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지 못했던 지난해가 가고 이렇게 새해에 선생님께 비로소 편지를 띄울 수 있다는 사실이 제겐 기적과도 같은 일입니다. 삶이란 정말 한 치 앞도 알 수 없지만 참으로 숭고한 것임을 묵묵히 끄덕이게 됩니다. 지난달 저는 알 수 없는 불안감과 두려움에 한없이 작아졌어요. 지난해 새달의 시작이 우리 가족에겐 끝날 것 같지 않은 고통의 시작이었으니까요.
아......정말 지금은 지난 일임에도 목이 메이고 가슴이 절이네요.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현실이 믿기지 않고 몸부림치며 울부짖었지만 상황은 변하지 않았어요. 아기 때 몸의 반 정도가 화상을 입어 십여 년이 넘게 잠 못자고 가려워하며 지낸 저에겐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었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나의 어릴 때 모습과 똑같은 상황인지요.
저는 이때처럼 무서운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내가 아닌 누군가가 내가 낳은 새 생명이 피땀을 흘리며 꺼져가고 있었어요. 수많은 밤을 아이를 안고 지샜습니다. 뜰 것 같지 않은 태양이 떠오르면 아 새날이 왔구나 싶었어요. 하지만 어제와 같이 반복되는 고통의 오늘이 계속되자 우리에겐 이미 일상이라는 단어조차 꺼내기 힘겨웠습니다.
그 작은 몸에서 얼마나 많은 진물을 쏟아내는지 저는 멍해질 때도 많았어요. 내가 이 아이에게 어떤 존재가 될 수 있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아무 것도 알 수 없었어요. 가능성을 열어두고 여러 노력을 해봤지만 정말 원인도 알 수 없고 예측도 할 수 없었어요. 생각할수록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영혼도 없어지는 것 같았어요.
선생님 저는 이때 가족은 그냥 함께 있는 것임을 그렇게 할 수만 있어도 감사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것도 계속 되진 않았지만요. 젖 먹는 아기 곁에 엄마만큼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저는 가족은 물론 말 많은 사람들이 싫어졌습니다. 중심을 잃고 생각을 잃고 허덕이는 제가 싫어졌습니다. 가로등에 아이 얼굴을 비추며 서성이는 날도 다 내려놓고 싶어졌어요. 말 못하는 너무 아파 울지도 못하는 아이 앞에서 저는 너무 외로웠어요. 함께하고 있는 가족들에게는 너무 너무 미안한 말이지만요.
선생님 몇 달전 아이가 많이 좋아지고 제가 바라던 '책읽기 모임'이 생겨 제 소개를 하는데 제 얘기가 온통 '아토피' 이야기지 뭐예요. 하긴 제 생활이 그거였으니 그럴 수 밖에요. 근데 사람들이 안타까워하면서도 재미있어했어요. 이상하지만 저도 그 느낌이 싫지 않았구요. 고비를 넘은 지난 일이 되어 그럴 수도 있겠지만 고통이 우리를 연결해 주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그래서 제가 선생님께 이렇게 신문 지면을 통해 편지도 띄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음 번엔 선생님이 궁금해 하시던 백여일의 산속 생활을 전해드릴게요. 평안한 하루되세요.
김지혜씨는 5살 16개월 된 두 아이를 키우며 불광동에 살고 있어요. 아토피를 심하게 앓았던 둘째 아이와 지냈던 시간들을 존경했던 선생님께 띄우는 편지글 형식으로 독자들과 나누려고 해요. "고통이 우리를 연결해 주는 느낌"을 나누고 그 과정에서 서로가 용기를 얻을 수 있다면 참 좋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