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하고 있는 박상진 선생
은평구. 서울이라는 특별한 시의 '변방'임에도 불구하고 고층빌딩 유흥가 빽빽히 거리를 메운 자동차들 등등. '도시'하면 1차적으로 떠오를 만한 '도시'의 구색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시골이 고향인 기자로서는 이런 도시의 이미지들과 '향토'라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그다지 빠르게 연결되지 않는다. 그러나 한꺼풀만 더 깊이 따져 생각해본다면 은평이라는 도시도 엄연한 '향토'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사전적 의미를 굳이 따지기 전에 '향토'란 태어나서 자란 곳 그리고 내가 현재 살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은평시민신문이 이번에 만난 '은평사람'은 대도시 서울의 변방 은평의 향토사학자 박상진 씨이다.

박상진씨의 명함에 나와있는 공식 직함은 '역사물 작가'다. 그는 현재 조선시대 궁녀와 내시에 대한 저술을 준비하고 있다. 학부 때는 경역학을 전공했으나 한국 철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국사편찬 위원회 사료 조사위원을 역임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은평향토사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향토사학자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이 은평을 가장 '빠삭'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하기도 했다. 사실 그가 나고 자란 곳은 은평이 아니다. 그가 은평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 지는 불과 10여년이라고 한다.

그러나 은평 토박이 못지않은 지역에 대한 애착이 남달라 보였다. 그가 살고 있는 조그만 빌라 구석구석을 가득 채운 각종 문헌과 그가 발로 직접 뛰어 다니며 수집한 문화재 관련 사진 자료와 기사 스크랩들은 지역과 지역 문화에 관한 그의 열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인터뷰 내내 열정적으로 토로한 은평 지역 역사에 관한 설명은 그가 자부한 '지역에 대한 빠삭'함이 과장된 것이 아님을 알게 해 주었다.

▲ 박상진 선생의 서재
그는 일단 지역명의 유례부터 설명하기 시작했다. 궁말은 퇴직궁녀들의 마을 새절은 새로지은 절 역촌은 역참 관리들의 마을 수색은 물 일색의 마을 등 큰 마을은 물론이거니와 동네안의 작은 골목의 역사와 유례까지 훤히 꿰고 있었다.

기자는 그에게 은평을 비롯해 고양시에 이르는 경기서북부에 왜 그렇게 많은 묘들이 운집해 있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금석문 분석을 연구의 기초로 세우는 향토사학자답게 그는 역시 다양한 비석 탁본과 사진 자료를 보여주며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도성과 까까운 성저10리 밖의 지역에서 역관들이 풍수학적인 명당을 고르다보니 이 곳에 그토록 많은 왕실 관련 묘지가 있게 되었다고 한다. 사대문 안의 궁궐이 살아있는 왕실의 터전이라면 은평고양 지역의 묘는 죽은 이들의 터전인 셈이다.
두 가지 다 문화재적인 가치에 있어서 경중을 달리 하지 않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는 이어서 왕실묘 뿐만 아니라 왕실의 상궁과 내시들의 묘에 대해 설명한다. "그러나 궁녀들을 비롯해 내시묘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떨어지는 관계로 유실되거나 파손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현재 단 하나의 궁녀묘도 온전히 남아 있는 것이 없다는 게 그 일 예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영조가 친필로 쓴 묘비석과 각종 양석 등 서울시 유형 문화재로 지정되도 손색이 없을 만큼 귀중한 유물마저 유실및 도굴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덧붙여 그는 이러한 귀한 문화재에 대한 유실도 모자라 뉴타운 개발에 따라 그나마 남아있는 유물소실에 관한 유감을 토로한다.

▲ 구파발 소무탈
그는 이어 은평 지역의 문화 예술에 대한 설명을 계속했다. 최영 장군의 예을 들며 서울지역 무속인들이 신으로 모시는 최영 장군 굿당이 구파발에 본산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권 지역내에 무속은 크게 3개의 본산을 가지고 있습니다. 노량진 노들 본산과 창동각심절 본산 그리고 나머지 하나가 구파발 본산입니다" 그는 구파발 근역에 산재한 굿당들 마저도 뉴타운 착공과 함께 소실될 위기에 처해있다고 말했다. 그는 구파발 이야기가 나온 김에 내쳐 더 이야기를 꺼낸다.

"또 구파발은 산대 놀이가 유명 했어요. 구파발은 '구파발본산대 놀이 로써 '양주 별산대놀이'의 원류였습니다. 양주 별산대 놀이는 양주지역의 노비들이 근역에 있는 구파발본산대놀이를 별도로 재현한 것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은평지역의 산대 놀이에는 구파발 산대놀이 외에 녹번이산대놀이가 있다고 한다. 그 중 송파산대놀이는 구파발산대놀이 전수자인 윤희중 선생에 의해 재현 시연이 된적이 있다고 한다. 그는 크리스마스 씰에도 인쇄됐었던 구파발 본산대놀이 4종류의 탈 사진을 보여준다.

이어서 화제는 근현대사로 넘어간다. 그는 6.25동란전 녹번동에 터를 잡고 살았다는 정지용 시인의 이야기를 꺼낸다.

"정지용 시인이 이곳에서 단지 살았었다는 사실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은평은 정지용 시인이 약 3년동안 그의 생애에 있어서 주요한 집필을 했었던 곳입니다. 다른지역에서는 정지용 시인의 시비가 대여섯 군데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물며 은평에 정시인의 시비가 없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기도 합니다. 정시인이 은평에서 썼던 시 하나쯤은 시비로 세울 법도 한데요.."

그는 두툼한 은평구지를 넘기며 응암 교회의 차철수 장로가 촬영했다는 옛날옛적 은평의 사진들을 보여준다.
양장으로 된 장서들 말고도 구지 회보에서 20여권의 각종 문화재 관련 스크랩 심지어는 관공서의 자잘한 리플렛에 이르기까지 은평 지역에 관련한 수많은 자료를 그는 들춘다. 그는 작은 문화재에 대한 관심과 개인적 연구에 필요한 인터넷 사이트를 소개 해주겠다며 컴퓨터가 있는 작은 연구실로 안내했다.

그는 '국가 문화유산 종합 정보서비스(www.heritige.go.kr)'와 전통문화 사랑방 '이키'라는 두 군데의 사이트를 소개했다.

그는 지역 문화재의 학술적 가치들을 재차 토로하면서 일반인 아마추어 사학자들이 좀더 많아야 된다고 강조했다. "지금 현재 활동하고 있는 서울내의 향토 사학회는 은평구 외에 노원중랑 금천 등이 있습니다.그 중 우리은평사학회가 실제적으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주부회원들은 물론이고 청소년들도 그 대상으로 하고 있구요"라고 그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기자는 인터뷰 내내 그의 모습에서 초야의 공부하는 선비의 모습을 느낄수가 있었다.
그의 작은 빌라 구석구석을 빼곡히 채운 자료들을 보며 비교적 신세대에 속하는 기자의 눈에는 음반이나 디비디를 수집하는 '매니아'들의 자기 관심분야에 대한 문화적 열정이 이런 것이 아닌가 라고 느껴졌다. 실로 '문화재'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주위에 있는 것들이다.
중앙과 지역의 구분이 점차 모호해지는 탈중심시대에 문화재에 대한 매니아적인 관심이 어떤것인가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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