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은 지났지만, 여전히 담벼락을 분홍색으로 물들이는 아름다운 꽃이 있다. 능소화다. 6월 24일에 꽃을 보았고, 지금도 동네에서 어렵지 않게 꽃을 볼 수 있으니 여름철에 피는 대표적인 꽃임에 틀림없다. 동명여고 담벼락을 포함해서 연신내역에서 구파발역 방향으로 200m 정도 올라오면 마주하는 담벼락에도 길게 능소화가 자라고 있다. 정원이 있는 단독주택에서도 심심치 볼 수 있어, 만나게 되면 단박에 알아 볼 수 있다. “아~ 저 꽃!”

꽃이 제법 크고 색도 나름대로 화려해 기품 있는 식물이라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하늘을 향해 오르는 높이 오르는 능소화

능소화는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꽃이 아니다. 그래서 숲속에서는 절대 만날 수 없다. 만약, 만난다면? 그건 100% 누군가가 심은 것이다. 능소화는 중국에서 들어온 식물이다. 중국의 <시경(詩經)>에 나오는 소지화(笤之華)를 능소화로 추정한다면 중국에서는 적어도 3천 년 전부터 사람들이 심고 가꾸었던 나무임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능소화가 들어온 시기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알 수 없다. 다만, 부인병에 널리 쓰이는 약재로 일찍부터 재배한 것은 확실해 보인다.

능소화는 원래 남부지방에서 주로 심던 나무여서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서울에서는 매우 보기 드문 꽃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서울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이름이 여러 가지 인데 하나같이 재미있다. 우선, 능소화란 이름, 중국이름 능소화(陵霄花)를 차용한 것이다. 업신여길 또는 능가할 능, 하늘 소, 꽃 화이니 하늘을 업신여기는 또는 능가하는 꽃이란 뜻인가? 여하튼 덩굴이 나무에 달라붙어 하늘을 향해 높게 오르는(凌) 특성에서 유래된 이름임에는 틀림없다.

처녀꽃이라 부르기도 한다. 보통 꽃들은 꽃잎이 하나하나 떨어지는데 능소화는 동백나무처럼 꽃이 통째로 떨어진다. 이를 보고 시골에서는 처녀꽃이라 부른다는데, 왜 처녀에 비유하는지 잘 모르겠다. 다른 이름으로는 양반나무도 있다. 혹자는 추위에 약해 봄철에 새싹이 다른 나무에 비해 늦게 나오고 동작이 느림을 양반에 비유한 데서 유래한 이름이라 이야기하고 혹자는 예전에 양반들만 정원에 심을 수 있는 나무였기에 양반나무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일반 백성이 이 나무를 심었다면? 관가로 끌려가 곤장을 맞았단다. 지금 관념으로는 어이없지만 신분사회였던 조선이라면 가능했을 이야기이다. 어떤 자료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조선시대에는 양반도 품계에 따라 심는 나무가 정해져 있었다고 한다. 정6품은 어떤 나무, 정5품은 어떤 나무하는 식이다. 사람은 참으로 구분 짓기 좋아하는 동물인가 보다.

오늘이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만, 예전과 달리 지금은 돈으로 그것이 구분된다는 정도가 달라졌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옛날 평민들은 꽃을 심을 만한 정원이 딸린 집을 소유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굳이 능소화를 못 심게 하지 않았더라도 형편상 심을 수 없었을 것이고, 설혹 그런 땅이 있더라도 배추와 무를 심어 먹었을 테지, 보는 것 외에 특별한 쓰임새가 없었던 능소화를 심었을까 심다. 그러고 보면 여유로움과 즐김이란 것도 옛날이나 지금이나 경제력에 좌우되는 것인가?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꽃가루가 위험하다는 것은 속설

능소화하면 예전에 들었던 무서운 이야기가 있다. 꽃가루가 눈에 들어가면 눈이 실명한다는 이야기였다. 나중에 자료를 찾아보니 터무니없는 이야기! 자세히 보면 능소화 수술 끝에 달리는 미세한 꽃가루에 갈고리 같은 것이 있다고 한다. 꽃가루가 눈에 들어가면 좋을 리 만무하지만 실명한다는 이야기는 억측이 심한 것이다. 꽃가루 자체가 0.02~0.03mm 정도로 너무 작기 때문에 일부러 눈에 넣고 심하게 비비지 않는 다음에야 큰 문제가 없다.

능소화는 기어오르는 식물이다. 대부분의 덩굴 식물은 덩굴손을 가지고 다른 물체를 휘감아 오르며 자라지만 능소화는 튼실한 줄기가 꼬이며 자라 오르다가 줄기의 마디에서 생기는 흡반이라고 하는 뿌리를 건물의 벽이나 다른 나무에 붙여 가며 타고 오른다. 담쟁이와 같은 원리이다.

여름은 능소화라는 아름다운 꽃이 피는 계절이다. 예전에는 양반들만 심었다지만, 지금은 누구나 마음만 있으면 심을 수 있는 나무이다. 다만, 누구나 능소화 정도 심어 가꿀 수 있는 정원이 있는 자기만의 집을 누구나 어렵지 않게 기본으로 누릴 수 있는 세상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발칙한 상상! 그리고 누구의 말처럼 ‘저녁과 주말을 누리는 삶’이 보장되는 세상이라면 금상첨화겠다. 한 여름날 무더위 밑에서 꾸는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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