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구성심병원 간호사들과의 대화…끝없는 노조탄압 언제까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했던가. 봄은 왔으나 아직 봄을 맞지 못한 우리네 이웃들이 있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유지하는 것이 우리나라처럼 힘든 나라가 또 있을까? 노동자들의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은 노동3권으로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이다. 그런데도 노동자들의 기본권을 유린하고 폭언과 폭행을 일삼는 몰지각한 사업장이 한 두 곳이 아니다. 은평 유일의 종합병원임을 자랑하는 청구성심병원도 이런 곳 가운데 대표적인 사업장이다.
똥물에 식칼테러 조합원 집단 우울증 등의 정신질환 산재 판정 전 지부장의 죽음 한 간호사의 자살시도…. 병원 노조탄압의 대명사 ‘청구성심병원’의 우울한 자화상이다. 최근 병원 리모델링으로 겉모양새는 좋아졌다지만 속조차 좋아진 건 아니다. 노동조합과 노조원에 대한 탄압은 10년 여 동안 줄기차게 이어져오고 있다.
|
4월 19일 토요일 오후 연신내 청구성심병원에서 50여 미터 떨어진 국민은행 앞에서 캠페인이 벌어졌다. ‘청구성심병원 정상화를 위한 의료지원’. 은평구 주민들을 대상으로 간호사들이 혈압과 혈당 등 건강체크를 무료로 해주고 있었다. 주민들의 호응도 좋았다. 무료도 그렇거니와 간호사들이 직접 나와 상담을 해주는 경우가 흔치 않기 때문이다. 흰 가운을 입은 간호사들의 표정도 봄 햇살 만큼이나 밝아 보였다. 역시 간호사는 간호사일 때 빛을 발한다. 무슨 말인가? 이날 캠페인에 나온 두 명의 수 간호사는 더 이상 환자들을 직접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폭언과 노조탄압이 일상화 된 하얀거탑
이은혜(45 가명) 씨는 수 간호사다. 84년부터 간호사 일을 시작했으니 25년의 긴 세월이다. 능력도 인정받고 많은 직원들에게 신망도 두터웠다. 그런데 이런 간호사가 지난 3월1일부터 병동이 아닌 고객지원팀에서 일하고 있다. 수 간호사를 업무와 상관없는 곳으로 발령을 낸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처사였다. 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은혜 씨는 간호사란 직업을 천직으로 여기며 한 때 결혼도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고 한다. 3교대의 고된 일임에도 피곤한 줄 몰랐다. 환자들을 돌보며 보람과 자부심을 느껴왔기 때문이다. 그런 자존심이 한 순간에 어긋난 것은 청구성심병원과의 인연이었다. 99년이었다. 나이팅게일 정신으로 희생과 봉사가 그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노동조합은 불온해보였고 노조 때문에 회사가 망한다고도 생각했다.
수 간호사로서 노동조합과 조합원을 탄압하는데 앞장섰다. 아니 앞장설 수밖에 없었다. 위치가 그러했다.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사표를 쓸 각오를 해야 했다. “누구누구 내보내라. 못하면 선생이 나가야 한다.” “당신은 일 안해도 좋으니 노무관리 해라.” 압박은 심했다. 노조에 가입한 비슷한 연배의 수 간호사를 병원 한 켠에 감금하고 사표를 종용하기도 했다. 조합원은 회식에서 배제했고 아무리 일을 잘해도 조합원에게는 인사고과를 주지 않았다. 노조가 병원을 말아먹는 줄 철썩 같이 믿고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회의가 또아리를 틀었다. 욕설은 기본이고 거짓진술에 폭력까지 사주하는 병원측의 행태가 도가 지나쳤기 때문이다. “이건 아니야!”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
‘멍텅구리 하빠리 삿대질에 쌍 시옷 욕이 예사인 병원. 목주름을 다리미로 펴야겠다 노조원들은 피부를 포를 떠 죽어가는 걸 보고 싶다 윤간을 시키고 싶으니 집을 알아보라고 하는 등등.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이 부지기수였다.
이런 병원은 처음이었고 윗사람을 존경하래야 존경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조합원 돌잔치나 경조사에 마음 놓고 갈 수도 없고 회식자리도 지정된 곳에 앉아야 했다. 이건 너무 심한 것 아니냐고 약간의 항변이라도 할라치면 돌아오는 답은 가관이었다. “00씨 오래 일하고 싶죠. 그럼 말 들으시죠.”
환자 곁에 있어야 할 간호사들 그들은 지금
다시 이 간호사의 이야기다. 2006년 4월 은혜 씨는 내과에서 중환자실로 발령을 받았다. 환자한테 폐결핵이 옮아 치료가 필요한 은혜 씨였다. 안가면 그만두라는 식이었다. 누구도 잘 가려하지 않는 힘든 곳엘 회사에 누구보다 충성한(?) 자기를 보낸 것이었다. 토사구팽이라 했던가. 조합원이 10여명으로 줄어들자 병원은 더 이상 수 간호사가 필요 없다고 판단했는지 모를 일이다. 은혜 씨는 억울하고 답답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병원측의 행태에 진절머리가 쳐졌다. 하소연할 곳을 찾다가 노동조합의 문을 두드렸다.
“도움이 필요할 때 언제든 전화하세요.” 차 한 잔을 건네며 던지는 살가운 말 한마디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내가 이런 사람들한테 몹쓸 짓을 했구나.” 회한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것도 자신이 불이익을 줬던 동료 간호사였기에 더욱이. “미안해! 정말 미안해!” 은혜 씨는 몇 번이고 이 말을 반복했다.
|
병원측은 ‘청구가 망하면 너희들 때문’이라고 책임을 전가했다. 일은 고되었고 긴장과 스트레스의 연속이었다. 조그만 실수도 비조합원은 무마되지만 조합원에게는 경고가 내려지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잘 참고 버텼다. 은혜 씨를 믿고 따르는 간호사들이 하나 둘 노조에 가입하기 시작했다. 병원측은 다시 발령을 내 고객지원팀으로 보냈다. 홈페이지를 관리하고 환자들의 사후상담을 하는 일이었다.
매일 아침 친절조회도 나오지 못하게 했다. 예전 같으면 친절조회에 빠지면 당장 불호령이 떨어졌을 판이었다. 23~24년 간호사 일을 천직으로 여기며 환자와 더불어 살아온 간호사들에게 모욕적인 전환배치였다. “집에 가도 의욕이 없고 우울해요. 집안일도 하기 싫어 널브러지기 일쑤에요.” 김 간호사가 말을 받았다. “요즘은 잠도 안 오고 견디기 힘들어요. 후배 간호사들 보기도 민망하고 빨리 본연의 업무로 돌아갈 수 있었으면 해요.”
이러다가 정신병 얻고 황폐화 될까봐 그만둘까도 생각하지만 동료들을 생각하면 그럴 수 없다는 그들. 무엇이 이들을 숱한 언론 인터뷰에서조차 얼굴을 드러내지도 못하고 가명을 써야하는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나? 병원측의 탄압에 속수무책으로 당해야만 했던 아무에게도 도움 받지 못했던 긴 시간.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는 동료들의 무표정한 얼굴을 마주 대하는 것도 퇴사하고 다른 병원으로 가려는 후배들을 떠나보내는 마음도 아려온다. 언제쯤 이 참담한 시간은 끝이 날까.
가족중심 병원을 강조하는 청구성심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한결같이 말하고 있다. ‘직원이 행복한 병원이 치료받는 환자도 행복한 병원’이 될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