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우리를 살리는 아름다움이지 않을까?


정들고 익숙해지고 그리워질 모든 것들

선생님 어젯밤 보름달은 유난히도 맑고 밝아 바라만 보아도 그렇게 닮아가는 듯했습니다. 어둠 속 두 아이가 창문에 얼굴을 걸치고 구름에 숨었다 나오기를 반복하는 달을 보며 좋아라 하는 뒷모습은 한동안 제 맘에 남을 귀한 한 컷이 되기도 했어요. 지난 여름 마음속 사진 중에 간직된 여러 장 중 하나는 깊은 산 속 청명하고 고요한 달빛아래 스님과 두 아이와 아이의 엄마가 노래를 부릅니다. 조그맣게 부를수록 산이 좋아하고 풀벌레가 좋아한다는 것을 느끼는 이들은 달빛의 아름다움에 노래를 녹여냅니다. 서울의 보고픈 가족들을 그리기도 하고 언젠가는 떠나야 할 정선 무릉리가 그리워질 그날을 그리면서요.

산 속에서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자 정들어가는 것도 늘어갑니다. 함께 지내는 송아지는 물론이고 송아지 엄마와 함께 여량에 사시는 할머니(스님과 인사 드리러 갔었는데 송아지가 어미 소보다는 할머니를 닮았더군요) 가끔 절을 찾으시는 신도 분들 장보러 바람 쐬러 갔던 사북 정선 5일장 시원스레 자라는 해바라기 장마철 변화무쌍한 비바람 산 속의 간식거리 감자(감자떡 감자옹심이 찐감자 구운감자 감자부침) 옥수수 가마솥 곤드레밥 비오고 며칠 후에 뜯으러 가는 버섯 버섯 뜯고 며칠 후 쑥쑥 자란 미나리 발바닥만 한 질경이 잎 소금강에서 담아 오는 다슬기(도시인인 우리 눈에는 잘 안 보여요) 영우가 날아가는 거센 산바람 방문 앞을 무심히 지나가던 도롱뇽 잣나무 숲에서 우연히 만난 꿩 새끼 8마리(졸졸이 어미 뒤를 따르던 그 모습에 숨이 멈췄던 기억이 납니다) 군불 때는 냄새 해거름의 평온함 새벽녘의 냄새 새벽을 깨우는 새들의 재잘댐 숲 속 습한 기운 이 세상 뜨면 정말 별이 될 것 같은 수많은 별밤하늘 한번도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던 구름 낀 하늘 묵은 땀 냄새마저 날려주는 산바람……. 
 
오늘만 살아보자던 첫 마음처럼

정이 들어가고 익숙해지면서 사계절의 모습이 궁금해지기도 하고 생각했던 것보다 머무를 시간이 길어질까 불안한 마음도 생깁니다. 아이의 호전과 악화가 뒤섞이면서 저는 또 다른 막막한 날들을 보내기도 했어요. 수첩에 이런 단어가 보입니다. 처.음.처.럼. 오늘만 살아보자던 이곳에 올 때의 첫 마음.

선생님 자연이 품어주는 치유도 컸지만 가족과 떨어져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무게감 또한 점점 커졌습니다. 모든 것을 놓아버린 저를 받아준 이곳에서 저는 또다시 선택을 해야 합니다. 저에게 그리고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선택을 해야 합니다. 가족들과 아이 아빠와 스님과 얘기를 나누면서 마음은 정리되어갔어요. 그리고 백여 일의 생활을 접고 집으로 갑니다. 다른 무엇보다 또 다른 엄마가 되신 스님을 뒤로 하고 집으로 가는 길은 너무나 힘겨웠습니다. 

서로 보듬고 아껴주는 순간

이미 산 맛을 본 우리는 서울로 들어서자 숨쉬기가 불편했던 기억이 먼저 나네요. 답답하고 편안하지 않았습니다. 혹시라도 어렵게 낸 결정을 되돌리기라도 할까 가져갔던 짐들을 고스란히 가져왔는데 잘한 일인가 싶을 정도로 적응하는데 꽤 시간이 걸렸습니다. 산 생활 적응 시간보다는 강도가 약하지만 오래갔지요. 전기와 수돗물이 주는 편한 생활이 마음까지 풍요롭게 해주지는 못했어요. 무엇보다 드넓은 시공간과 고요함이 사무쳤습니다. 저와 영우는 알프스 소녀 하이디가 된 기분이었어요.

산에서 내려온 후로 현우의 상태가 고만고만하다가 어느 날 아침 일어나보니 얼굴이 붉게 변해있네요. 주방으로 가서 상황에 동요되지 않으려 마음을 다잡고 있는데 아이들이 일어나는 소리가 들립니다.
 
“어 현우 얼굴이 많이 빨개졌네.” (잠깐 있다가) “괜찮아 현우야~ 나는 네가 세상에서 제일 예뻐~ 아토피라도 나는 니가 제일 예뻐~” 합니다. 등 뒤 들리는 소리에 몰래 가서 보니 글쎄 두 아이가 서로 꼬옥 끌어안고 현우는 형아 품에 안겨 방실방실 웃고 있네요. 아이들은 있는 모습 그대로 서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있었던 거예요.
 
그날 이후로 저는 서울생활에 적응하는 속도가 붙었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서로 보듬고 아껴주는 이 순간들이 무엇보다 소중했거든요.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아이에게 삶을 배운다

선생님 산에서 이런 일이 있었어요. 어떤 신도분이 아들과 함께 왔는데 영우보다 두 살 많은 7살이었지요. 오랜만에 또래를 만난 영우는 신이 났어요. 7살인 친구는 영우와 놀다가 방에서 나오는 (제게 안긴) 현우를 보며 “아우 더러워.” 합니다. 그때 저는 숨이 멎는 것 같았어요. 차마 제 입으로는 할 수 없었던 말 그리고 피진물과 딱지로 범벅되어 있는 아기 얼굴에 익숙해져버린 저에게는 인식할 여지도 없었던 단어였지요.
 
그리고 그 말은 현우가 아닌 제게 하는 말과도 같았기에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어요. 몸의 많은 부분에 화상을 입은 저는 목욕탕에서 만큼은 가릴 수가 없었는데 어릴 때 느껴지던 몸에 박힌 불편한 시선들이 되살아나는 느낌이었어요. 있는 그대로를 읽은 그 아이가 무서웠습니다.

한없이 약해진 엄마와는 달리 영우는 이런 모습을 보였어요. 둘이서 속닥이던 얘기를 들었는데 “야 너 동생 있는 거 싫지?” “아니” “야 네 동생 얼굴이 저런데 좋아?” “응” “예뻐?” “응!” “진짜?” “응!” “……” 7살 형이 웃자 영우도 따라 웃어요. 깔깔대며 웃어요. 선생님 아토피인 현우를 보며 나눈 두 아이의 얘기는 제게 모두 진실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저는 삶을 배웁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것은 너무나도 힘이 들지만 이것을 연습하고 연습한 자…… 받아들이고 받아들인 자만이 온유할 수 있다는 것. 온유한 상태에서 삶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 그 밖에는 달리 없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우리를 살리는 아름다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 겪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고비를 지나 보니 제게 큰 에너지가 생겼는데요 막연한 불안감이 아닌 지금 이대로의 만족감이랄까 그리고 감사함 제게 있었던 모든 것의 감사함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느낌을 조심스레 꺼내보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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