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선생님 소설가 최진욱씨

웃는 비를 맞으며 걷다가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돌아가셨던 영원히 아빠로만 추억되는 아버지를 추억하게 되었다. 예고 없이 문득 다가온 추억 나는 몹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정신을 추스르고 보니 어느새 아빠가 돌아가셨던 나이를 떡하니 걸치고 있는 한 사내를 발견했다.

아빠와 매우 닮은...
그를 떨쳐버리고 하늘을 봤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웃고 있던 비가 이번엔 슬픈 눈물을 뿌리고 있었다.

그랬다. 그랬구나.
불혹의 나이를 넘긴 나를 시시각각으로 감성적으로 만들었던 건 있어야 할 것의 부재였다. 다르게 표현하면 상실감이라고나 할까?
걸음을 빨리했다. 슬퍼진 비를 즐기며 맞기가 싫었다. 어쩌면 있어야 마땅한 것의 부재를 실감하고 나서 세상을 피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집에 오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있어야 할 것의 부재를 뼛속까지 느끼며 성장해가는 한 소녀를 그리기 시작했다.
소녀의 이름은 '다미'였다.

-소설 '다미의 세계' 서문 에서-


이번에 [은평사람들] 코너에 소개할 사람은 대성중학교 교사이셨고 지금은 부천에서 교사로 계신 최진욱씨다.
최진욱씨는 2001년 문예 계간지 '오늘의 문학'에 단편소설 '흔적'으로 당선되어 등단했고 2편의 장편소설을 출판한 소설가이다. 워낙에는 4월 중순에 인터뷰 약속을 잡았으나 약속한 날 가출한 제자 한 명을 찾으러 가야 한다고 전화가 와서 그 약속은 취소되었다. 그리고' 다미의 세계'라는 최진욱씨의 성장 소설을 읽었다.

소설의 주인공 '다미'는 열살배기 여자애다. 또한 다미는 공주병 경향이 있고 이쁘고 똑똑한 소녀. 사랑하는 아버지를 창창한 나이 아홉 살에 여의고 다미가 '화장마녀'라 면서 경멸하는 철부지 엄마와 산다. 철부지 엄마는 다미와 연적 관계. 아빠 다음으로 다미가 사랑하는 담임선생님 한석준 선생님을 놓고 다미는 엄마와 사랑의 레이스를 벌인다. 그리고 다미를 사랑하는 같은 반 짝꿍 꿀돼지 현철이와 아빠가 보낸 흑인 수호 천사 '엔젤리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소설 '다미의 세계'는 의외로 복잡하다. 열살배기 소녀인 다미는 작가가 말하고 싶은 바를 대신 이야기하는 소설적 장치. 열살배기 소녀가 된 '불혹의 남자' 그리고 중학교 선생님이자 두 아들의 아버지인 최진욱씨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그의 소설을 읽고 그에 대한 궁금증을 참고 또 참았다.
그리고 인터뷰 약속날 저녁 일곱시 연신내 롯데리아 앞에서 그를 만났다.열 살짜리 소녀가 된 불혹의 남자를.



약속 시간보다 6분이 늦었다. 인파로 부산한 롯데리아 앞. 얼굴도 모르는 이 사람 최진욱을 어떻게 찾을까 두리번거리며 기자는 걱정했다. 그러나 의외로 찾기가 쉬웠다. 마치 소년처럼 생긴 묘한 분위기의 아저씨가 눈에 띈다.

"혹시 최진욱 선생님?"

소년인지 아저씬지 정체를 파악할 수 없는 그 웃는다.

"네. 혹시 저녁 드셨으면 소주라도 마시면서.."

이번 인터뷰는 취중 인터뷰가 될 것임을 기자도 예감했던 터 최진욱씨와 기자는 막바로 술집으로 이동했다.






참치회를 파는 집. 최진욱씨의 절친한 친구라는 아줌마가 운영하는 가게로 들어섰다.
그 아줌마와 최진욱씨는 서로의 안부를 묻고 서로의 남편과 아내의 안부를 묻고 서로의 자식 이야기를 하며 정담을 나눈다. 그 이야기 틈틈이 기자는 본래의 사명인 '인터뷰'를 하였다.

기자: 선생님 그 가출했다는 제자는 그날 잘 찾으셨어요?

최진욱: (씩 웃으며)네 가출한 애들이 갈 곳이라 봐야 별 곳 없잖아요. 동네 찜질방을 다 돌아다니며 찾아 다녔어요..

기자: 그래서 찾았나요?

최진욱: 네...

최진욱씨 왈 불편하니 형 동생 하고 말을 트는게 어떠냐고 제안한다. 기자 당연히 '오! 예스!' 그리고 기자 '다미의 세계'를 읽고 질문하고 싶었던 내용들을 마구 물어 본다.


기자: 형은 소설가예요? 교사예요?

최진욱: 교사가 먼저고 그 다음에 소설가..

기자: 선생님이 요즘 관심 있어 하는 소설가는 누구예요?

최진욱: 중남미 환상소설이 좋아요. 가브리엘 마르께스 '백년동안의 고독' 그런거...

기자: 한국소설은요?

최진욱: 요즘 공부하는 소설가인데 박상륭. 근데 어려워. 무슨 말인지...

기자: 네 그리고 형 중학교 선생님 하다가 소설 쓰게 된 이야기 좀 해주세요.

최진욱: 응. 선생 하면서 단편소설 써 봤어. 그래서 신춘문예 응모해 봤더니 되는거야. 그리고 잡다한 소설 공모에 몇 편 응모해 봤더니 막 당선 되는거야. 그래서 야..요거 재미있다 하구서는 선생질 과감하게 정리하구 소설만 썼지. 당선 상금이니 뭐니 합해 보니까 생활비가 되더라구.

기자: 그런데 왜 지금 다시 선생님 하세요?

최진욱: 응. 더 이상 돈이 안 되더라구. 그래서 다시 선생으로 복귀했어.

기자: 형을 만났던 신문사 선배님 말씀 들어보니까 형 자주 가는 호프집 있다면서요. 우리 그리로 가면 안 될까요?

최진욱: 응. 그러지 뭐.

최진욱씨 갈현동에 위치한 작고 허름하고 평범한 호프집을 가기 전 문득 편의점 앞에서 기자에게 '가나' 초코렛 하나만 사달라고 부탁한다. 영문은 모르지만 기자 초콜렛을 사서 최진욱씨에게 넘겼다.


문을 열고 들어간 갈현동 모 호프집. 너무 평범해서 개성 있어 보인다.
그 곳에서 맞이하는 나이 오십이 넘어 보이는 사장님 아주머니. 최진욱씨 그 아주머니를 보며 겸연쩍게 말한다.

최진욱: 누님 그때 들른다고 했다가 못 들려서 미안해요. 대신 이거 사 왔어요.

최진욱씨 가나초콜렛을 사장님 아주머니에게 건넨다.

최진욱씨와 기자 그리고 사장 아주머니 만만한 안주인 노가리를 시키고 맥주에다가 노가리(?)를 푼다.

그리고 좀 있다가 또 다른 미스테리어스한 인물 최진욱씨와 가장 친하다는 대성고등학교 장윤용 선생님이 등장한다. 훤칠한 키에 마흔 둘이라고 믿겨지지 않는 동안 그리고 걸쭉한 입담.(장윤용 선생님은 소설 다미의 세계에 삽화를 그렸다)

그리고 갖가지 음악을 틀어 달라고 사장님 아주머니에게 주문했고 호프집 홀에서 서로 블루스를 추었다.

다음 날 기자는 전날의 작고 귀여운 모험을 기억하며 최진욱씨가 기자에게 선물한 최진욱씨의 첫번째 장편 '마흔살 남자에겐 이모가 필요하다'라는 책 표지를 들여다 보았다. 아직 읽지는 않았지만 왜 이모가 필요한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 다미의 세계에 대한 온갖 추측을 해보았다.

순수한(?) 문학을 위한 문학은 아니다. 소위 '문학성'이 있는 소설은 아니야. 누군가가 싸구려 인터넷 소설이라고 폄하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최소한 그는 소설 쓰는 것을 좋아한다. 가볍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그의 상실감을 채워준것은 무얼까? 아마 여자가 되고 아이가 될 수도 있으며 동물이 되고 식물이 될 수 있는... 그 무언가 어떤 것! 그리고 부재했던 아버지...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아버지가 아니고 엄마 같은 소녀 같은 아버지가 되고픈...'

그와의 기약없는 다음 만남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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