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안녕히 주무셨어요? 평범해 보이는 이 말이 누군가에게는 일상이 될 수 없음을 저는 조금씩 알게 되었어요. 경험한 만큼만 느낄 수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구요.
 
안녕하지 못했던 지난해가 가고 이렇게 새해에 선생님께 비로소 편지를 띄울 수 있다는 사실이 제겐 기적과도 같은 일입니다. 삶이란 정말 한 치 앞도 알 수 없지만 참으로 숭고한 것임을 묵묵히 끄덕이게 됩니다. 지난달 저는 알 수 없는 불안감과 두려움에 한없이 작아졌어요. 지난해 새달의 시작이 우리 가족에겐 끝날 것 같지 않은 고통의 시작이었으니까요.
 
선생님을 처음 뵈었던 때로부터 스무해가 지났을 거예요. 저는 둘째 아이를 낳았습니다. 태열기가 조금 있던 튼실해 보이는 아기였지요. 그런데 백일쯤 아기의 얼굴에서 조금 보이던 발진이 온몸에 나타났고 머리에서 다리까지 발진과 함께 진물로 뒤덮였어요. 뽀오얀 살이 뻘겋게 그것도 화상 환자처럼 피와 진물이 범벅이 되었고 아기의 온몸이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아......정말 지금은 지난 일임에도 목이 메이고 가슴이 절이네요.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현실이 믿기지 않고 몸부림치며 울부짖었지만 상황은 변하지 않았어요. 아기 때 몸의 반 정도가 화상을 입어 십여 년이 넘게 잠 못자고 가려워하며 지낸 저에겐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었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나의 어릴 때 모습과 똑같은 상황인지요.
 
저는 이때처럼 무서운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내가 아닌 누군가가 내가 낳은 새 생명이 피땀을 흘리며 꺼져가고 있었어요. 수많은 밤을 아이를 안고 지샜습니다. 뜰 것 같지 않은 태양이 떠오르면 아 새날이 왔구나 싶었어요. 하지만 어제와 같이 반복되는 고통의 오늘이 계속되자 우리에겐 이미 일상이라는 단어조차 꺼내기 힘겨웠습니다.
 
그 작은 몸에서 얼마나 많은 진물을 쏟아내는지 저는 멍해질 때도 많았어요. 내가 이 아이에게 어떤 존재가 될 수 있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아무 것도 알 수 없었어요. 가능성을 열어두고 여러 노력을 해봤지만 정말 원인도 알 수 없고 예측도 할 수 없었어요. 생각할수록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영혼도 없어지는 것 같았어요.
 
선생님 저는 이때 가족은 그냥 함께 있는 것임을 그렇게 할 수만 있어도 감사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것도 계속 되진 않았지만요. 젖 먹는 아기 곁에 엄마만큼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저는 가족은 물론 말 많은 사람들이 싫어졌습니다. 중심을 잃고 생각을 잃고 허덕이는 제가 싫어졌습니다. 가로등에 아이 얼굴을 비추며 서성이는 날도 다 내려놓고 싶어졌어요. 말 못하는 너무 아파 울지도 못하는 아이 앞에서 저는 너무 외로웠어요. 함께하고 있는 가족들에게는 너무 너무 미안한 말이지만요.
 
선생님 몇 달전 아이가 많이 좋아지고 제가 바라던 '책읽기 모임'이 생겨 제 소개를 하는데 제 얘기가 온통 '아토피' 이야기지 뭐예요. 하긴 제 생활이 그거였으니 그럴 수 밖에요. 근데 사람들이 안타까워하면서도 재미있어했어요. 이상하지만 저도 그 느낌이 싫지 않았구요. 고비를 넘은 지난 일이 되어 그럴 수도 있겠지만 고통이 우리를 연결해 주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그래서 제가 선생님께 이렇게 신문 지면을 통해 편지도 띄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음 번엔 선생님이 궁금해 하시던 백여일의 산속 생활을 전해드릴게요. 평안한 하루되세요.

김지혜씨는 5살 16개월 된 두 아이를 키우며 불광동에 살고 있어요. 아토피를 심하게 앓았던 둘째 아이와 지냈던 시간들을 존경했던 선생님께 띄우는 편지글 형식으로 독자들과 나누려고 해요. "고통이 우리를 연결해 주는 느낌"을 나누고 그 과정에서 서로가 용기를 얻을 수 있다면 참 좋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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