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나무가 아니라 풀 이야기를 할까 한다. 나무와 풀은 어떻게 다른가? 나무는 위뿐만 아니라 옆으로도 자라지만 풀은 위로만 자란다. 온대지방에 자라는 나무는 그래서 나이테가 있지만 풀에는 나이테가 없다. 또한 겨울이 되어도 나무는 지상부가 살아 있지만 풀은 땅속뿌리나 씨앗 형태 또는 지면에 바싹 붙어 있는 형태로 살아있는 조직이 겨울을 난다.

식물을 분류하고 유형을 나누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살고 있는 자생종과 외국에서 들여온 귀화종으로 구분하는 것도 그 중 하나이다. 귀화식물은 원래 우리나라에서 살지 않는 식물인데 여러 이유로 국내에 들어와 야생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는 식물을 말한다.

그런데 귀화식물이 전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 일부 귀화식물은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농업에도 큰 피해를 입히고 있다. 미국 서부를 장악한 회전초라고 잡초가 그런 예다. 러시아 대초원에서 온 식물이라고 한다. 정식 명칭은 러시아엉겅퀴(Salsola tragus). 잡초계의 칭기스칸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다. 원래 우랄 산맥 동쪽에 있는 유라시아 대초원에서 번성하던 러시아 엉겅퀴는 1800년대 후반 아마 씨와 섞여 미국으로 건너간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미국이라는 새로운 땅에서 놀랍도록 번성했다. 이 식물들은 해마다 겨울이 되면 죽고 줄기는 바싹 말라 한바탕 바람이 불면 부러진다. 부러진 줄기들은 구르고 또 구르면서 서로 뭉쳐져 보기 흉한 갈색 가시넝쿨 덩어리가 되는데 이런 특성 때문에 회전초란 이름을 얻은 것 같다. 이 잡초 덩어리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수km에 걸친 길을 따라 구르면서 씨앗을 자그마치 25만 개나 퍼뜨릴 수 있단다. 미국에서는 이 식물 때문에 곤혹을 치르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회전초 못지않은 식물이 있다. 바로 가시박이다. 가시박은 북아메리카가 고향인 1년생 덩굴식물이다. 한번 자리 잡으면 하루 30cm까지 쭉쭉 뻗어나가 닥치는 대로 다른 식물을 뒤덮어버리기 때문에 숲과 하천은 물론 인근 농지와 비닐하우스 등을 순식간에 초토화시킨다. 씨방을 덮은 길고 억센 가시 때문에 수작업으로 제거하기 힘든 데다 다른 식물의 성장을 저해하는 화학물질을 분비하기 때문에 고향인 미국에서도 경작지에 가시박이 단 한 그루라도 있으면 밭 전체를 갈아엎도록 규정하고 있단다.

가시박은 어떻게 우리나라에 들어왔을까? 1970년대 초반과 후반 각각 경북 안동의 논둑과 경기 포천의 군부대 주변에서 무성한 가시박을 보았다는 주민의 증언이 있어 그때부터 축산단지에 사료와 함께 유입된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같은 땅에 같은 작물을 해마다 심어 가꿀 때 나타나는 지력 약화 같은 피해를 줄이기 위해 북미에서 10여년 전에 들여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호박만 심던 밭에 어느 해는 지력 약화를 막는다면서 호박 대신 가시박을 심었다는 거다. 일부에서는 ‘안동오이’ ‘안동대목’ 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렇게 생존력이 강한 특징을 살려 안동 지역에서 오이덩굴에 접붙이는 방법을 쓰면서 붙은 이름이란다.

이 식물은 1990년대까지는 경북 안동 충북 충주 강원 춘천 외에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전국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기후 변화로 집중호우나 큰비가 잦아지면서 가시박의 씨앗이 불어난 물을 타고 전국으로 퍼졌기 때문이라는 진단이다. 서울도 예외가 아니다. 밤섬 올림픽공원 노들섬 강서습지 여의도샛강생태공원 등 한강변을 따라서도 굉장히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다행히 은평구 관내에서는 아직 보지 못했다. 확산되고 있는데 모르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주의 깊게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가시박은 굉장히 빨리 자라고 굉장히 많은 씨앗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그들의 생존전략이다. 그런데 이들이 확산되는 데는 사람들도 한몫을 했다. 건강한 생태계에는 귀화식물이 잘 들어오지 못하고 들어오더라도 쉽게 확산하지 못한다. 그런데 사람들의 영향으로 하천과 숲의 생태계가 많이 교란되면서 그 빈틈으로 가시박이 쉽게 들어오고 확산되는 것이다. 4대강 사업이후로 4대강 지역에 가시박이 급속히 번지고 있는 것이 비근한 예이다.

가시박은 민간한 식물이다. 무게가 0.25g밖에 되지 않는 끈을 느낄 수 있고 이런 능력으로 덩굴이 가까운 물체에 몸을 감기 시작한다. 무게가 약 2g 정도는 되어야 겨우 느낄 수 있는 인간에 비하면 탁월한 능력이다.

가시박을 나쁘다고 할 순 없다. 가시박은 가시박대로 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할 뿐. 다만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생태계에 있어서 과함은 다른 누군가의 큰 희생을 전제로 한다. 그러니 과함은 함께 살기 위해 조절되어야 한다. 스스로 조절하지 못하면 외부의 도움이 필요하다. 우리가 가시박에 대해 관심 갖고 보살펴야 할 이유이다. 사람 사는 세상도 마찬가지일 듯!

저작권자 © 은평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