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들이 직접 만들어 파는 수제 쿠키'매장에 안나오면 살아가는 의미가 없어요'

10일 오후 3시 자그마한 가게에 동네 주민 한 분이 들어온다. “여기 과자가 맛있더군요.” 하며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들러 한 봉지를 사 간다.
 
이어 즉석 납품 상담이 이루어진다. 근처 교회에 새롭게 자리 잡은 카페가  커피와 함께 쓸 쿠키를 구입하려고 종류나 가격대가 어떤지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00교회 카페에서 이 쿠키를 이용한다고 해서 들렀죠. 종류별로 다 하나씩 맛도 보고 해야죠.” 즉석 납품 상담이 난관(?)에 봉착하는 순간이다. 오늘은 매달 50만원 어치 상당의 쿠키를 구입해 주는 한 기업체에 주문 생산된 양이 나가는 바람에 매장에 남은 쿠키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 모르는 사람은 훌쩍 지나칠 법하다. 동네의 고만고만한 건물들 사이에 붉은 벽돌을 배경으로 ‘쿠키&커피 전문점 까르페디엠’이라는 흰색 간판이 걸려있다. © 은평시민신문
'똘레랑스 쿠키'라네요 ...  ‘쿠키&커피 전문점 까르페디엠


은평구 갈현동 길에서 길마공원 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공원 못 미쳐 부동산 학원 등 동네에서 흔히 보는 가게들 속에 묻혀있는 자그마한 가게를 만날 수 있다. 모르는 사람은 훌쩍 지나칠 법하다. 동네의 고만고만한 건물들 사이에 붉은 벽돌을 배경으로 ‘쿠키&커피 전문점 까르페디엠’이라는 흰색 간판이 걸려있다.
 
오전 10시 ‘현재의 삶을 즐겨라’ ‘현재의 삶에 충실하라’는 까페 이름에 걸맞게 분주한 하루가 시작되고 있다.   
 
이혜림 직업재활팀장과 두 명의 직업훈련교사가 가게와 에버그린복지재단 내 작업시설장을 오가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회원들이 이곳에서는 반죽을 하고 모양을 만들어요 냉동고에 들어갔다가 반죽 썰기 오븐에 굽기 등 다음 작업은 가게에 붙은 주방에서 하는 거죠.”
 
‘회원’이라니? 누굴 말하는 거지? 가게 매장과 주방 작업 시설장에서 일하는 스무 명 가량의 사람들을 ‘직원’이라고 하지 않고 ‘회원’이라고 부르는 건 나름 이유가 있다. 이곳은 정신장애를 겪었던 사람들이 치료 후 직업이라는 통로로 여러 사람들과 소통하고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는 작업시설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조금 특별한 아니 전혀 특별할 것 없는 사람들이 모여 공동 작업을 하고 있는 이 시설에서 만들어진 쿠키의 상품명이 ‘똘레랑스 쿠키’라니 이름 한 번 잘 지었다.  ‘다른 사람에 대한 관용과 존중’을 뜻하는 말이니 이 예사롭지 않은 쿠키 이름이 ‘정신장애인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우리 사회에 함께 하기를 원하는’ 그린보호작업시설의 뜻에 잘 어울린다고 할밖에.
 
직업재활팀장인 이혜림 선생은 이번에 처음 만난 게 아니다. 지난 ‘장애인어울한마당’ 행사장 한 쪽에서 쿠키를 팔고 있을 때 본 것. “저희 매장도 있어요.”라고 자랑하며 “취재 좀 와주세요.”하는 말 속에 어떻게든 이곳을 알리고 싶어 하는 그 선생의 절박(?)하고 애교 있는 목소리가 기억에 남았었다. 열의나 진정성이 느껴졌다.
 
쿠키 상품을 개발하는 일 작업 공정에 익숙해질 때까지 회원을 교육하는 일 회원들이 역할분담을 해 쿠키를 만드는 일 포장과 진열 매장관리 제품을 홍보하고 알리는 일 등 똘레랑스 쿠키가 탄생해 소비자에게 전달될 때까지 참 많은 과정이 필요하다. 이 과정 하나하나에 이혜림 선생같은 이의 손길이 담겨있다. 

▲  초코 호두 쿠키 천연버터를 사용한 샤브레 등 12가지 제품을 만들 수 있다.   © 은평시민신문
'처음부터 쿠키를 만든 건 아니었어요'...호텔급 쿠키가 나오기까지 


에버그린 복지재단 내 ‘에버그린하우스’는 2001년부터 장애인재활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장애인 재활을 돕는 기관으로 활동하다 거기까지 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싶어 2004년 장애인 직업재활시설인 ‘그린보호작업시설’을 열었다.
 
“처음부터 쿠키를 만든 건 아니었어요. 지하철에서 깜빡깜빡 불빛이 나는 시그널 램프를 조립 포장해서 납품하는 임가공 하청도 했구요. 그것마저 중국으로 넘어가서 핸드폰 고리 악세서리 포장 등 여러 임가공 작업들을 전전했죠.”
 
그러다 2005년 실업극복국민재단 지원 프로그램으로 선정되었고 장소가 임가공만 하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에 ‘알뜰장터 사랑의 동네가게’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무작정 동대문 시장 나가서 물건부터 주십시오 했죠. 그렇게 문구류 여성들 지갑 가방을 팔았어요. 동네 주민들과 아나바다 알뜰장터도 했고. 그러나 근로 장애인들이 끌고 나가는데 한계가 있다고 느꼈어요.” 김 팀장은 당시를 그렇게 회상했다.
 
무언가 기술도 배우면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하던 중에 쿠키 만드는 일을 생각했다. 2007년에 ‘장애인직업재활기금사업’으로 선정되어 지원비를 받아 고가의 오븐도 장만하고 작업대며 반죽기 등을 구입했다. 그러나 쉬운 일이 어디 있으랴. 임가공과 병행하면서 쿠키제품을 상품화하는 데까지 일 년이 걸렸다.
 
2008년에는 다섯 가지의 상품을 만들어 판매 홍보하고 활동했다. 올해 들어서 임페리어 팰리스 호텔 김현진 파티쉐의 자원봉사로 신상품 개발 교육도 시키고 제품도 다양화했다. 천연버터가 들어가는 쿠키 초코쿠키 마들렌 호두 쿠키 녹차 쿠키 등 12가지 제품을 만들 수 있게 된 것.
 
임현정 직업훈련 교사는 “호텔급 쿠키를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맛볼 수 있는 거죠.”라며 “버터만을 써 트랜스지방이 없고 정직한 손길이 담긴 수제 쿠키로 오븐에 갓 구워 신선한 상태로 주문 생산하는 게 강점이다.”고 자랑한다.
 
▲ 냉동된 반죽을 썰고 있다    © 은평시민신문
▲  자 ! 자로 썬듯 모양을 낸 쿠키를 이제 오븐에 넣어야죠.   © 은평시민신문
▲  잘 구워진 쿠키를 포장하고 진열하고 있다.   © 은평시민신문
"매장에 안나오면 살아가는 의미가 없어요."

작년 10월부터 일하고 있다는 연주(가명 28세)씨는 “지하철 택배 일을 한 적이 있는데 부담이 컸다. 이 일은 큰 부담감 없이 할 수 있어 좋다.”며 “냉동 쿠키를 칼로 써는 일을 하는데 달인은 아직 아니다. 정확해야 하는데 그렇게는 안 된다. 모양을 잘 못 낸다.”고 말한다.
 
쿠키 만드는 일이 재미있는 건 아니지만 ‘일을 한다’는 마음으로 하고 있다는 연주씨. 여건이 된다면 밴드를 만들어서 음악을 하고 싶고 베이스기타를 연주하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다.
 
미선(가명 49세)씨는 쿠키 포장을 맡고 있다. 그래서 주방이 아니라 카페 매장에서 일한다. 한창 나이일 때 ‘미싱을 했다’는 그녀는 “지금은 다 잃어버려서 못한다.”며 대신 “이보다 더 힘든 일은 하기 어렵지만 (작업시설)에 안 나온다고 생각하면 살아가는데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씩씩하게 웃는다.
 
이혜림 팀장은 장애인 재활의 통로를 지역사회 속에서 만드는 게 절실하다고 말한다. “회원들이 자발성이 부족하고 순발력이나 상황처리능력 상황판단능력이 낮은 편이다. 이는 사회속에서 부대끼며 훈련되는 건데 조금 이해해 주시고 고용해주는 사업장이 있다면 향상이 되고 지역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데 그게 쉽지 않다.”는 것.
 
또 “우리 신념은 회원들이 지역사회로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수급권자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약값 부담이 크고 의료비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 때문이다. 일반업체로 나가 일하다가 수급권에서 탈락한 채 다시 돌아오게 될까봐 조심스러워 한다.”고 말했다.

▲   밀가루를 계량하고 반죽한 후 틀에 넣어 모양을 내고 있다.   © 은평시민신문
현장판매를 위해 어디든 간다...지역사회와 소통 관계망 만드려는 바람 


매 번 주문 생산을 하는 ‘똘레랑스 쿠키’는 보통 오전 10시에 시작해 늦어도 오후 세시쯤이면 그날 작업이 끝난다. 평균적으로는 하루 3시간 정도 일한다. 회원들은 세 시 이후 나들이도 하고 재활 프로그램도 참여하고 최근에는 은평구의 ‘장애인 재활 수영’ 지원비로 수영복 등 물품까지 장만해 수영을 하고 있다. 이게 건강에 도움이 많이 된다며 이팀장은 반가워했다.
 
‘까르페디엠’ 그린보호작업시설은 은평구 어디에서 바자회가 열리면 ‘현장 판매’를 위해 쿠키를 들고 나가는 일이 많아졌다. 일산의 한 아파트 단지 내 장터에는 고정적으로 나가고 있다. 용산역 아이파크몰 VIP룸은 근처 현장판매에서 쿠키 맛을 보고 정기 구매를 하고 있으며 각종 학회나 세미나 간식용으로 두 군데 기업체에서 구입하는 등 관심이 점점 생기고 있다.
 
그 가운데 SJC 서울재팬클럽 일본 부인회에서 일본 지역 내 판매망을 연결해 주고 소개하는 등 ‘똘레랑스 쿠키’의 판매처가 늘어나고 있다. 
 
매출액이 아직은 미미해 20명 가량의 회원 급여와 재료비 구입에도 빠듯하지만 장애인들이 ‘직업에 준하는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 여느 사람처럼 매일 출근해서 일하는 것 그게 주는 기쁨’을 나누고 이를 통해 지역사회에 스며들게 하고 싶은 게 꿈이다.
 
홍재현 그린보호작업시설 시설장은 “위캔쿠키처럼 우리밀을 사용하는 유기농 쿠키도 생각중이다. 시도해 볼만하다.”고 말하며 ‘똘레랑스와 함께하는 쿠키체험’으로 지역주민들이 오븐을 이용해 쿠키를 만드는 프로그램은 지금은 중단된 상태지만 다시 재개하고 싶다고 말했다. 장애인 직업재활시설이 지역사회와 소통하고 지역사회에서 관계망을 만들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을 안고.
 
수제쿠키의 달콤한 맛을 느끼고 싶다면 02-352-2477/02-352-2475/ 017-409-9759로 주문하거나 연락하면 된다. 택배로도 배달해 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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