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새벽녁의 찬 기운으로 창문을 열고 잠을 들기가 조심스럽습니다. 가을 냄새가 스며드는 하늘 아래 평온한 날들 보내고 계신지요. 저는 8월 말쯤부터 마음이 무척이나 먹먹하고 가끔 숨쉬기 힘들 때도 있습니다. 가슴속에 나왔다 들어갔다 하는 이야기를 꺼내야겠어요.

 약 7개월 전 선생님께 신문지면을 통해 첫 편지를 쓰게 되면서 생각했던 것이 있어요. 둘째 아이에게 찾아온 쓰나미 같던 아토피를 겪으며 그 고통으로 우리(가족과 이웃은 물론이고 모르는 사람들까지)가 연결되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이런 것이 연대라고 하는 걸까요. 그저 손잡고 손잡아주는 작지만 귀한 느낌이요) 그런 것을 서로서로 나누고 위로받고 그러고 싶었어요. 또 하나는 저와 우리 아이들에게 제2의 고향이 된 정선 정선의 기운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정선과 인연을 맺고 그곳에서 백여 일의 시간을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정선을 아끼고 사랑했던 자연을 닮은 한 친구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기 때문이예요. 현우의 고통과 가족의 아픔을 누구보다 진심으로 슬퍼하며 도와주려 했던 그 친구는 아직도 믿기지 않지만 제가 선생님께 첫 편지를 띄우고 얼마 후에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자연을 닮은 친구에게 "현우 다 나았어"

우리가 산에서 내려오고 서울에 적응하며 조금씩 나아지는 일상을 보내는 동안 그 친구는 바로 대도시의 큰병원에 입원해 치료에 들어가고 너무도 급하게 모든 것이 진행되었습니다. 병명이 백혈병이라고 하네요. 아직 서른도 안 된 키도 크고 손도 크고 발도 크고 마음은 그보다 더 큰 산사나이가 말입니다. 선생님 어느덧 두 아이를 가진 엄마라서일까요 현우를 너무나 아끼고 예뻐해주던 순수한 친구라서일까요 저는 애간장이 다 녹는 날들이었습니다. 그 친구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랬겠지만 저는 현우를 안고 흘린 눈물과 아픔을 고스란히 다시 겪고 있었습니다. 아니 현우를 안고 기도드린 순간보다 더 간절하게 잠속에서도 기도드렸던 기억이 나네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뿐이었으니까요. 그렇게도 힘들다던 항암치료를 수차례나 받고 6개월간의 고된 투병 뒤 합병증으로 떠나갔어요.

몇 주전 꿈같지 않은 꿈을 꿨는데 그 친구랑 통화를 했습니다.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예전보다 밝고 톤이 높아져있네요. 너무나 오랜만에 하는 통화라 저는 반가운 마음을 숨길 수가 없습니다. 저는 그 친구 목소리를 듣자마자 “야~. **아~ 현우 다 나았어~” 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쉽사리 할 수 없는 말입니다. 누군가 “이제 다 나았어요?” 그러면 “모르겠어요 지금은 많이 좋아졌고 건강한 상태예요” 하고 조심스레 말하거든요. 그런데 그 친구한테만큼은 자랑스레 자신이라도 하듯 장난스럽게까지 말을 합니다. 누구보다 이 기쁜 소식을 나누고 싶었으니까요. 누구보다 기뻐하며 한걸음에 달려올 친구니까요. 기분좋게 눈을 뜨고 꿈인지 생시인지 헤매다 꿈인 것을 알고 아직 곤히 잠든 아이들을 곁에 두고 소리를 죽이며 꺼어억 꺽 대고 가슴을 칩니다. 딱 일년 전 생전에 보았던 그 모습이 잡힐 듯 떠오르며…….
 


이웃 위한 기도가 행복으로 다가온다

선생님 방금 젖을 떼고 산으로 온 송아지 삼일을 내리 울어대던 송아지 기억하시죠. 영우와 함께 송아지와 송아지 엄마를 위해 기도하던 때요. 그날 이후로 우리는 잠들기 전 기도시간이 평안하고 행복해졌어요. 서울에 와서는 이웃들의 소식도 접하고 가족들 살아가는 것도 눈에 보이게 되자 기도 시간이 늘어나게 돼요. 기도라고 하니까 뭔가 대단하게 느껴지는데 하루의 마무리 같은 것입니다. 고통을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에서입니다. 아이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젖을 물리고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아픈 사람 힘들어하는 사람 괴로워하는 사람 불안한 사람 지친 사람을 떠올리며 안아줍니다. 손을 잡아줍니다. 오늘 제가 느꼈던 감사한 마음을 떠올리며 그 기운을 나누어봅니다. 미처 알지 못했던 사람들과 생명들과도 나누고 싶어집니다. 그런 나눔과 연대의 그림이 마음에 차게 되면 현우가 괴로운 시간을 보낼 때도 마냥 불안하지만은 않았어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와 내 아이를 위해 드렸던 기도의 마음보다 깊은 평온함과 충만함이 느껴져서 결국 남을 위한 기도가 저를 행복하게 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멀리 떨어져있어도 전해졌던 정선 친구의 아픔과 슬픔이 제게 생생히 전해졌던 몇 주간은 소중한 기억이 되기도 합니다. 아이러니하지만 그 고통이 느껴져 간절히 기도할 수밖에 없었던 그 순간은 제게 참행복으로 다가오기도 했어요.

선생님 가족보다 더 가깝게 느껴졌던 그 친구를 떠나보내며 삶 속에 죽음이 순간순간 있음을 실감합니다.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현재 오늘의 삶을 감사한 사람이 깨어있는 삶을 살 수 있고 이 생을 사랑하며 산 사람은 저 생에서도 아름답게 살고 있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그 친구를 사랑하는 사람들 우리는 느낄 수 있었어요. 그 친구가 정말 좋은 곳에서 잘 지내고 있구나 하는…… 그러나 투병 중에도 현우를 챙기던 영우가 지금도 좋아하고 그리워하는 그 친구가 마냥 그립습니다. 보고 싶고 듣고 싶고 만지고 싶은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세상의 수많은 견우와 직녀에게 오작교가 놓이는 날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어요.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다음 달이면 현우가 두 돌이 됩니다. 시월에는 제 생일도 있고 가족들 생일도 있고 우리 부부 결혼기념일도 있네요 제가 배 아파하며 아이를 낳은 달이기도 하고 엄마의 힘겨운 초산이 있던 날이기도 하며 그 후 제게 너무도 소중한 선물인 두 동생의 탄생이 있는 달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행복한 시간은 물론 불행이라 느껴지던 순간까지 늘 곁에 있어주는 배우자와의 소중한 약속이 있는 달이기도 하고요. 정선 친구의 반복되는 항암치료가 별 효과를 보이지 못했던 달 시월이 다가오네요. 계속 되고 싶은 기쁨 끝내고 싶은 슬픔이 함께하는 우리 삶에 끊임없이 흐르는 숨은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선생님 우리는 그런 존재들이겠지요.

요즘 영우와 저는 서로의 밧데리가 되어 충전지를 나누곤 합니다. 잠들기 전 허리 아프다는 제게 “사랑의 힘!” 하며 충전을 해주네요. 저는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해드립니다. 신문으로 보내드리는 편지는 이것이 마지막이 될 것 같아요. 가을이 가기 전에 찾아뵐게요. 보고 싶어요 선생님.     

김지혜 씨는 6살 23개월 된 두 아이를 키우며 불광동에 살고 있어요. 아토피를 심하게 앓은 둘째 아이와 지내는 시간들을 소중한 선생님께 띄우는 편지글로 독자들과 나누려고 해요. “고통이 우리를 연결해 주는 느낌”을 나누고 그 과정에서 서로가 용기를 얻을 수 있다면 참 좋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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