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한잔과 그를 만났습니다.
이지상씨는 인터넷 사이트 사이버 광복군 누리코리아에서 운영하고 있는 인터넷 방송국에서 12시 30분부터 2시까지 ‘이지상의 행복한 음악가게’라는 제목의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방금 방송을 마치고 온 모양이다.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이지상씨와 어느 지인과의 통화에서 '감기에 걸려서 술도 못마시고 운동하기도 어렵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아. 그랬군.

은평구에 산 지 5년이 되어간다는 이지상씨에게 가벼운 마음으로 은평의 느낌에 대해 물었다.

"은평의 느낌 그거 되게 어려운 질문인데요.(웃음) 많은 사람들이 은평구가 서울인지 잘 모르더라고요. 다른 사람이 잘 모르는 곳에 산다는 것이 자긍심이 되더라구요.
동네가 살기 좋잖아요. 스카이라인도 좋고 높은 건물도 없고. 일반적으로 낙후된 구라는 인식들이 있는데 저는 그런 거 잘 모르겠어요."

사람을 만나면 [꿈]에 대해 물어보는 것을 즐겨하는 기자는 이지상씨에게도 ‘꿈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빼놓지 않는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의외다.

"저는 안 좋은 질문이라고 생각해요."

뒤통수 치는 대답. 대부분의 사람들이 꿈을 바라보며 잠시나마 현실의 시름을 잊는다는 믿음으로 살아왔던 터라 그의 대답은 의외였다.

"지금 사는 사람들은 꿈을 보고 살지 않아요. 나조차도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막막하고..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꿈을 보고 사는 사람보다 현실에 버거워하는 사람이 많아요. 꿈이라고 해봤자 돈 잘 버는 것이고 뭔가를 이뤄보자 하지는 않죠. 그래서 저는 그런 질문을 잘 안 합니다."

"어차피 제도적으로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 상태에서 희망을 품는 것이 반드시 옳은 것인가라는 의문이 듭니다. 희망이라는 것은 무언가를 소유하지 못하는 사람이 그것을 기다리는 것. 이미 소유했다면 희망이라고 볼 수 없죠. 희망을 가진다는 의미는 소유하지 못함으로써 가지는 넋두리 같은 것이에요.
하지만 희망의 정체라는 것이 보잘 것 없음에도 그것을 소화하고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 되는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목적 목표로서의 희망이 아닌 그저 자신이 바라는 희망에 대해 이야기한다.

“평화로운 세상 같은거예요.
평화라는 것이 단순히 내 안에 분란이 없는 상태 이웃과 나라 간에 다툼이 없는 상태라는 굉장히 자기중심적인 의미만은 아닙니다.
평화[平和]의 한자를 풀면 평평할 고를 평(平) 에다 화할 화(和)인데 또 이 화자를 보면 쌀미(米)자에 입 구(口)자로 되어 있어요. 밥을 고르게 나누어 먹는 것이죠.
밥상에서 밥을 고르게 나누어먹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회는 평화로운 사회가 되지 않는 것이고 반대로 누군가 밥을 혼자 먹겠다고 달려드는 사람이 있어도 평화로운 사회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그렇게 밥이 고르게 나누어지도록 뭔가 활동하는 것이 평화운동이고요.
그런 거예요. 개인적으로는 뭐 이 나이에 노래로 한번 떠보겠다고 하는 것도 없고." (웃음)

"하지만 제가 하는 활동이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했는지 모르겠어요. 목적을 위해서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니까. 어떠한 내 삶의 목표를 위해 끊임없이 매진해야 한다며 정해놓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보이는 여러 모습들에 관심을 가지다 보니 이렇게 되었던 거죠."

아. 그래서 이 사람 가훈은 [어떻게든 되겠지] 였구나.
블로그에서 본 그의 가훈을 떠올린다.

"그런 것을 또 어디서 보셨어요?(웃음) 그런 거죠. 목적을 가지는 것은 중요하지만 목적을 가지면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부단한 투쟁이 있어야 하고 안 이루어지면 실망감도 대단할거에요. 목적 지향적이든 눈에 보이는 것들을 극복하면서 현실에 치중하여 세월을 먹고 살아가든 사는 과정은 거의 비슷할 것입니다. 하지만 뭔가 마음가짐은 달라질 것 같아요.
[어떻게든 되겠지]가 가훈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되게 웃잖아요. 저 사람은 목적도 없이 사는 것 아냐? 굉장히 나태해 보이고 게을러 보이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어떤 일을 할 때 그것이 가져올 결과물을 기대하고 하는 것보다 행위에 충실하고 과정 속에서 나를 품는 것이 훨씬 중요하지 않나? 생각해요. 결과가 좋을 때가 있고 만약 의도하는 결과가 아니라도 과정 속에서 다른 것을 찾을 수 있겠지요."

▲ 이지상님 블로그 사진입니다.

이제 이야기는 그의 노래로 흘러간다.

그는 대표적인 반전가수인‘존 바에즈’같은 실천적인 음악인들을 좋아한다고 한다.
노래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냐는 기자의 어색한 질문이 이어졌고 대답은 이내 들려왔다.

"어떻게 바꿔요! (강한 어조. 그리고 웃음)
전에는 그렇게 생각한적이 있었죠. 노래라는 것이 문화의 한 부분이고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기는 하지만 지금의 양태를 보면 사람들에게 깊게 들어갈 만큼의 조건이 안되거든요.

저는 노래가 반드시 세상을 바꿀 수 있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않습니다.
사회패러다임이 더 깊은 자본주의의 수렁으로 들어가고 있고 혁명적 사고의 노래들이 나올 수 있지만 결국 점점 자본화되고 산업화되는 문화패턴이 더 크게 작용해서 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여지는 점점 줄어들게 됩니다.
나중에는 노래가 없어지고 음악만 남게 될지도 몰라요.
점점 더 그런 과정을 겪고 있는 중이죠. 사람들이 자기 입속에 점점 노래가사를 잃어버리고 있어요. 시도 그렇고.
노래방 없으면 노래를 못하잖아요. 노래방에서 노래하는 것도 재미로 하는 것이고 노래가 사람의 입을 떠나고 있어요.
조금만 더 확대 해석해보면 노래라는 것이 사라질 수도 있는 것이죠.
사람들은 사고속에서 필요한 부분만 취하게 되니까.
그런데 (노래가) 어떻게 세상을 바꿔!."

아무렴 사실이고 말고. 사람들은 더 이상 노래가사를 귀기울여 듣지 않는다.
그저 강렬한 비트 혹은 유연한 선율에 익숙할 따름이다.
어떤 이가 이르길
‘예전에는 수학과 음악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사람들이 음악을 듣지 않는다.’

무턱대고 하지만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왜 노래를 하세요?"

"내 해야 되는 일이라고 생각을 해요.
제가 노래를 부르는 것에 재능을 가졌고 내 눈에 보이는 것들이 나를 부르게 만드니까. 이게 나의 삶의 정체성이니까.
그리고 시대적인 배경이 있는거죠. 거기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어요.
공동체를 꿈꾸거나 함께 하는 것이 80년대 인간형의 주류거든요.
아직도 내 것 챙기는데 인색하고 공동체에 대한 미련 그런 것들이 우선시 되는 사고를 아직 탈피하지 못한 것 같아요. 제가 노래를 하는 이유가 개인적이지만은 않은 이유예요."

정신대 할머니 문제 양심수 문제 대구 지하철 참사 등 그 스스로 필요한 혹은 그를 필요로 하는 많은 일들에 대해 적극 참여하여 노래를 작곡하여 불렀다.
최근에는 우토로 살리기 운동에 참여하여 노래를 작곡해 주기도 하였다.

이지상씨의 학번은 85학번이다.
고등학교때까지 대학 진학은 생각하지 않다가 형의 권유로 공부를 시작해서 재수를 거쳐 대학에 들어간 것이 경희대 국문과.
그 곳에서 대학 노래패로 활동을 시작했고 91년에는 ‘통일은 됐어’라는 노래로 전대협 통일노래한마당에서 대중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이 그렇듯 그도 역시 아직 80년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 이지상씨는 부인과 6살 11살난 딸들과 함께 역촌2동에 살고 있습니다.


지난 겨울 그는 '슬픔에서 왔다'라는 제목의 콘서트를 열었다.
이지상은 슬픔과 그리움과 외로움을 노래하는 가수다. 정말로 슬픔에서 왔는지 모른다.

"같은 건데요. 이를테면 희망을 이야기 하고 꿈을 이야기하는 것이나 슬픔 그리움 외로움을 이야기 하는 것은 모두 똑같은 이야기예요.

결국 슬픔과 그리움을 딛고 희망을 찾아가자는 거죠. 희망이나 꿈이라는 단어는 일종의 형이상학적 사고지만 슬픔이나 그리움은 더욱 현실적으로 마음으로 느껴지는 거에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이야기 하지 않고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렵죠.
그대로 이야기하는 것이 희망에 근접하지 않나 싶어요. 제 노래에는 그런 노래들이 많습니다.

세상이 바뀌는 거대한 꿈은 안 꾸기로 했어요.
바뀌면 좋겠지만 거대한 꿈보다는 내가 실천해 나가는 조그마한 부분을 찾는 것이 좋지 않을까. 거대 담론은 학자들이 연구하는 것이고 굳이 우리들까지 나서서 할 필요도 없고 그 학자들 이야기 하는 대로 되지도 않고. 세상을 보듬는 마음 분노하는 마음만 갖고 있으면 충분하지 않을까. 꼭 어떤 비전이 있어야 하나요?"

그는 말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노래가 세상을 바꿀 수 없다 할지라도 나는 노래를 하겠다는 것."

그는 노래를 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이다.

좋아하는 시 하나를 추천해달라는 말에 이지상씨는 정호승 시인의 [또 기다리는 편지]를 추천해주었다.

외로운 사람들은 어디론가 사라져서
해마다 첫눈으로 내리고
새벽보다 깊은 새벽 섬기슭에 앉아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는 일보다
기다리는 일이 더 행복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일보다 기다리는 일이 더 행복하다는 것.
세상을 사는 우리들에게는 정답인 것 같아요. 사랑함에 집착하기 보다는 끊임없이 기다리는 것. 사랑함이라는 획득의 순간보다 얻기 위해서 기다리는 과정이 행복함을 느낄 수 있는 삶이 되도록 많이 노력을 해야죠. 기다리는 사람만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기다리지 못하면 희망이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 거죠."

이지상씨는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이다. 과정에 있는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이 작은 꿈이든 큰 꿈이든 저만의 꿈을 좇아 바쁘게 삶을 꾸린다.
하지만 그는 꿈을 사랑하지 않는다. 저 멀리의 큰 꿈을 향해 가쁜 호흡을 내몰며 달려가지 않는다. 다만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 자신이 필요한 역할을 따라 가만히 그 꿈을 기다리며 산다.
꿈을 꾸는 과정 꿈을 기다리는 과정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는 말한다.

“기다림은 희망의 다른 이름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이지상씨를 만나기 위해 서너 번 통화를 했다.
언제가 좋겠냐고 물었더니 화요일 3~4시가 좋겠단다.
3시? 술자리를 여러 번 하면서도 이야기를 많이 못 나눠 술이나 한잔 하면서 술김에 이야기나 해볼까 했는데 낮에 만나자고 하니 이거 계획 차질이다.
술 마시기로 했으면 어느 장소에서 만날지 만나서 어색한 분위기를 어떻게 할지를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으련만.. 더군다나 신사동 근처에서 만나자니 거기에 인터뷰할만한 곳이 어딨는지 조언도 구해보고 했지만 마땅한 곳이 없다고 하길래 결국 이지상씨가 자주 가신다던 약수터 길을 걷기로 확정하고 미리 예습도 하고. 프린트도 해보고. 블로그도 방문해보고.
약속장소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던 나를 이지상씨는 바로 옆 까페로 이끌었다.
그렇게 이지상씨를 만났다. 그를 기다리던 시간은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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