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집 음반 <기억과 상상> 펴낸 민중가수 이지상

▲ 이지상의 노래는 소박하다. ⓒ 김진아
이지상의 노래는 소박하다. 눈물 많고 속 깊던 옛날 그 오라버니의 목소리를 닮았다. 그의 노래는 도닥도닥 어루며 타이르는 듯도 하고 조용히 속내를 털어놓는 듯도 하다. 노래의 한 음절마다 그는 이렇게 읊조린다. “그동안 이만큼 오느라 힘들었지? 잘 했어. 참 잘 했어.”

이지상의 노래는 한결같다. 15년 전 ‘조국과 청춘’이나 ‘서총련 노래단’에서 열띤 투쟁가요를 부를 때나 네 번째 음반을 펴낸 지금이나. 사회의 아픔과 고단한 삶을 이어가는 후미진 뒷골목의 사람들에게 그의 시선은 머물러있다. 이십대에서 마흔으로 세월은 그에게 ‘중년’이란 이름을 달아줬지만 이지상은 여전히 이십대다.

고통의 기억 그리고 아름다운 상상

이지상의 네 번째 음반 <기억과 상상>을 처음 들으며 나는 한동안 일손을 멈춘다. 그의 노래가 다른 일을 할 수 없을 만큼 현란하거나 귀를 장악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이어폰을 꽂고 흘려들어도 좋을 만큼 “무난한” 곡들이다. 하지만 그의 노래들은 분명 오래 전에 잊혀진 무엇을 생각나게 한다. 그의 노래들은 “너 혹시 이런 것 잊고 있진 않았니?”라고 묻는다.

이지상은 이라크전쟁에서 스러져간 한 아이의 죽음과 저 뒷골목으로 밀려난 철거민들의 눈물과 미군 탱크에 깔려 숨진 미선이와 효순이를 폐지를 주워 삶을 연명하는 독거노인의 쓸쓸함을 기억한다. 그리고 노래로 되살려냈다. 네 번째 음반 중 첫 번째 시디 ‘기억’에 그것을 담았다.

하지만 어디 사람이 고통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첫 번째 시디 ‘기억’이 모든 아픔과 고통의 결정체라면 두 번째 시디 ‘상상’은 조금은 밝은 희망을 노래한다. ‘내가 나를 포기하지 않으면’(‘내가 나를 포기하지 않으면’ 중) 언젠간 희망은 너의 것이라고 말하고 슬픔을 기억하기보다는 ‘우리가 자라나는 영혼의 나무’(‘손톱은 슬플 때 자라고’ 중)임을 잊지 말자고 한다. 기억과 상상 이지상은 네 번째 음반에서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사회의 아픔과 고통은 개인의 일상이나 행복과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아픔과 고통을 외면해서도 안 되지만 개인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아픔 역시 소중하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고통의 기억과 밝은 희망을 꿈꾸는 것. 그것을 결국 하나다.”

지도 없는 여행을 떠난 방랑자

15년. 강산도 변한다는 세월이다. 이지상은 10년을 훌쩍 넘긴 시간을 한결같이 노래를 부르고 만들고 연주했다. 이십대의 이지상이 그랬듯 마흔줄을 넘긴 이지상은 여전히 통기타를 들고 노래한다. 머리가 조금씩 희끗해지고 알게 모르게 생긴 주름이나 나잇살이 붙기도 했지만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그의 마음은 그대로다. 하지만 세월의 무게가 그리 만만치는 않은 법. 시간 속에서 그 스스로 느끼는 변화는 없을까. 자신의 지나온 삶을 어떻게 평가하냐는 질문에 이지상은 “왜 자신을 꼭 평가해야 하냐”며 되묻는다.

“나는 내가 어떻게 변했는지 모른다. 자신이 키가 자랄 때 키가 크는 것을 느낄 수 없듯이. 이를테면 예전엔 차가 없어 낑낑대고 악기를 들고 다녔지만 지금은 중고차라도 끌고 다닌다거나 자장면을 시켜먹던 내가 탕수육도 함께 시켜먹을 수 있게 됐다는 것… 그런 변화 말고는 나 자신에 대해 평가하기 어렵다. 궁금하지도 않다. 왜냐하면 나는 여전히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마흔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길 위에 서 있다는 이지상. 그는 지금도 길을 떠나고 있기에 여행을 떠나고 있기에 스스로에게 어떤 평가도 내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떠난 여행을 ‘지도 없는 여행’이라 이름 붙인다. 정해진 목표나 확고한 성취를 담보하지 않는 삶. 조금은 답답하고 불안하지만 그만큼 많은 곳을 보고 느끼고 움직일 수 있기에 스스로 지도 없는 여행을 떠났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지상에게도 유혹의 순간은 있다. 여행을 다니다보면 가끔 만나게 되는 좋은 곳 좋은 사람들과 머물러 쉬고 싶을 때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안주의 유혹이 길 떠난 이지상을 멈추게 하지는 못했다. 안주하고픈 욕망과 바람은 가슴 속에 그대로 간직한 채 이지상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신발끈을 고쳐 매고 일어섰다. 그리고 이지상은 지금 여기에 서 있다.
▲ ⓒ 김진아

“고단한 삶의 비주류들이여 나는 그대들의 동반자입니다”

이지상은 유명가수가 아니다. 하지만 아는 사람들은 알음알음 들어 아는 그런 가수다. 삶과 사회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한두 번쯤은 들어보았을 법한 노래를 하는 그는 비주류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품어보았을 욕망이었을 텐데 이지상은 그 흔하디 흔한 출세욕조차 없다. 한술 더 떠 스스로를 ‘비주류’라 말한다. 스스로 비주류가 된 사람 스스로 길 위에 핀 이름 없는 들꽃이 된 사람 이지상은 3집 음반에 이렇게 적었다.

가뜩이나 작은 내 몸 안에 더 작게 둥지를 튼 노래가 있어
어디 비집고 들어갈 틈새 하나 없는 세상의 숲에
가느다란 위로의 새 울음 되려 했으나

나의 위로는 간 데없고 켠켠이 쌓인 세월만큼의 당신이
내게 돌아와 내 가슴을 쓸어 줍니다.

비주류 10년 이젠 그 말이 두렵지 않습니다.
내 노래를 품어주는 당신이 비주류라면 나또한
언제나 그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 3집 <위로하다 위로받다> 프롤로그에서


가수 이지상을 만나던 날 그는 강의를 했다. 평화를 주제로 노래와 이야기로 젊은이들을 만난 그는 강의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평화’라는 것은 ‘나는 왜 평화롭지 않은가’라는 자성적 질문에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쟁의 반대로서 평화가 아니라 나의 내면이 나와 이웃과의 관계가 내 삶의 소소한 일상들이 평화롭지 않다는 사실. 그곳이 바로 평화에 대해 고민해야 할 지점이다. 평화로운 세상은 모두가 함께 평등한 세상 고루고루 음식과 삶을 나눌 수 있는 세상이다. 평화는 그 목표를 향해 가는 모든 과정과 거대한 움직임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삶도 또 여러분의 모든 삶 또한 평화롭길 바란다.”

네 번째 음반으로 인사를 건넨 가수 이지상. 여전히 ‘지도 없는 여행’의 ‘비주류’ 나그네로 서 있는 그를 보며 흐드러지게 피어 아름다운 이름 없는 들꽃을 떠올린다. 그 어떤 화려한 꽃처럼 도드라지진 않지만 철마다 계절의 싱그러움을 가득 머금은 들꽃의 아름다움. 부드러운 치열함과 강인한 생명력으로 노래하는 이지상의 다음 행보가 기다려지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 ⓒ 김진아



이지상의 4집 음반 <기억과 상상>

▲ 이지상 4집/ 실미디어/ 2CD/ 11000원
2002년 3집 <위로하다 위로받다> 출시 이후 4년 만에 펴낸 이지상의 음반 4집은 기억과 상상이라는 2개의 시디로 구성돼 있다. 이라크전쟁의 아픔을 담은 ‘오늘도 한 아이가’ 금전만능의 세상에 대한 비판을 담은 ‘미련한 세상’ 철거민들의 삶과 눈물을 담은 ‘해빙기’ 등을 담은 첫 번 째 시디 ‘기억’과 사랑에 대한 아픔과 기억을 담은 ‘나는 그대의 또 하나의 몸’ 삶에 대한 희망과 성찰을 담은 ‘손톱을 슬플 때 자라고’ 등을 담은 두 번째 시디 ‘상상’이 그것이다. 이번 음반에는 3집 이후 이지상이 꾸준한 작사 작곡 활동을 하면서 시의성 때문에 담지 못했던 여러 노래들을 담았다. 시 노래운동 <나팔꽃> 동인인 이지상은 이번 음반에서 역시 정채봉 도종환 김경환의 시에 노래를 붙여 담기도 했다.
음반은 http://www.disc4u.co.kr http://blog.naver.com/chonchang 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



















김진아씨는 인터넷웹진 에큐메니안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 글은 에큐메니안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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