하고 그 이후, 우리사회에서 벌어진 일들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팽목항의 팽나무는 어쩌면 먼 훗날 하나의 전설을 간직할 것이다. 그 전설의 내용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어떤 내용을 어떻게 써 내려 갈 것인지는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려 있다. 

이반 일리치는 이런 말을 했다. “미래는 삶을 잡아먹는 우상입니다. 우리에게는 미래가 없습니다. 오직 희망만이 있을 뿐입니다.” 나는 수사권과 기소권이 보장되는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강력히 촉구한다. 그게 전설의 시작이었다.

<참, 진관사 가는 길, 한옥마을 단지가 끝나는 지점에 커다란 느티나무 보호수 두 그루가 자라고 있다. 그 나무 사이로 누가 심었는지 자연스럽게 자랐는지 모를 작은 팽나무가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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