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시베리아 여행법 8

▲     © 이지상

간밤의 숙취로 축 늘어진 몸을 추스르고 나는 400루블 (우리 돈 8000원 정도)를 주고 빌린 자전거로 알혼의 언덕을 달린다. 지난 새벽 손톱 같은 달이 바알갛게 떠오르던 불칸바위 아래엔 벌써 몇몇의 야영객이 텐트를 쳤고 정신없이 별을 헤아리던 언덕위에선 한 무리의 러시아인들이 고요한 몸짓으로 禪 동작을 연습하고 있다
 
삼베 같은 질감의 옷을 걸친 젊은 선생은 서두르지 않은 채 학생들의 손끝까지 응시하며 성심을 다해 지도하고 이마에 송글 맺힌 땀방울을 닦으며 제자들은 선생의 일거수일투족을 행여 놓칠세라 뚫어지게 바라본다. 그 동작들은 지극히 동양적이어서 태극권의 품세 같기도 하고 요가 같기도 하다가 한국의 전통무용 춤사위를 흉내 내는 것 같기도 하다.

모든 게 다 좋았고 사소한 모든 게 용서 되었다. 러시아의 여인들은 거개다 상냥해서 어쩌다 눈이 마주 치면 싱끗 웃어주었는데 거기다가 카메라 렌즈를 돌리면 손까지 흔들어 주었다. 언덕배기를 오르는 페달 질이 힘들어 잠시 쉬어갈 때는 미리 싸온 “발치카7”이라는 러시아산 캔 맥주를 들이키다가 한갓진 나무그늘아래 한 뼘의 그늘을 빌려 눕기도 했다. 하늘을 보고 있으면 호수의 빛깔이 새겨져 있고 호수를 보고 있으면 하늘이 그 안에 담겨있다.
 
날씨는 몹시 무더웠다. 영상 30도 “뭔 놈의 날씨가 이리 덥다냐 명색이 시베리아의 한복판인데” 싶다가도 금새 이마를 치고 지나가는 바람 한줄기에 흘렀던 땀방울이 쏘옥 들어가는 신기함 하늘을 담은 호수의 끝은 지도에서조차 가늠 할 수 없을 만큼 광활하다. 하늘을 닮은 호수의 깊이는 굳이 가늠할 필요조차 없다. 1637미터라고는 했으나 바이칼 호변의 백사장위에서 홀딱 벗고 일광욕을 즐기는 여인네의 자유 정도로 알아먹으면 그만이다.
 
나도 그 여인네의 자유를 흉내 내며 호수 안으로 들어간다. 서두르지는 않는다. 딱히 내 인생 최초의 바이칼 입수에 관해 설레 이거나 경건해 지는 마음 따위는 없다. 그저 따가운 햇살을 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 정도로 여긴다. 발목에서 무릎 그리고 허리춤까지 몸을 담그다가 무슨 숫컷들의 영역 표시 같은 것처럼 눈으로는 하늘을 보는 척 쉬이~ 실례를 시작하는데 아뿔사 허리아래 관절이라는 관절은 죄다 저려올 정도로 물이 차다. 실례가 완성되는 그 짧은 시간을 참기 어려울 정도다.
 
영상 4도쯤 된다니 보통의 냉장실 온도와 맞먹는 한기가 온몸을 감싼다. 몸 전체를 채 담구기도 전에 퍼어래진 입술을 덜덜 떨며 도망쳐 나오면 한여름의 태양에 뜨끈하게 몸 달아있는 백사장이다. 3분을 버티기 힘든 차가운 물을 러시아 청년들은 쉼 없이 자맥질 하고 나는 멀지감치에서 누워 햇살의 포근함을 만끽하는 러시아 여인의 자유를 힐끗 거리다가 살짝 잠이 든다.

▲     © 이지상

"솔직히 한국이라는 말도 안 되는 바쁜 나라에서 시베리아 오는 사람들은 다 또라이 아냐?" 알혼섬 으로 들어오기 전 모스크바를 출발해 이르쿠츠크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누군가가 그랬다 맞다 또라이들 하며 킥킥대고 웃었지만 그게 우리의 모습이었다. 눈 질끈 감고 큰 결심해야 가는 곳은 맞다. 단순히 비용문제가 아니라 자신을 단 한번도 편히 쉬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자본의 구조 속에서 과감한 일탈을 꿈꾼다는 게 수월치는 않다 허나 나는 시베리아에 남과 북을 묻었다. 같은 지향을 찾기보다는 나와 다른 무엇을 찾아 갈라서기에만 급급한 진보라는 이름의 옹색함도 묻었고 정작 돈 버는 일을 포기하고 “쉼”을 찾아 먼 여행길에 나선 내가 또라이가 아니라 이런 일 한번 벌이지 못하고 사소한 이익 앞에 늘 흔들리는 분단된 섬나라의 내가 더 또라이라는 사실도 묻었다.

백사장의 햇볕이 따갑다. 호수에 다시 몸을 담그면 단 하나만 생각하면 된다. “이번에는 몇 분을 버틸 수 있을까”. 한가지의 집중을 통해 일상의 잡념을 잊는다는 불교의 사마타 수행법을 흉내 내자면 물속에 들어가 발끝의 혈관까지 얼어버릴 것 같은 추위에만 집중하면 다른 여타의 고단한 상념들은 일어날 틈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그것 때문일까 바이칼 호수에 한번만 몸을 담구어도 10년쯤 젊어진다는 속설이 있는데 그 설이 왜 생겼는지는 짐작할만하나 실제로 그 말을 믿었다가는 젊어지고 싶은 마음만큼 등짝의 살갗만 죄다 타 버리고 만다. 바이칼의 태양을 등지고 다시 마을로 내려오면 생기 있는 젊은이들은 상점 밖의 테이블에 앉아 “하이” 하며 손을 흔들고 “자유롭다”. 어느 것 하나 매여 있는 것이 없다.
 
코뚜레나 밧줄이 없는 소 들은 도로 한가운데를 어슬렁거리며 풀을 뜯고 신난 강아지는 자전거 꽁무니를 따라오며 짖어댄다. 가끔씩 늑대보다 큰 개를 만나게 되는데 목줄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놈이 무서운 나는 잠시 자전거를 세우고 애써 태연한척하며 그놈이 지나가길 기다린다. 묶인 게 없으니 자유롭고 자유로우니 유순하다. 산 만한 개를 보고 지레 겁먹은 나를 빼놓고 알혼섬의 모든 것들은 두려움이 없다.
 
오지 않는 내일을 준비하며 살았다. 어쩌면 좀 더 나은 내일에 대한 욕망 그러나 나락으로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공포가 내 삶의 근간이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오지도 않은 미래를 두려워하는 것이 나의 일상이었다. 한껏 게을러도 좋은 알혼섬 에서의 하루를 보내며 나는 내가 사는 사회가 빼앗은 자유와 강요된 두려움으로 인해 어쩌면 집채 만하게 큰 개보다 훨씬 더 사나운 존재가 되어 있을 거라 생각한다. 다시 페달을 힘껏 밟고 언덕을 오르니 저녁햇살을 받은 소나무 한그루가 길죽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저기서 잠시 쉬어야 겠다. 한 뼘 그늘아래서 느긋하니 좀 더 유순해져야겠다.

 

 



저작권자 © 은평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