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원 원장으로 보내 준 거 같다' 사회복지 사업 외길 걷는 조규환 원장(1)

은평구 구산동에 자리잡은 ‘은평천사원’ 사회복지기관으로 세간에 이만큼 알려지고 큰 관심을 받고 있는 곳도 많지 않다. 어린이날 성탄절 등 특별한 날 아니 보통 때도 유명 인사들의 발걸음이 이어지는 곳. 그래서 정작 이곳이 어떤 일을 해 왔는지 어떤 일을 하는지 사람들의 관심은 외려 무뎌져 있거나 무덤덤해 하는 듯도 하다. 그러나 동네 은평구에 천사원같은 사회복지기관 하나 가지고 있는 것 괜찮은 일인 듯싶다.
 
천사원은 50년 전인 1959년 서대문구 역촌동이던 시절 허허벌판에 천막을 치고 고아 5명을 돌보면서 문을 열었다. 2009년 오늘 사회복지법인 은평천사원은 12개의 시설로 그 규모도 몹시 커졌다. 새 비전 선포식도 가졌다. 50주년을 맞는 은평천사원은 새로운 50년을 맞기 위해 꼼꼼한 준비를 하고 있다
 
6월 17일 오전 10시 법인 원장실에서 천막 시절부터 시작해 사회복지사업의 외길을 걷고 있는 조규환 원장(74세)을 만났다.
 
▲대영학교 건물 내에 있는 법인 원장실에서 조규환 원장을 만났다.     ©은평시민신문
은평시민신문(이하 은): 은평천사원과 어떻게 인연을 맺었나 사회복지분야에서 오로지 한길을 걸을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인가?

 
조규환 원장(이하 조): 외국인 회사에서 일할 때다. 윤볜?목사와 인연이 있어 봉사활동을 하러 왔다. 재단이사로 있으면서 아이들을 돌보던 아펜젤러 할머니(한국 초대 선교사 아펜젤러의 며느님)가 “아이들 잘 길러야 한다.”며 같이 일하자고 제의했다. 정동 집에 들렀을 때 아펜젤러 그 분이 “밥 먹는 시간 잠자는 시간만 빼고 온종일 고아를 위해서 일한다.”며 ‘외국인 친구 교회 기관들에게 돈 달라고 편지 쓰던’ 모습을 보며 감동받아 회사에 사표를 내고 시작해 50년이 흘렀다.
 
이 일을 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었나 싶다. 요새 와서 느끼는 거는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이) 천사원 원장으로 (세상에) 보내준 거 같다.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었던 것은 보이지 않는 힘이 나를 지탱해 주었고 일할 수 있게 했다. 50년을 지나오면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이루어졌다.
 
은: 몇 개 칼럼을 읽어보니 일을 시작할 때 이미 충분히 준비가 되어 있다기보다 필요하면 먼저 일을 벌이고 이후에 돈이든 사람이든 필요한 내용을 조직하는 것 같다. 늘 그렇게 할 수 있는 에너지랄까 그게 궁금하다.
 
: 일반 고아원에서 재활원 한다 할 때 주변에 있는 의사 친구들이 다 반대했다. 정부도 제대로 못하고 밥만 먹이는데 너희 같은 고아원에서 어떻게 하느냐며 장애자는 치료도 해야 하고 시설도 많이 필요하다며 절대 안 된다고 말렸다.
 
그래도 시작했는데 장애자 고아원을 짓고서는 바로 교육부 찾아가서 아이들 교육시키게 해달라고 했다. 지금은 복지법인이 학교인가 못하지만 당시에는 가능했다. 지금은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특수학급도 있지만 당시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쉽게 허가를 내 주었다.
 
장애자학교에 부모님들이 아이들 업고 와서 고생하는 거 보고 치료 시설 빨리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복지관을 하기로 하고 여기저기 돈 달라고 손을 벌렸는데 내가 지금 와서 생각해도 모르겠지만 엄청난 돈이 들어왔다.
 
도로에 편입된 땅이 있어서 김병주 구청장한테 보상 좀 해 달라 했다. 재판해야 된다고 하더라. 하지만 얼마 뒤 그냥 시가보상 2억 5천인가를 해 주었다. 그런 바람에 천 평 복지관을 지었다 아이들 물리치료 받는 거부터 시작했다. 내가 보기에는 전부 불가능할 거 같은 일도 하기만 하면 됐다.
 
은 : 지금은 재활체육센터에 재활병원도 세워졌다. 정부의 지원은 어느 정도였나?
 
: 두 곳은 정부 지원 많이 받았다. 장애자는 조기치료하면 좋고 늦을수록 더 어렵다. 아동장애인병원 지어서 치료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59년 처음 시작할 때 미 8군 의사들이 고아원 아이들 진료하고 결핵촌 환자들도 진료했다. 의사들이 자원봉사하고 가난한 사람들 치료해 주면 좋겠다 싶어 정관에 기독의원 한다고 해 놓았다. 정부 지원 받고 내 돈 내어 재활병원을 지을 수 있었다.

하나하나 시작한 거가 이렇게 되었다. 장애자에게 필요하다면 해 놓고 또 해 놓고... 50주년 행사 때 왔다 갔는데 1982년에 자원봉사 왔던 미국 사람이 장애인들은 수영이 장애재활에 좋다고 조언해 주었다. 체육관 지어 수영장 만들어야겠다고 했는데 그것도 되었다. 너무 좋게 지어놓아 매년 2억씩 적자가 난다. 처음에는 다른 곳보다 저렴하게 40%만 내고 이용하게 했으나 운영상 지금은 50%만 할인한다. 언젠가는 장애인에게 무료로 이용하게 하려고 생각하고 있다.  

은: 소박하게 출발했으나 사회복지기관으로 큰 규모를 이루었다. 어떤가?

: 장애인 시설로는 국내에서 따라올 데가 없고 세계 어디에도 우리 같은 기관이 없다. 우리같이 종합적으로 하는 데가 없다. 장애자 시설부터 학교 복지관 병원 체육관 자잘하게는 보호 작업장 장애자 직업알선 해주는 것까지. 장애자 프로그램에서도 ‘그룹 홈’도 먼저 했고 이동 목욕도 정부에서 하기 전에 기업 후원을 받아 먼저 시작했다

다른 데보다 앞서 갈 수 있었던 것은 친구 덕이 컸다. 지금은 세상을 떴는데 나보다 일곱 살 위인 친구였다. 일제 때 학교 선생을 했는데 일본말을 잘 했다. 그 친구가 일본책을 자꾸 번역해 주어 장애자 관련 책을 읽어보며 이거 해야겠다 저거 해야겠다 생각했다. 제 책상에 번역해 놓은 책이 쌓여 있다. 그 친구 가족은 4대에 걸쳐 후원하고 있다.

▲  조규환 원장   © 은평시민신문
은: 장애인들을 대규모 시설에 수용할 것이 아니라 자립해서 살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장애인자립생활지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 시설들이 100 명이상씩 되어 있잖아요. 정부사업이 소규모시설로 축소하려고 해요. 장애인단체에서 ‘시설들이 집단으로 수용소 같지 않느냐’며 정부에다 건의하고 그러니까.

미국 구라파 같은 경우에는 고아원이 없다. 장애가 발생하면 호스트케어로 돈 주고 가정에 보내서 18세까지 돌보고 내보낸다. 정부 돈으로 가정에서 나이 찰 때까지 길러준다. 하지만 이 방법은 성공하지 못했다. 우리 방식보다 더 나쁜 것 같다. 우리는 아이들 길러 대학 다니는 애들 많고 세계적인 박사도 여러 명 나왔지만 가정위탁으로 가는 경우 성공한 경우 별로 못 봤다.

우리도 그룹 홈 4개 만들어 정부에서 지원받아 4명씩 집 얻어서 나가 살고 있다. 앞으로 이런 소규모 그룹 홈으로 가겠다는 건데 좋은 점은 부모님들이 내가 죽으면 어떡하나 걱정하는데 그룹 홈에서 평생 죽을 때까지 있을 수 있으니까 안심이 된다는 거다. 장단점이 있는 거 같다.

은: 대규모로 시설에 수용되는 것보다 장애인들이 지역사회로 나와 생활할 수 있어야 하는데 사회적 시스템이 안 되어 있다는 지적도 있다.

조: 직업훈련해서 취업시키는데 대기업 같은데서 장애인 고용 안 하잖아요. 대기업도 패널티 물고 말지 안한다. 장애인에게 취업 훈련시켜주고 조금 돈 들더라도 훈련시켜주고 일하도록 희망주고 적응해서 직업도 통합하고 생활하는 것도 통합되어야 하는데 마인드가 아직 부족하다. 거추장스러워한다. 그게 문제라고 본다.

은: 사회복지법인은 錚뺐?운영되나? 정부 지원을 받지만 재단이 소유하고 운영하는 것인가?

조 : 사회복지법인은 모든 재산을 정부에서 관리한다. 땅 한 평도 법인 돈을 못 써요. 일본의 경우 3천억 돈 들여 시설 지어서 위탁하면 등기 재산까지 (사회복지법인에) 다 넘겨줘요. 어떻게 그러냐고 물어봤더니 사회복지법인은 정부가 다 관리하는데 잘못하면 법인이사 바꾸면 되고 맘대로 하면 나가라 하면 그만이다라고.  우리는 노인복지 사회복지 시설 정부에서 지어서 시립 도립 구립으로 한다. 앞으로 우리도 일본처럼 될 거다.

횡령이나 그런 사건이 일어날 거 같으면 정부가 재단도 뺏을 수 있고 다 내보낸다. 사회복지법인 재산은 개인 거가 아니다. 사회복지사업을 하기 위해 내놓은 거기 때문에 국가 거다. 전국의 사회복지시설 원장들이 과거의 문제점인데 ‘내 재산 백 퍼센트 내서 내 거다.’라고 생각해 땅도 팔아서 다른 용도로 쓰다가 구속되고 했다. 내 재산 내놓고 해놓은 거라도 재산 팔아서 다른 데 쓰면 구속되고 법인까지 다 뺏긴다.

구청에서 일 년에 2번 시청감사가 열흘 동안 세 사람 와서 하고 감사원 감사도 한다. 국가가 개입한다. 잘하면 내 거지만 잘못하면 뺏기는 거는 세상 진리 아니냐?  대우 같은 대기업도 누가 뺏길지 어떻게 알았느냐. 뭐든지 잘해야 자기 거다. 남편과 부인 사이도 마찬가지 아니냐? 잘못해 이혼하면 남이 되어 다 뺏기는 거다. 사회복지법인도 뺏긴 데 많다. 대한사회복지회는 병원도 있는 큰 시설인데 1980년대에 문제가 되어 관선이사들이 들어가 설립자가 손 떼게 만들었다. (이어서 계속)
 
  사회복지법인 은평천사원 현황과 주요 연혁
  
2009년 현재 ‘사회복지법인 은평천사원’은 나눔센터와 아동시설인 은평천사원 장애인을 위한 시설로 은평재활원 은평기쁨의 집 그리고 은평대영학교 서부장애인 복지관 서부재활체육센터 서울재활병원 보호작업장 누야하우스 은평장애인작업활동장 모자쉼터인 흰돌회를 직접 운영하고 있으며 갈현노인복지센터와 청소년수련관을 위탁운영하고 있다.
 
아동 양육시설인 천사원에 89명 재활원에 77명 기쁨의집에 50명 흰돌회에 35명 등 모두 251명이 생활시설에 살고 있으며 기관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10만 명이 넘는다. 직원 600명에 월평균 2200여 명 연간 2만 6천여명이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어마어마한 규모다.

은평천사원은 연간 대략 300억 원 재정규모다. 국가 지원이 170~80억으로 이는 국가가 제공하는 평균적인 사회복지서비스와 인건비 등으로 사용되며  총 재정의 5%를 차지하는 자발적 후원 14~5억 원 정도는 국가가 최소로 제공하는 사회복지서비스 이외에 은평천사원 생활시설과 이용자의 삶의 질을 높이는 사회복지 서비스 비용으로 쓴다. 예를 하나 들면 천사원 아동의 심리 정신과 치료나 학원 가는 비용 등이다.  
 
1959 故 윤성렬 목사 은평천사원 설립 
1961 재단법인 은평천사원 설립인가 
1962 육아시설 은평천사원 설립인가 
 
1980 정신지체아재활시설 은평재활원 개원 
1981 은평대영학교 개교(정신지체아동 특수학교) 
1991 기독교대한감리회 참빛교회 창립(장애인을 위한 선교회) 
1991 한국장애인복지연구소 개소 
1993 은평천사원 출판부 등록(도서출판 인간과 복지) 
1994 서부장애인종합복지관 개관 
1995 햇빛동산 개소 (주간단기보호) 
1997 서부장애인종합복지관 보호작업장 설치 
1998 서울재활병원 개원 
 
2000 은평장애인작업활동장 설치 
2002 서부재활체육센터 개관 
2003 서울특별시립 은평청소년수련관 개관 
2004 흰돌회 노숙인(모자가족)쉼터 위탁운영 
2005 흰돌회 출소자쉼터 운영 
2005 역촌노인의집 위탁운영 
2006 갈현노인복지센터 위탁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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