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인터뷰 약속이 있던 날 바쁜 하루를 보내고 약간 초췌한 모습으로 저녁을 맞고 있었다. 당일 아침 7시에 집에서 나와 강서습지생태공원 인근 탐방로에 보행자전용도로를 만드는 문제로 1인 시위를 하고 오는 길이다.
그녀는 올해 35살이다. 초등학교 5학년 4살의 두 여자아이를 키우고 있다.

결혼하고 처음에는 시어머니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일을 했다고 한다. 가족들이 식당을 하는 경우 가족 노동에는 임금을 주지 않는 경우가 태반인지라 경제적으로 독립해야겠다 생각을 하고 눈높이 교사를 시작했다.

그러다가 사회적으로 보람된 일을 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혼인 신고를 하면서 전혀 살아본 적도 없는 시아버지 본적지로의 호적 변동이 주는 황당함이 계기가 되어 여성민우회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아버지는 여자라고 해서 차별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주변에서 봤던 여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을 보면서 그 문제를 이해하고 공부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여성민우회 남서지부에서 실무자로 일하기 시작한 것이 98년이니 시민단체 활동가로 일한 지 햇수로 8년째이다.

여성민우회의 여성학교 프로그램과 강좌 민우회 내 생협 활동인 생산지 견학 어린이 관련 프로그램으로 지역 역사 문화탐방 자연탐방 생태학교 등을 꾸려 나갔다. 그녀는 “역량이 있었으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전임자가 일을 굉장히 잘한 것에 비해 전혀 경험이 없었던 나로 인해 회장이 고생을 많이 했다. 당시의 경험이 지금 생태보전시민모임의 활동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라고 겸연쩍게 말했다. 하지만 당시 여성민우회에서 자신의 육아경험을 바탕으로 한 비디오제작까지 한 것을 보면 그때도 지금처럼 당차고 야무지게 일을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 생태보전시민모임 외부전경
생태보전시민모임과의 인연은 회원으로서 생태나들이에 참여하면서이다. 그러다가 여성민우회 실무자일을 그만두고 99년 1월 자원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해 5월에 상근 활동가로 생태보전시민모임과의 본격적인 인연을 시작했다.
어렸을 때의 자연과 친숙했던 생활에 대한 향수가 그 출발점이었다고 말한다
경주와 포항사이의 시골냄새 물씬 묻어나는 곳에서 유년기를 보낸 기억이 생태활동의 뿌리가 되어주고 있다.

생태보전 시민모임에서 99년~2000년까지 진행했던 길동 생태공원 활동에 대해 물어보았다.
97년 여의도 샛강 생태공원이 최초로 조성되었지만 생태공원에서 생태탐방프로그램을 개발 기획하고 이 곳을 안내하는 자원활동가들을 양성한 경우로는 길동 생태 공원이 전국 최초였다고 한다. 서울시립대연구원 단체 상근자들이 모두 이 사업에 전력투구했다. 사업비가 1700만원 지원된 서울시 녹색위원회 프로젝트였지만 일은 그 서너배를 한 것 같다고 말한다.
예약제가 생소해서 주민들의 반발도 있었고 토일요일도 없이 일하면서 주민들을 설득해야 했다 10시 11시2시3시4시 1일 5회의 탐방프로그램을 가지는 등 강행군을 하면서 진행되었었다. 지금은 모범적인 사례로 각 지역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한다.
민간위탁을 받아 운영하려는 단체와 자신들의 실적성과로 삼고 싶은 서울시간의 이견차이로 초기 자원활동가들이 대부분 손을 놓게 되면서 생태보전시민모임도 이곳에 관여하지 않게 되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현명하지 않은 처사였다고 생각한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 생태보전시민모임 내부
2000년과 2001년에는 북한산 국립공원과 관련해서 일을 했다.
2002년 1월 둘째 아이를 출산한 후 [생태보전시민모임] 총무 일을 보았다. 그녀는“살림살이를 잘하지 못했다”고 계면쩍게 말한다.
출산과 육아로 쉽지 않았을 터인데 어떻게 활동을 계속 했을까 궁금했다.
‘상근활동가가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라는 문구로 따로 육아후원비를 조직했다고 한다. 그 육아후원비와 상근비를 다 털어 동생에게 아이를 맡겼다. 활동을 하면서도 모유수유를 했다니 그 정성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지속적인 활동에는 척박한 환경에서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일반적으로 겪는 헌신적인 노력에 더해 여성활동가로서 감당해야 하는 몫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강서습지생태탐방 때였다.
방학중인 때라 대학생 견학팀이 있어 그녀는 그 팀을 안내했고 우리 일행은 자원활동을 2년 정도 한 사람이 안내했다. 자원활동을 하는 사람의 강서 생태습지에 대한 애정 꾸준한 모니터링을 통해 익힌 습지현황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참신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지역주민이기도한 자원활동가의 모습은 그 자원활동가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조직하고 있는 그녀를 더욱 커 보이게 했었다.

강서구 개화동에 위치한 강서습지생태공원 활동은 2003년부터 시작되었다.
“길동공원이 생태 탐방 학습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좋은 모델이 되고 있지만 생태 교육 그 자체로 끝나는 아쉬움이 있었다면 강서습지생태공원의 경우 지역으로의 확산 지역녹색문화를 만들고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내용을 담아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활동내용을 소개했다.

▲ 강서습지생태공원 소책자 중
특히 2004년에는 강서습지생태공원을 거점으로 한 지역생태탐방코스를 개발하였다. 물환경교실(강서구청 환경위생과와 연계한 프로그램으로 정수장- 강서습지생태공원-하수처리장) 강서문화투어(문화공보과와 연계 구암공원-허가바위-강서습지 생태공원) 학교길 따라 한강까지 생태탐방(인근초등학교와 연계한 프로그램 개화근린공원-개화산- 강서습지생태공원)어린이 자연관찰회(개화산-생태공원)의 4가지 코스를 통해 총 54회 1600명이 참여한 활동이 이루어졌다. 생태공원이 주변과 동떨어진 녹색섬이 아니라 지역의 녹지축과 연결되어 지역녹지 환경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느끼게 하고 어린이들에게는 학교 주변 자연환경에 관심을 갖고 자연과 어우러지는 학교길 동네를 알 수 있는 자연학습 체험이 되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또한 봄 여름 가을생태학교 방과후 생태교실 유아생태학교 타단체연수프로그램을 통해 총 83회 1700명의 탐방활동이 이루어졌다.
이 곳에는 현재 20명의 자원활동가가 활동하고 있다.
강서구에 거주하는 30대 주부가 자원활동의 핵심이지만 50대 60대의 자원활동가도 있고 전업주부외에 교사나 직장인들도 있다. 자원활동가들은 ‘하늬 가람’이라는 자체 모임을 만들어 매주 정기모임을 하면서 학습도 한다. 그녀는“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학습한 내용을 아이들에게 환원할 수 있다는 보람이 큰 버팀목이 된다.”고 자원활동가들을 양성하면서 느낀 소감을 밝힌다.
이들은 탐방객들에게 생태공원과 지역생태탐방코스를 안내하고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또한 공원의 생물상 기초자료와 생태탐방코스 개발을 위한 모니터링활동 모니터링 활동을 바탕으로 교재 개발 공원 소안내판 설치 공원의 바람직한 운영과 공원 주변 개발에 대한 감시활동 등을 하고 있다.

“처음 사회 경험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는 든든한 자원활동가가 되기까지 많이 기다려주는 시간이 필요하다. 재동기부여가 이루어져야 하고 그때 그때마다 아이들의 교육에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야 한다.”고 말할 때는 2년의 세월 속에 묻힌 그녀의 정성이 만만치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현재 3기까지 자원활동가를 모집했고 지역의 풀뿌리 녹색문화를 만드는 노력으로 지역주민 대상의 프로그램도 만들려고 한다.
불법경작지 불법적치물이 많아 강서구청과 연계하여 3 4월 개화산 나무심기프로그램으로 나의친구 나무심기 가족나무심기를 하려고 한다.
재활용용기에 흙을 담아 모심기를 하고 1년동안 관찰기록장 작성을 하는 프로그램도 해 볼 생각이다.

강서구가 서울시 외곽이다보니 혐오시설이 많이 들어와 훼손이 많다. 채석장 건축폐기물처리장이 들어 와 있고 덤프트럭도 많이 다닌다. 소음이 100데시빌이 될 정도로 문제가 되고 있다. 강서구청은 교통정체를 해소하기 위해 개화육갑문 보차도 공사를 시작했다. 이에 도로 한 곳 정도는 보행자 전용도로로 만들 것을 제안하여 통행량조사 주민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실제 정체되는 시간은 출퇴근시간대에 10분정도 밖에 안되어서 문제될 것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인근초등학교 선생님들의 지지를 얻어내고 주민 500명의 서명을 받아 구청장 면담 교통행정과 하수과 토목과 등을 다니며 필요성을 설득해 왔다. 이 곳이 철새도래지이고 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곳으로 그 필요성이 절박하고 이 사안자체는 사소한 것일수도 있는 문제임에도 그 장벽이 왜 이리 높은지 모르겠단다.
그녀와 공원 자원활동가들 중심으로 현재 강서구청과 개화육갑문 두 곳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중이다.

밥 먹을 시간이 없이 바쁘게 움직이는 그녀에게 은평구에서도 활동을 시도해야 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계획은 가지고 있다고 한다.
아이가 다니는 북한산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생태학습 프로그램을 시도해 보고 싶다. 몇 년 전부터 생각은 해왔지만 현실화시키지 못하고 있다.
2000~2001년 북한산 국립공원 자원활동을 했던 사람들을 다시 모아 창릉천 살리기 등 뉴타운 사업이 진행되면서 제기되는 환경생태문제를 주민들과 함께 해결해 보고 싶은 욕심을 가지고 있다. 그녀의 계획이 현실화된다면 지역사회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시어머니와 남편은 이런 사회활동에 반대 올해까지만 일한다는 각서도 쓴 적이 있다고 한다. 쉬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는데 일을 놓지를 못한다.
실제 가정내 위기도 있었다. “자원활동가 선생님들이 저보다 10년을 더 산 사람들도 많아 상담창구가 되어주기도 했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너무 많은 시간을 일을 하는데 보내는 것 때문에 집안에서 반발이 크다. 그녀의 일에 대한 집중력이 높아서일 것이다.
가정을 지키지 못하고 이 일에 대한 정당성을 갖기 힘들다는 생각과 가정을 조화롭게 하는 사람이 사회의 변화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활동 초창기보다 훨씬 많은 공을 가족들에게 들인다고 한다. 지나치지 않도록 조율해 내고 싶은 것이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호감을 가지고 길가다가 말도 걸고 목욕탕에서도 먼저 때도 밀어주고 좋은 인상이었다고 생각하는데 요즘은 경직되고 여유가 없어 보이는 것이 아닌지... 내 내면에 여유가 없어서 겉으로 그렇게 드러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자신을 들여다보고 여유를 가지려고 한다. 일을 할 때는 전투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것 같아서 조심스럽다. 성과주의로 일을 하는 경향에 대해 경계하려고 한다. 알콩달콩 재미를 느끼면서 일을 하고 싶은 자원활동가들에게 조금 부담이 되는 게 아닌가 싶어서 자신을 되돌아보곤 한다.”고 인터뷰 초반에 했던 그녀의 말은 여성으로 엄마로 시민단체 활동가로 살아오면서 힘들었음을 드러낸 것이기도 하고 동시에 그 역할을 해오면서 느끼는 자신에 대한 성찰의 말임을 알 수 있었다.

맡은 일을 다부지게 해 낼 것으로 보이는 것이 전투적이라면 그녀는 충분히 전투적이게 보인다. 그만한 전투성이 없이 어찌 7년 세월을 아이 낳고 키우며 시민활동가로 일을 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그녀는 충분히 부드럽기도 했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그녀가 여성으로 엄마로 시민단체활동가로서 녹록치 않은 그녀의 역할을 꿋꿋하게 잘 해 나가길 마음으로부터 빌어주고 응원해 주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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