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에서 감기에 걸린 아이에게 “항생제를 써야 할 것 같습니다”라는 얘기는 언제나 약간의 긴장을 일으킵니다. 특히 “감기는 바이러스 질환이라 항생제가 필요하지 않다”는 지식을 알고 계시는 부모님인 경우 더 그렇습니다.

급성 상기도 감염에 대한 항생제 처방율을 심사보험평가원에서 모니터링하여 사이트에 공개하기 시작한 이후 일반인들과 의료인들의 인식이 많이 개선되었고 항생제 처방율이 점점 낮아지고 있는 것은 분명 좋은 현상입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역으로 “항생제 덜 쓰는 의원이 좋은 의원”이라는 인식이 너무 깊이 자리하여 오히려 항생제를 적절하게 처방해야 하는 아이들에게도 항생제가 처방되지 않거나 혹은 너무 짧게만 쓰고 끊어버리는 (의사선생님들이 끊기도 하고 부모님들이 끊기도 하죠) 경우들이 자주 발생하여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소아과 연수강좌에서는 최근 항생제와 관련한 이슈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충분한 기간 동안 항생제를 처방하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항생제를 감기를 낫게 해주는 만병통치약으로 생각하는 것도 절대 써서는 안 되는 무서운 약으로 생각하는 것도 온당하지 않습니다.

보통의 가벼운 상기도 감염에서는 초기 맑은 콧물을 수일 간 보이다가 콧물의 양이 서서히 줄면서 진해지는 단계를 거치게 되고 이때 콧물이 뒤로 넘어가면서(후비루) 기침/가래가 조금 더 심해지는 듯 보이게 됩니다. 누렇고 찐득한 콧물이 나올 때도 있는데 상기도 감염의 후반에 코점막이 떨어져 내리면서 나오게 되는 것이라 양이 많지 않다면 나아가는 과정으로 보고 항생제를 굳이 처방하지 않습니다. (즉 누런 콧물이 나온다고 항상 항생제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물론 나아간다는 판단은 아이의 상태가 양호하고 식사도 잘 하고 컨디션이 좋다는 전제 하에서입니다.

그러나 7~10일이 넘어가면서 오히려 기침가래가 많아지고 코막힘이 심해 잠을 못 자서 짜증을 내며 식사량도 줄어들고 있다면 2차 감염으로 부비동염(축농증) 기관지염 등을 고려해야 합니다. 이렇게 ‘감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감기가 아니어서 항생제를 처방해야 하는 경우에는 적어도 7~14일 이상 충분히 항생제를 복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심지어 만성 부비동염이 의심되는 경우에는 4주 이상 항생제를 장기 복용해야 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만약 2~3일만 항생제를 먹고도 깔끔하게 나은 경우라면 그건 애초에 항생제를 굳이 쓰지 않아도 나을 질환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저는 진료실에서 “항생제는 쓰려면 앗쌀하게 써야 한다. 안 그러면 내성이 생긴다”고 설명을 드리곤 합니다. 항생제 내성이 가장 잘 생기는 경우는 항생제를 짧게 쓰다 말다 쓰다 말다 하는 경우이니까요.

물론 의사도 (저도) 신이 아니기에 언제까지가 항생제를 쓰지 않고도 지켜볼 수 있는 시점인지 언제부터가 항생제를 반드시 시작해야 하는 시점인지 판단하기 힘들 때도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주치의로서 아이를 꾸준히 보는 것 아이의 상태가 변화하는지 유심히 관찰하는 것입니다. 이곳 저곳 병의원을 옮기는 것보다는 아이와 부모님과 의사선생님간의 신뢰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서로 신뢰하는 관계 안에서만 불필요한 항생제 처방을 줄이고 적극적인 항생제 치료가 필요한 타이밍을 놓치지 않게 됩니다.

항생제 너무 두려워하지 마세요. 불필요하게 남용하지도 않아야 하겠지만 꼭 필요할 때는 충분한 기간 쓰는 것이 내성을 막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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