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로 먹고사는 기업인 포스코 광고같은 수사지만 아직도 인류는 철기시대다. IT다 혹은 BT다 말들은 많지만 아직 '문명의 골간은 철이다!' 라고 말할수 있지 않을까? '철'이 가지고 있는 강하고 차가운 비인간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가장 인간적인 모습으로 철을 다루는 장인들이 우리동네에 있다. 불광역 근처의 불광대장간과 수색동의 형제 대장간이 그 곳이다. 이번 회 [이런 곳이 있었네]는 한국에 이젠 얼마남지 않았다는 '대장장이'들과 그들의 일터인 수색의 '형제대장간'을 찾아가 보았다.
국철 수색역 바로 옆 이 곳에는 전국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형제대장간'이 자리하고 있다. 13세부터 대장일을 배웠다는 대장계의 마에스트로 유상준 씨(52)와 유씨와 함께 호흡을 맞춰 대장일을 하고 있는 동생 유상남 씨가 대장간을 운영하고 있다.

'형제대장간'은 신문과 방송을 통해 많이 알려졌다. 기자가 찾아간 날도 그들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 상명대학교 사진과 학생이 형제의 일하는 모습을 열심히 촬영하고 있었다.

유씨 형제가 '손'으로 하루에 만들어내는 연장들은 120여개에 이른다. 그 종류만 해도 괭이 호미 낫 등의 농기구들로 부터 한옥용 연정(대못) 엿장수 짤랑가위 문고리 쇠스랑 인테리어용 장식품 심지어는 군에서 주문 받았다는 남침무장공비에게서 노획한 다목적(살상 암벽등반 식물채취 등.사진 오른쪽 밑)연장까지 주문이 들어오는 물건은 뭐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한다.
재료가 되는 철의 종류도 수십 가지 킬로그램당 200원짜리 막철에서부터 킬로당 3십만원이나 하는 '하이스 강'까지 이들 형제가 다루어보지 않은 철이 없다. 중국산 덤핑 연장들이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만들어내는 품목들은 더 많았다고 한다.

이제는 대장일을 하려는 사람들이 점점 더 없어질 뿐만아니라 기술전수도 어렵다고 한다. 형인 유상준 씨는 이렇게 말한다.

"단단한 쇠를 주물러서 이 모양 저 모양 만들어야 되니까 이 기술도 만만한 기술이 아니예요. 적어도 15년이상은 해봐야 불 다루는 법이나 쇠의 성질 등을 알게 돼요. 중국제랑 단가 경쟁에서 이기려면 빠르고 쉽게 많이 만들어야 하는데 이게 1~2년 가지고 할수 있는 일이 아니라서요. 배우겠다고 몇 명이 찾아 왔었지만..."

옆에서 듣고 있던 동생 유상준 씨가 쓴웃음 지으며 이야기를 잇는다.

"저도 이 일을 한 지 10여년이 넘지만 아직 간단한 것 밖에 못 만들어요. 아직도 형 조수로 일하고 있는데요.."

철을 달구고 두드려 마치 색종이 만지듯 접고 잘라 하루 120여개의 연장들을 만든다. 그냥 색종이로 종이학을 접어도 쉽지 않은 일이다. '경지'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솜씨. 그런데 그런 '경지'에 오르지 않으면 먹고 살기 힘들다고 하니.

"딸이 둘 있는데 둘 다 국악공부를 해요. 서도소리를 배우죠 예정대로라면 국악예고에 보냈어야 하는데 돈이 워낙 많이 들어서 말이죠."

그리고 유상준 씨는 덤덤하게 장래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이거 해서 그저 현재 우리 두 식구 그래도 먹고 사니까 아직은 이 일도 할만해요.그런데 수색역 개발한다고 이사비용 받고 또 나가야 한다니까 좀 골치 아픈 게 있지."

어디 가든 개발이야기. 유씨 형제가 그저 '먹고 살려고' 만든 연장들이 이젠 전시회에 출품까지 된다고 한다. 오는 5월 12일부터 치우금속공예관에서 유명 작가들의 작품과 함께 전시 된다고.

전시 오픈 날 가본다는 기자의 말에 유상준씨는 또 이렇게 답한다.

"어 우리 한테도 그날 오라고는 하는데 뭐 바쁘고 그런데 가서 뭐 볼 일이 있겠어요? 우리도 못 갈 거 같어."

이조 막사발도 예술품이 되듯 철의 장인인 유씨형제의 농기구도 예술품이 될수 있을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막상 본인들은 '예술'이니 뭐니하는 자의식이 없다. 어찌보면 그런 자의식이 없어야 진짜 '장인'일 수 있지 않을까. 문득 장인의 손이 보고 싶어 장갑을 좀 벗어 주십사 부탁한다. 못난 손을 뭐하러 찍냐며 핀잔하면서 유상만씨는 장갑을 벗어 주었다.



뭐랄까. 감동적인 손이랄 수밖에 없다.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는가. 또 강철을 단련시키는 '손'은 또 어떻게 단련되는가. '목장갑'이라는게 없었다는 13세부터 맨손으로 철과 함께 단련되어 온 저 손. 노동가요 '철의 노동자'(?)그 자체가 아닌가. 혹은 진짜 장인의 손. 저런 손이 부럽고 너무 고와 보이기까지 하다.

텃밭가꾸기 좋은 계절. 가꾸고 있는 텃밭이 있다면 수색동 마에스트로 형제의 손에서 빚어져 나온 '작품'으로 밭이랑을 갈고 잡초를 뽑아 본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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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상명대학교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있는 서승환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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