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한 초록의 나뭇잎들이 강한 햇살을 받으며 쭉쭉 뻗어갑니다. 날은 점점 무더워져 가지만 아이들은 물대야 하나에서 행복한 웃음을 찾습니다.
 
작년 정선에서의 날들이 이젠 기억에서 점점 가물가물해지네요. 산에서 내려온 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결코 잊을 수 없을 아픔의 기억들이 한여름 밤의 꿈처럼 몸에서 빠져나가는 느낌도 듭니다.
 
강원도의 거대한 산 틈에 있다가 북한산을 오랜만에 보니 작은 동산처럼 느껴지기도 했던 어느 날 한밤중에도 끊임없이 들리는 차 소리가 어색하기만 했던 그 순간들도 이젠 익숙한 일상이 되어갑니다. 내게는 올 것 같지 않던 평범한 일상들에도 익숙해져갑니다.

나무껍질을 달여서 목욕을 해야 했던 작은 아이 이제는 형과 같이 놀면서 수돗물로 씻고 한여름에도 맘 편히 입지 못했던 민소매 반바지도 입을 수 있습니다. 머릿속 상처와 진물로 간신히 자르던 머리카락을 미용실에서 시원하게 밀어보기도 했습니다.
 
모든 시간을 곁에서 보신 엄마께서는 요즘 이런 말씀을 자주 하셔요. “현우 같지가 않아. 다른 아이 같아.” 하시며 벙글벙글 웃으시는 모습을 볼 때면 마음이 먹먹해지기도 합니다. 저는 아이 얼굴에 부비며 뽀뽀하다가도 가끔은 그토록 바라던 ‘다 지나간다’는 주문이 풀리기라도 할까 봐 웃음이 멎을 때도 있습니다. 

 

새 식구가 된 송아지 울음소리에 잠 못들던 밤

엄마는 서울로 다시 올라가고 우리 세 식구만 남겨졌습니다. 현우는 나빠지고 저는 다시 헤매고 있었고 영우는 사람들을 그리워합니다.
 
그때쯤 스님께서 이제 막 젖을 뗀 어린 송아지를 절에서 키우겠다고 하시네요. 송아지 집은 우리가 살고 있는 판잣집에서 불과 50미터 정도에 지어졌습니다.
 
큰아이는 책에서만 보던 얌전하고 귀여운 송아지를 생각하며 가려움에 괴로워하는 동생을 두고 집 밖으로 나갔어요. 몇 분 후에 영우가 겁에 질려 엉엉 울며 들어와요. 젖을 막 뗀 송아지는 낯선 사람 영우를 보고 놀라서 발버둥치고 영우는 그림에서 뛰쳐나온 어린 소의 과격한 모습을 처음 보았던 거예요.

그날 밤 우리는 잠자리에 들기가 참 힘들었습니다. 현우의 아픈 울음에 방금 젖 뗀 송아지의 울음소리가 더해져 적막한 산이 함께 울었기 때문이에요. 삼 일 동안 내리 울어댑니다. 한밤중 산을 울리며 “음머~음마~엄마~~” 합니다.
 
어미를 찾는 간절한 울음에 현우 울음과 송아지 울음이 헷갈렸어요. 함께 밤을 샙니다. 우리의 새 식구가 된 거예요. 처음에 무서워했던 영우도 잠자리에 누워 이런 말을 해요. “엄마 님들께 기도하자” “님들?...” “응. 하느님 부처님 공자님. 송아지 잘 자게 해주세요. 송아지 엄마도 잘 자게 해주세요~” 이렇게 기도를 하네요.
 
그리고 저도 현우가 아픈 이후로 처음으로 다른 생명을 위해 간절히 기도드리게 됩니다. 또한 이렇게 아름다운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님들께 기도하게 되네요.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게 되었다

산에서 영우의 모습들이 생각납니다. 할머니가 서울로 떠나신 후로 영우는 제 시야에서 점점 멀어졌어요. 사람들을 그리워하는 시간조차 익숙해진 듯 나름대로 생활을 잘 꾸려가고 있었습니다.
 
잠자리를 잡고 놓아주며 반나절을 보내고 간신히 가린 옷만 입고 커다란 나무막대를 쿵쿵거리며 다니고 스님의 밭일을 돕기도 하고 송아지 여물 주는 것을 돕기도 하고 가끔 절에 놀러오시는 동네 분들과 말도 섞으면서 배고플 땐 밥을 찾아먹기도 하고. 저와 다툼이 있던 날은 법당에 들어가 부처님과 얘기를 나누고 나오기도 하더군요.
 
날이 너무 더운 날은 목조건물인 법당이 가장 시원하기에 (스님의 허락으로) 아이들은 법고와 징을 치며 놀고 낮잠을 자고 나오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종교가 다른 저에게 법당은 엄숙하고 어색하기만 했는데 편안하고 시원한 원두막의 느낌을 받기도 했어요.
 
법당 문을 활짝 열고 아이들과 보던 산을 넘고 넘는 크고 큰 뭉게구름이 그리워지네요. 해가 있는 동안은 종일 밖에서 지내다 날이 저물면 방으로 들어와 등산용 랜턴을 머리에 끼우고 책을 읽던 영우. 영우의 생각주머니가 부풀고 있는 것이 느껴졌어요.

깊은 산 속에서도 현우가 악화될 때 저는 함께 있는 영우를 보며 힘을 냈고 어미와 떨어져 지내는 외로운 송아지를 보며 마음을 달래기도 했어요. 저는 몸도 마음도 한없이 약해지고 있었지만 아이들 옆에 있을 수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송아지가 우리 식구가 된 이후로 조금씩 다른 누군가를 생각하게 되고 기도도 하게 되었어요
 
김지혜 씨는 6살 20개월 된 두 아이를 키우며 불광동에 살고 있어요. 아토피를 심하게 앓은 둘째 아이와 지내는 시간들을 소중한 선생님께 띄우는 편지글로 독자들과 나누려고 해요. “고통이 우리를 연결해 주는 느낌”을 나누고 그 과정에서 서로가 용기를 얻을 수 있다면 참 좋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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