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현주 목사의 반자본주의 실험 주식회사(主式會社) 놀이

“주식회사를 하나 만들어 놀아보려고 합니다."

누구 말인가. 저술가이자 번역가로 널리 알려진 이현주 목사의 말이다. 뜬금없이 무슨 주식회사인가. 늘 가난하고 청정하게 살자고 그렇게 실천하며 살아가는 분이 육십 고개를 넘으면서 돈 욕심이 났는가. 좀 더 얘기를 들어보자. 그럼 고개가 끄덕여진다.

“株式會社가 아니라 主式會社입니다. 주식(株式)의 논리가 아니라 主님의 논리에 따라서 운영되는 회사지요.”

여기서 주(主)는 꼭 특정종교의 하나님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람도 되고 주인도 된다. 이렇게 해서 ‘유령회사’를 차리고 출판 사업을 시작했다. 출판사 이름은 ‘드림출판’이다. 왜 드림인가. 시장에서 책을 팔지 않고 원하는 사람에게 거저 드린다고 해서 드림이다. 꿈같은 얘기다. 이렇게 해서 첫 책 소걀 린포체의 <삶과 죽음에 대한 매일 묵상>을 펴냈다. 앞으로 책 말고도 다른 제품도 만든단다.

이현주 목사는 이렇게 ‘거저 주는’ 방식으로 이미 <풍경소리>라는 월간지를 내고 있다. 독자가 1천200명에 달한다. 그럼 어떻게 수지를 맞추는가. 매달 이 잡지에는 그 달치 비용이 공개된다. 이달에 제작·발송비로 460만원 썼습니다 하고 공개하면 독자들이 ‘아 이 달에는 적자구나’ 하고 알아서 돈을 보내준다. 이런 식으로 7년째 81권을 내고 있다. 물론 대가 없이 일하는 숨은 일꾼들이 많다. 완전 반자본주의 방식이다. 이번 ‘주식회사’도 이런 실험의 연장이다.


이 목사의 반자본주의 실험 ‘주식회사 놀이’

▲ 이현주목사. 사진:홍승권
이현주 목사의 ‘주식회사 놀이’가 궁금해서 충주시 엄정면 탑평 마을을 찾았다. 농가 주택을 개조한 아담한 집 한 채가 그의 새 거처다. 황구 한 마리가 졸고 있다가 게으른 눈을 뜬다. 보이차를 내리는 이 목사에게 ‘회사’ 일을 묻자 “오늘은 다른 얘기하자”며 손사래를 친다. 널리 알려서 많이 파는 것이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목사가 앉은 뒤로 너른 창을 통해 푸른 대숲이 시원하다.
“충주엔 어떻게 오시게 됐나요?” 하고 묻자 차를 들던 이 목사가 말한다.

“일부러 온건 아니에요. 항상 이사할 때마다 의도 없이 그렇게 됐어요. 옮겨야 될 사정이 생기고 그러면 가 있을 만한 곳이 생기고 그럼 그리 가는 거죠.”

하늘의 뜻인가요 묻자 “모르겠어요” 웃는다. 허허롭다. 요즘 주로 어디에 관심을 두고 있느냐고 이어 묻자 눈길이 깊어진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내가 어따 관심을 두고 있는지 생각을 안 해서 대답하려니 말문이 막히네요. 가끔 줄창은 아니고 죽음이 생각날 때가 있어요. 내 죽음이…. 그걸 관심사라고 볼 순 없을 거야. 그러기 때문에 초조하거나 그런 건 아닌데…. 그동안 말을 많이 했으니까 어떻게 하면 그렇게 살아 볼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지요. 뾰족한 수는 보이지 않고 그저 항상 해오던 일을 그냥 그대로 하는 수밖에 없겠다 싶어요. 선생님(예수님)의 구체적인 지시를 잘 받아서 그걸 실천에 옮겨봐야지요. 좀 막연한 얘기지만 거기밖엔 관심사가 없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일엔 관심이 없으신가 하자 “일부러 찾아다니면서 보지는 않고 보이는 대로 보지요. 일부러 안 보려고 하고 그럴 건 없지요”라는 답이 돌아온다. 관심은 있지만 거리는 둔다는 뜻으로 들린다.

“옛말에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하는데 그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어지럽고 형편없이 돌아가도 거기 휩쓸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찾아야지요. 내가 어디로 가고 싶은데 그리 가고 있는가 내가 엉뚱한 일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돌아보고 아니다 싶으면 손을 놓아야지요. 나는 아주 낙관주의자야. 짧게 보면 세상이 망해가고 혼란에 빠진 것 같지만 그런 절망적인 상황 속에 희망이 있다는 거죠.”

맞는 말이다. 정신 차리고 중심 잡고 사는 게 잘 사는 길이다. 근데 어떻게 하면 정신을 차릴 수 있을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봐야죠. 예수의 말로 하면 내가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걸 아는 거죠. 자기가 어디서 왔다는 걸 알면 가는 건 그리 가는 거니까요. 하느님이 세상에 날 보내셨다 그럼 자연스럽게 날 왜 보냈을까 궁리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아 나더러 이거 하라고 보내셨나보다 알게 되면 그걸 하겠죠.”

▲ 드림출판의 첫 책 <삶과 죽음에 관한 매일 묵상>
위대함과 평범함이 다 같은 뿌리니…

이 목사가 요즘 젊은이들을 만나면 주로 하는 말이 “하고 싶은 걸 하고 살아라”하는 것이다. 잘못은 저질러도 되니까 하고 싶은 걸 하라는 말이다. 어떤 잘못도 심지어 살인도 괜찮은가. 그랬더니 “인간이 잘못을 저질러 봤자 히틀러밖에 더 하겠어요” 하며 웃는다. 그러면서 이런다.

“참 싱거워. 내가 봐도 내가 참 싱거워요. 뭐가 별로 없어. 전엔 그래도 꽤 목소리도 높여보고 그랬던 것 같은데…. 내가 대학과 중용을 10년 만에 새로 개정해서 내거든요. 한 10년 전에 쓴 원고를 이번에 다시 교정을 보는데 생각이나 내용은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해요. 그런데 그걸 표현하는 방식이 많이 부끄러웠어요. 아주 건방지고 아주 단정적이고 나무라는 투고…. 그게 눈에 확 띄면서 다 지웠어요. 말투가 달라진 게 그나마 다행이죠. 고마운 것은 이제는 육십이 넘었으니 죽을 날이 가까워졌다는 거예요. 그게 참 다행이라 생각하죠.”

이건 무슨 말인가. 죽을 날이 가까워지니 다행이라니.

“다행이지요. 잘못을 범할 날이 그만큼 줄어든 거 아냐. 내가 세상에 잘해서 이득이 되고 보탬이 되기보다는 덜 어지럽히기만 해도 다행이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 내가 큰 감투 쓴 게 없거든요. 조직을 만들어 본 적도 없고. 지금 생각하면 참 다행이다 싶어요. 그런 걸 했으면 얼마나 많은 잘못을 저지르고 불행했겠어요.”

아주 대놓고 물었다. “환갑 진갑 다 지나셨는데 인생 60년 살아보시니까 어떻습니까” 하고. 그랬더니 꿈 얘기를 한다. 이 목사는 얼마 전에 꿈 얘기를 모아서 <꿈일기>라는 책을 펴낸 적이 있다.

“한번은 꿈을 꿨는데 내 죽은 친구 만났어요 그 친구한테 거기 가보니까 어때? 하니까 그 친구가 ‘거기가 거기더라’ 하면서 웃더라구. 내 속에 그런 생각이 있으니까 그런 꿈을 꿨겠지요. 잘 생각해 보면 모든 사람이 같이 갖고 있는 마음이 있는 거 같아요. 뿌리마음이랄까 바탕마음이랄까. 여기에 들어가면 너와 내가 없지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 태몽을 내가 꿔주는 형식도 얼마든지 가능하지요. 마음 깊은 곳에 들어가면 하나인 거 같아요.”

그렇게 생각하니 위대함과 평범함이 하나로 느껴지더라는 것이다. 하긴 평(平)하고 범(凡)한 것이 가장 어렵다고 하지 않는가.

“예나 지금이나 난 간디 선생이 위대하다고 생각하는데 요즘은 그 분과 함께 이름 없이 아슈람에서 살았던 젊은이나 여인들도 같은 무게를 지녔다고 생각합니다. 간디 같은 분은 다른 사람과 다른 카르마를 타고 난 거지 다른 사람보다 인간의 무게가 더 크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서 어떤 사람이 대단하다 그러면 나는 속으로 ‘속지 마’ 그럽니다.”

영화 ‘아라한장풍대작전’이 떠오른다. 밥 쟁반 이고 가는 아주머니나 손수레 끄는 아저씨나 다 한 도(道)하는 분들 아니던가. 눈을 뜨면 세상에 부처 아닌 사람 없다.

“개인이 다 컬러풀한 게 참 재미있지 않아요? 인류라 할까 그건 하나의 관념이죠. 실체로 볼 수 없잖아요. 인류 의식의 진화나 변화에 견주면 각 개인의 특별한 모습이나 잘못은 문제가 아니지요. 그러니까 낙관을 하게 되죠. 루미라는 사람이 그랬어요. 너는 오랜 기간 바위로 살았다 그러다 어쩌다가 식물이 됐다 너는 그렇게 오랜 기간 식물로 살았다 그러다 어쩌다가 동물이 됐다 그렇게 오랜 기간 동물로 살았다 그러다 어쩌다가 사람이 됐다 그리고 지난 세월을 다 잊었다. 루미가 13세기 사람인가 그런데 그 시절에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몰라. 진화론도 빅뱅이론도 없었을 땐데…. 앞으로 인간이 어떤 모습으로 바뀔지 알 수 없지요. 그게 희망이에요.”

말끝에 사람들 속에서 어울리는 게 참 어렵다고 했다. 무리 속에 있으면 무슨 말을 할지 언어가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내가 좀 덜된 거지.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석가나 예수나 소크라테스 같은 분들이 객담했다는 걸 못 봤어요. 그런 기록이 전혀 없어. 제자들이 뺐는가. 그게 아쉬운데 그분들이 맨날 그렇게 고답적인 얘기만 하지는 않았을 텐데. 농담도 하고 즐기셨을 거 같은데. 안 그러면 민중이 곁으로 가질 못했을 거예요. 나는 거기까지 가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아는데 아직 실력이 없어요. 그래서 그들과 어울려서 객설이나 농담을 못해요. 아직 자연스럽지 못하고 미숙한 거지요 확실히.”

"뭐 해도 좋으니 하고 싶은 걸 하라”

▲ “실패해도 괜찮아요 잘 놀았으면 됐지요.” 허허 웃는 이현주 목사 2006. 2. 26. 사진: 홍승권
이 목사는 말이 목사지 목회 그만둔 지 오래됐다. 그는 늘 묵상하고 성찰하며 글을 쓰며 산다. 그래서 그에게는 수행자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그래서 “목사님처럼 사는 일이 쉽지 않지요” 물었다.

“허허 나는 어렵지 않아요. 아마 다른 분들이 이렇게 살려면 어렵겠죠. 사람이 다 다르니까. 나에게 어떤 사람처럼 살라하면 당연히 어렵겠죠.”

사람들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이 뭐냐고 묻자 준비된 듯 바로 답이 나온다.

“한마디만 할 게요. 뭐 해도 좋으니까 하고 싶은 걸 하라구요.”

근데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무언지 잘 모른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이 목사의 설명이다.

“찾아야지요. 아침에 눈을 떠 할 일이 떠오르면 행복한 사람이라고 하잖아요. 시인 릴케에게 누군가 시인이 되고 싶다고 찾아왔대요. 그래서 릴케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시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기느냐 물었더니 그 사람이 그렇다고 했지요 그러니까 릴케가 당신은 이미 시인이다 그렇게 말하지요. 위축돼서 이것도 저것도 아닌 상태가 가장 좋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찾아보면 하고 싶은 일이 있고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이런저런 여건이 만들어져야 할 수 있다 그건 착각이지요. 내가 가진 게 이건데 뭘 할 수 있을까 찾아보면 나오게 돼 있어요. 그때 한걸음 내딛는 거지요. 그 일이 성공하면 좋지만 안 돼도 괜찮아요. 해봤다는 것만으로 의미와 보람이 있는 거니까요.”

누구나 결국은 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것이 아닐까. 살다보면 그렇게 살아지는 것이 아닐까. 매순간의 선택이 모여 현재의 삶을 이루는 것일 테니.

“생긴 대로 살라는 말이 있잖아요. 제 생긴 대로 안사는 사람 있나요? 생긴 대로 살 수밖에 없어요. 근데 안타까운 것은 자기가 재능이 있는 데도 다른 사람이 시키는 대로 억지로 하는 사람이에요. 그렇게 안 살았으면 좋겠어요. 자기 앞에 놓인 문제를 풀어나가는 그것이 인생이고 역사가 아닌가 싶어요. 아직까지는 인류가 모든 문제를 그런 대로 잘 풀면서 살아왔다고 봅니다.”

그걸 일컬어 진보라 할 수 있을까. 인류는 정말 나아지고 있는 걸까.

“많이 나아졌다고 봐요. 우선 인간과 인간의 장벽 같은 게 이젠 별 힘을 쓰지 못 하잖아요.인종 차별 성 차별 빈부 차별 이런 게 많이 없어지거나 약화되고 있잖아요. 권력만 봐도 박정희에서 노무현까지 오면서 대통령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습니다. 이젠 위대한 사람들이 몽매한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시대가 점점 없어지고 있어요. 나는 이걸 진화라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물었다. 그래도 책을 펴내고 물건을 나눈다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좋지 않으냐고.

“우리 속에 자본주의 삶의 패턴이 형성돼 있는 거 같아요. 원하든 원치 않든. 그런 생각 중 하나가 많은 게 좋다 널리 알릴수록 좋다 그런 거죠. 그래서 그게 꼭 그런 건 아니다 이걸 좀 해보려는 거죠. 사람들이 잘 모를수록 좋은 일도 있는 거예요.”

이 목사의 ‘주식회사 놀이’는 이제 시작이다. 돈 생기면 책 내고 단소 깎아 원하는 사람에게 나눌 생각이다. 돈 없으면? 물론 아무 것도 안할 생각이다. 이게 성공할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을 갖는 사람에게 아마 이 목사는 “성공 안하는 게 성공일 수도 있어요” 하거나 아님 “실패해도 괜찮아요 잘 놀았으면 됐지요” 하며 웃을 것이다.

손에 쥐려는 게 없는데 무엇을 잃겠는가.

이 목사의 뜻에 공감해 함께 ‘놀아볼’ 생각이 있으신 독자께서는 전화 043-854-1949나 인터넷 카페(http://cafe.daum.net/DreemtheLORDSGame)로 문의하시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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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코리아포커스(coreafocus.com)의 취재부장인 김경환 기자가 쓴 글이다.
김경환 기자는 90년대에 오연호(오마이뉴스 대표) 조유식(알라딘 대표)씨와 더불어 월간 말지를 이끌었던 3대 기자 중의 한사람이다. 저서로 "권영길과의 대화(98년)"가 있다.
최근 은평구 신사동으로 이사왔으며 부인이 새절역 근처에서 뚜레주르라는 빵집을 개업했다고 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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