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며칠은 창문을 너머 방 안까지 퍼지던 아까시나무 향으로 온누리가 숨쉬는 공기에 선물이 더해진 듯했습니다. 오월의 옛추억들과 함께하던 이 향기가 작년 기억들 속에는 없네요. 이맘때쯤 우리가 있던 깊은 산 속에서는 아까시나무를 만나기 어려웠으니까요.

석가탄신일에 우리 가족은 먼 기차여행길에 올랐습니다. 도착지는 민둥산역으로 이름이 바뀐 증산역입니다. 주말이면 아이 아빠의 일정을 꽉 채우던 길입니다. 지루함과 걱정과 설렘이 담겼을 길이기도 합니다. 아이 아빠는 왕복 12~13시간을 지하철 기차 버스에서 보냈습니다.  세 식구를 산 속에 두고 서울로 다시 돌아가는 길 맥주 없이는 힘들었을 아이 아빠의 모습이 그려지기도 하네요. 홀로 다녔을 주말의 출퇴근길이 지금 우리에겐 여행길이 되었습니다.

일년이 지나 우리가 묵던 조그마한 방에 들어서자 지난 여름 일상보다는 우리를 만나러 왔던 가족들 친구들의 느낌이 전해집니다. 그리고 이제 조금 적응된 두 아이의 젊은 엄마를 두고 떠나야만 했던 늙은 엄마 마음도 읽을 수 있습니다.
 
산으로 떠나기 전 우리가 적응할 보름 정도만 함께 계시겠다고 하신 엄마 막상 보내드리려 하니 여러 가지로 마음속이 시끄럽습니다. 기적 같은 숙면과 아이의 뽀얀 얼굴도 엄마가 떠나실 날이 되자 다시 안 좋아져서 발걸음을 더욱 떼기 힘들게 하기도 했지요. 깊은 산 속에서 세 여자의 울음이 그치질 않네요. 두 아이의 엄마 그 엄마의 엄마 그 모습을 보는 앞으로 또 다른 엄마가 될 여승……. 서울에서 엄마를 모시러 온 숨어서 울어야만 하는 떠나야 할 가족들…….

두 평 남짓한 방에 아이들과 저만 남겨지고 우리 세 식구만이 촛불 아래서 잠을 청하려해요. 가려워하는 아이가 눈물에 가려 보이질 않습니다. 이 모습을 큰아이가 담담히 보고 있어요. 마음을 다듬고 “영우야 엄마 오늘까지만 울게. 할머니 보고 싶다. 엄마보고 싶다.” 하자 “히히” 웃어요. “왜? 엄마의 엄마는 할머니쟎아~” “응! 엄마(울어도 돼) 아이 둘 키우느라 힘들잖아~” 하네요. “영우야…… 고마워~” 아이 덕분에 울다 웃다 합니다. 마음을 읽어주며 일으켜주네요. 저는 엄마니까 아이들 앞에서만큼은 깨어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잎새 하나에도 수호천사가 있다는데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생명에 어려있을 기운을 생각하며 함께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밤을 지새울 가족들 스님을 생각하며 숨을 가다듬습니다.

선생님 산생활에서 엄마의 빈자리는 이렇게 나타났어요. 새벽녘 가려움에 괴로워하는 아이를 안고 큰아이의 심해진 기침 소리를 들으며 따뜻한 물 한 모금 주기 어려웠고 요강을 방안에 들여놓지 않는 바람에 한밤중 급한 볼일을 (힘들어하는 아이를 안고) 그냥 바지에 쌀 수밖에 없는 그야말로 어쩔 수 없는 상황도 몇 번 있었어요. 누구 눈치 볼 일이 없는 이곳에서 우리는 애 어른 할 것이 없어집니다. “영우야 엄마 어제 똥 쌌다” “에구 어쩌다.” 그냥 웃지요. 웃을 수밖에요...

아이를 안고 이것저것 해야 하니 손목 발목은 물론이고 등이 아파오고 때로는 다리도 절뚝이게 되네요. 세수는 삼일에 한 번 할까 이는 간신히 닦고 아이 아빠가 오는 주말에 가마솥에 물 끓여 큰아이 씻기고 저도 씻습니다. 엄마가 가시고 현우 상태도 안좋고 저도 아픈 곳이 많아지자 기대고 싶어집니다. 큰아이가 “현우가 아프니까 마음이 울고 있어”하거나 새벽에 일어나 가끔“서울에 있는 사람들 보고 싶다 집에 가고 싶다.”하면 전화를 수없이 만지작거리게 되고……. 촛불 아래 잠자리에서 “엄마 나 외로워~ 안아줘~”하고 잠들어도 저는 제대로 안아주지 못했어요. 현우를 안고 다리만 만져줄 수밖에요.

정선 무릉리 산 속 우리는 물론이고 서울에서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자꾸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이 일어나요. 힘듭니다. 그것이 미움이 되고 원망이 되니... 그런 것 내려놓으려 여기까지 왔는데 한 달이 지나고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자 아름답고 고마운 풍경들도 거리감이 느껴집니다...제 마음이 이러니 영우가 이런 말도 자주하게 됐어요. “엄마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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