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시베리아 여행법9 -브리아트족 자치구 우스제르드

▲     ⓒ 이지상

나의 짐작이 맞다면 그이의 이름은 ‘소망’이란 의미를 지닌 발렌틴이다. 선사시대부터 수천 년을 쿠르칸 족으로 살았고 400여 년 전 몽골족으로부터 갈라진 사슴과 늑대의 후손 ‘브리아트’ 족의 샤먼이다. 브리아트 공화국의 수도인 울란우데 문화대학에서 공부했고 라마교 대학에서는 티베트 불교학을 연구한 수재이다. 바이칼을 ‘성스러운 바다’혹은 ‘샤먼의 호수’라 일컫는다면 이 땅의 주인은 바이칼의 샤먼인 발렌틴이다.
 
그러나 시베리아 샤먼의 과거사는 혹독함 그 자체였다. 알혼섬 불칸 바위 아래 있는 동굴에선 몽골 기병대에 실려 온 라마승에 의해 샤먼부부가 살해당했고 러시아의 본격적인 동진이 시작된 이후엔 코쟈크족 약탈자들 함께 온 러시아정교회 신부들이 샤먼들을 불태워 죽였다. 러시아 혁명(1917)이후 러시아 내전(1918-1920) 때는 브리아트 족 대부분이 백군의 아무르 코쟈크 부대에 편입됐다. 그 부대를 이끌던 운게른 스테른베르그 남작과 세묘노프 장군등은 승마와 산악기술에 능한 종족의 특성을 높이 샀고 그만큼 대우도 남달랐다.
 
당연히 내전을 승리로 이끈 볼셰비키세력과의 갈등이 있었다. 1929년 자신들의 가축을 국유화하기로 한 러시아 법률에 반기를 든 이른바 ‘샴발라 반란’은 그들에게 치명적 이었다. 약 3만5천명의 브리아트인이 죽었고 그중엔 수백 명의 샤먼이 포함되었다. 브리아트족 사회에서 샤먼은 지도자다. ‘다곤’이라는 화신(火神)을 숭상하는 그들에게 샤먼은 천상신인 탱그리(Tengry)와 인간세계의 중계자로서 마을사람들의 병을 치료해주고 손금 관상 등을 통해 예언을 하거나 각 가정의 안녕을 축원한다.
 
무엇보다도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임무는 제사의식을 주관하는 일이다. 가정사를 주제로 가족단위로 제사를 드리거나 철마다 종족의 풍요로운 삶을 위해 또는 가을 수확 전에 신께 감사드리는 ‘타일라간’이라는 제사를 드린다. 브리아트족에게 제사가 중요한 이유는 아마도 유목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     ⓒ 이지상

‘인류의 역사는 자연과의 투쟁’의 역사라고 정의한 칼.마르크스의 사고는 산업사회 이후에나 가능한 일이었다. 현재의 우리가 ‘미개한’이라고 부르는 농경사회의 인간은 철저하게 ‘자연으로써의 인간’이었다. 흉년이 들면 굶었고 병이 들면 죽었다. 초원의 맹수들을 두려워했으며 바람이 흐르는 방향을 소중히 했다. 인간의 생존에 관한 모든 것들은 신의 영역 이었다. 인간의 삶에 도움을 주는 것들은 모두 경외의 대상이었고 인간의 삶을 해치는 것들은 모두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인간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적었으므로 한줌의 햇살, 물 한 방울, 나무 한그루조차 함부로 다루지 않았다. 새 생명이 태어나는 것을 축복으로 여겼지만 죽음 또한 당연한 것이었다. 자연의 모든 것이 그러하듯이. 그러므로 유목민인 브리아트족의 천상신 탱그리(Tengry)는 곧 자연으로 생각해도 옳다.
 
자연을 경외하는 브리아트족의 전통
이르쿠츠크에서 알혼섬 방향으로 약 70km쯤 떨어진 곳에 브리아트 자치주인 우스제르드가 있다. 마을 입구에는 백마를 호령하는 브리아트 전사의 동상이 서 있지만 마을 안은 초라하다. 길은 비포장이어서 30도가 넘는 더위에 먼지는 폴폴 날리고 가로수는 군데군데 말라있다.
 
통나무를 켜서 지붕으로 덮은 버스 정류장은 있으나 버스가 없다 작은 구멍가게 앞에 원주민들 몇 명이 웅성댔는데 아마도 표를 끊는 것 같다. 나는 버스를 발견하지 못했는데 그들은 버스를 탄다. 내가 생각했던 대형버스가 아니라 12인승 승합차다. 그 동네의 버스가 이 작은 차라는 걸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것도 국산 쌍용 이스타나다.
 
러시아에서 국산차를 발견하는 건 눈뜨고 거리 나가면 되는 일이라 새삼스러울 건 없지만 그래도 이 한적한 곳에서 만나니 눈이 휘둥그렇다가 이역만리 러시아까지 차를 팔아먹고도 무슨 욕심이 있어서 노동자들은 저리도 죽이나 하는 생각에 멈추면 어쩔 수 없는 이 운동권 근성 하며 피식 웃는다.
 
그러나 나 또한 이곳 브리아트족에게는 꽤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더 많은 것들을 담아가려는 속성을 가진 관광객 아닌가. 방금 점심을 먹은 식당의 메뉴가 고작 흰 쌀죽에 흑빵 몇 개라고 투덜대고 재래식 화장실의 냄새에 휴지도 너무 거칠다고 비아냥댔던 욕심덩어리 나라에서 온 관찰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에 정신이 들면 시베리아의 변방 이 작은 마을의 모든 것들에 대한 인상은 초라함에서 소박함으로 변해간다.
 
담기보다 비움의 자세로 바라보다
약 스무 명의 브리아트인이 전통복장을 곱게 차려 입고 공연을 펼치고 있다. 몽골의 마두금과 유사한 악기. 또 전통 타악기를 포함해 악사는 다섯 명. 춤을 추는 여인네도 노래를 부르는 남정네도 모두 모습이 소박하다. 우리 일행과 공연단은 모두 둥그런 원으로 묶여있고 그 원안에는 자작나무로 쌓은 장작불이 타고 있다.
 
그들은 불을 “하늘에서 내려준 가장 큰 선물”로 여긴다. 그래서 불은 신성하다 공연마당으로 들어오기 전에도 브리아트족 여인의 안내에 따라 자작나무 장작불을 건너왔다 그리고 장작불의 재와 물이 혼합된 염료를 각자의 이마에 찍었다. 마을 밖의 때 묻은 영(靈 )을 걷어내고 신령한 성지로 들어오는 의식이다.
 
그러니까 이곳에 모인사람들은 각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마에 점하나씩은 찍은 공통점을 가진 것이다. 샤먼 발렌틴의 축원은 이 작은 공통점을 모아 원을 만들어 모두가 자연인 신령한 성지를 만들려는 간절함이 배어있는 듯 했다. 노쇠한 샤먼의 목에선 쇳소리가 났지만 그가 흔드는 방울소리는 영롱했다.
 
시베리아의 오지에 몰린 소수민족의 설움을 노래하듯 구슬픈 곡조를 읊조리다가도 이 광활한 대지의 주인으로 고난의 삶을 헤쳐 온 승리자가 되어 춤을 추었다. 그는 브리아트어와 러시아어를 번갈아 쓰면서 의식을 진행했는데 다행인건 내가 그의 말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아니 알아들을 필요가 없었다. 단지 그의 곡조와 몸짓만으로도 나는 “자연으로써의 인간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온 그들의 역사, 그리고 그의 기도가 내가 알고 있는 아메리카 인디언 수우족의 기도문과 다르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참고자료: 바이칼-김종록 지음(문학동네)
바이칼 한민족의 시원을 찾아서-정재승 엮음(정신세계사)




저작권자 © 은평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