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호 인터뷰 대상을 결정하는 건 참 어려운 일이었다. 거듭되는 회의를 통하여 '빠리의 택시운전사'였던 홍세화 선생께 부탁을 드려 보기로 했다. 메일을 보낸 다음날 흔쾌한 수락 메일을 받고 연락을 드려 바로 약속을 잡았다.
약속 당일 안 그래도 빡빡해진 시간에 전철 출구마저 잘못 찾아 약속시간에 15분 여 늦었으나 전혀 개의치 않고 우리를 맞아주었다. 한겨레 신문사의 한쪽 회의탁자에 자리를 잡은 우린 홍세화 선생을 상징하는 말이 된 똘레랑스에 관한 질문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은평시민신문(이하 은) : 우리 사회가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데 인색합니다. 사회 전체적으로도 그렇고 진보 개혁세력 내에서도 그런 경향들이 있다고 보이는데 선생께선 그런 현상들을 어떻게 보십니까?

홍세화(이하 홍) : 우리 사회가 이분법적인 사고에 워낙 익숙해져 있습니다. 국가보안법 같은 것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내가 동의하지 않는 견해를 가진 사람은 감옥에 보내야 한다라는 식의 앵똘레랑스 사고에 길들어져 있다는 것이죠. 동의하진 않더라도 이해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 부족한거죠. 동의할 순 없지만 이해는 할 수 있는 영역에 대해 고민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결과라고 할 수 있겠죠.

우리나라의 정치사적인 유산이 그렇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예를 들어 일제 강점기와 같은 엄혹한 상황 독재치하의 민주 대 반민주의 싸움이라는 과정 속에서 오로지 극복대상만을 경험하다 보니 진보 개혁세력 역시 타성이나 습속처럼 이분법적 사고에 익숙해진 것이죠.
현재 같은 경우 민주노동당 지지자들과 열린우리당 지지자들은 서로를 극복대상이 아니라 경쟁대상으로 이해해야 하는데 정치사적으로 그런 관계를 처음 경험한다는 점에서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가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똘레랑스사상은 인간의 엥똘레랑스한 행위나 정신자세에 대한 반성적 성찰의 산물입니다. 이성의 성숙이 낮을 때 차이를 빌미로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고 집단적 광기로 흘러갈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자신과 다른 사상종교성징성피부색깔문화를 가진 사람이 차별 받고 억압 받는 것에 대한 반대를 위한 것에서 나온 것이죠. 앵똘레랑스를 막기 위해서 그만큼의 단호함을 요구하는 사상입니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은 우유부단함이라고 잘못 이해하는데 똘레랑스사상은 차이가 있다고 억압하고 배제하고 차별하는 앵똘레랑스에 대해 맞서 싸울 것을 요구합니다.
패권적 지역주의나 국가보안법처럼 지역이 다르다고 차별하고 사상이 다르다고 억압하는 것에 대해 단호하게 맞서 싸우는 칼인 것입니다.

은: 선생께서 말씀하신 극복대상/경쟁대상이라는 사고로 볼 때 이라크파병이나 비정규직 문제에서도 그렇고 친재벌적 정책을 계속 발표하는 점으로 봐서도 점차 열린우리당의 한계와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열린우리당은 극복대상이 아닌 경쟁대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홍 : 물론 현 노무현정부의 한계가 많이 있지요. 개혁에 대한 철학이 부족하고 의지도 부족합니다. 지금 상부구조만 바꾸려고 합니다. 워낙 상부구조의 왜곡이 심하기 때문에 타당성이 있지만 결국 주류의 교체만 추구하는 셈이지요. 사회의 주류만 바꾼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데 국민들은 하부구조 즉 서민들의 삶이 바뀌길 바라는 마음으로 개혁의 기회를 부여했는데 오히려 하부구조의 변혁에 대해선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것이지요. 이 점은 그들이 자유주의 보수세력임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우리사회의 다양한 상황들을 감안할 때 아직 극복대상으로 바라볼 시기는 아니라고 봅니다. 기대를 가졌던 노동자를 비롯한 다양한 계층에서 이미 극복대상으로 생각하고 있긴 합니다만.

은 : 상부구조와 하부구조의 관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교육기회의 균등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고교등급제와 관련 '학부모가 알아야 할 것'이라는 칼럼도 쓰셨고 평소 무료공교육 도입을 주장하시는 입장에서 고교등급제와 교육문제에 대한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홍 : 노무현정부의 국정운영 철학이 빈곤하게 보이고 실망스러운 면이 많습니다. 개혁의지에 대해서 의문이 들기도 하구요.

현재의 다양한 사안들을 놓고 볼 때 이라크파병 같은 경우 동의할 수는 없지만 미국의 패권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상황에서 석유수급 등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또 경제문제 같은 경우 '기업하기 좋은나라'라는 구호가 널리 받아들여지고 신자유주의의 영향 아래 세계경제와 맞물려 들어가는 상황 아래 사회 구성원들이 경제동물화 되어가면서 정면돌파가 어려운 점이 있을 수 있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육문제처럼 운신의 폭이 넓으면서도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개혁과제를 포기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교육관련 상임위원장 자리를 한나라당에게 넘기는 걸 보고 현 정부와 여당이 교육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다는 점을 확인했습니다. 이런 면에서 교육개혁은 현정부에선 물 건너 갔다고도 보여 절망스럽기까지 합니다.

시대를 바꿀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은 교육에서 비롯되는데 그걸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 발전은 어렵습니다.
고교등급제는 민주공화국의 교육을 붕괴시키는 민주공화국의 정신을 완전히 부정한 것입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경제력이 약한 지역에 산다는 이유로 교육의 기회를 차별 받는다면 과거의 신분제와 다른 것이 없는 것 아닙니까?
지역 계층에 따라 신분제가 고착화된다는 점에서 대단히 큰 문제죠.

은 : 과거와는 달리 일상적인 진보의 치열함이 많이 약해져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의 진보를 구하는 동안 기득권 세력을 정점으로 하는 현 체제는 더욱 강화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는데요?

홍 :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물신주의적 가치관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가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같이 물신주의적 가치관이 팽배한 상황에서 비판적 사회의식 시민의식이 형성될 수 있으려면 교육이 제대로 서야 합니다. 현재는 그런 비판적 시민의식이 설 자리가 없는 상황인데요.
우리의 아이들이 이미 편가르기 등급 매기기에 익숙해지고 부모의 경제력에 따른 힘의 논리가 교육시장을 지배하는 사회는 비관적이라는 것이죠.
지금처럼 주입식 교육하에 사지선다형오지선다형 식의 학생 선발 구조를 바꿔야 합니다. 지금과 같은 교육과정을 바꾸고 대학사회의 서열화에 따른 선발방식을 배제하고 공교육이 온전한 교육기능을 담당해서 비판적 시민의식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은 : 우리나라의 노동현실이 매우 심각한 상황입니다. 노동 내부에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구조조정하에 남은 자와 떠난 자 원청업체와 하청업체의 노동자 사이의 문제들도 있는 상황입니다. 노동자 자신의 각성이 필요하다고 보이는데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홍 : 정치권력과 결합한 자본의 힘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동자의 단결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1400만 노동자 400만 농민을 말하지만 진정 자신이 노동자 농민으로 자각하는 사람은 극소수입니다. 노동자 자신이 노동자임을 인정하지 않는 현실에서 자본은 끊임없이 노동자 서로를 분열시키려 하고 균열을 조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노동계 내부가 분열이 되어 있는 속에서 자본의 지배와 맞서기 위해선 오랜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습니다. 수구세력의 이데올로기가 오랜 시간동안 노동의 가치나 노동3권에 대한 기본적 이해와 노동자 의식의 성장을 가로막아 왔습니다. 중고등학교 교육에서부터 올바른 철학을 가질 수 있도록 노동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노동자 의식을 갖고 사회적 연대에 관심을 갖도록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은 : 교육문제와 관련하여 자녀들이 프랑스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스스로 선택한 결과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홍 : 제 입장에선 프랑스에서 생존은 가능하지만 자아실현은 불가능합니다. 날 때부터 체득한 언어와 문화적 정서는 쉽게 바꿀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지오. 아이는 스스로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사회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은 : 세계적 노동운동가인 조제보베와의 대담 중에 파이프 담배를 즐기는 보베씨가 담배를 필 수 없다고 하니 "이것도 미국 식이군"이라고 했던데요. 선생께서 보시기에 우리 일상 속의 미국문화의 심화현상을 어떻게 보시는지?

홍 : 여러 가지 현상이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물신주의의 지배가 제일 큰 문제인 것 같습니다. 물신주의를 제어할 능력이 약한 사회지요. 사회구성원들에게 사회문화적 소양이 부족하고 미국문화의 영향에 놓이면서 힘의 논리가 관철되면서 염치라는 것조차 찾아보기 힘든 사회가 되었습니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줍니다"와 같은 공격적인 광고문구가 어떻게 가능한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물질의 가치가 인간의 가치를 압도하는 것이 당연한 듯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만큼 물신의 지배가 내면화된 것입니다.이런 가치관이 부모로부터 자식에게 대물림 됨으로서 인간성의 발현을 위한 항체가 소멸되는 사회분위기가 문제라는 것이지요.

은 : 경제문제가 심각한데 무슨 친일청산이며 국보법 폐지 문제로 정쟁을 벌이냐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는데요?

홍 : 말이 안 되는 이야기지요.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고 동시에 가능한 일입니다. 오히려 잘못된 과거를 바로 잡아야 경제문제도 합리적으로 풀어 나갈 수 있지요. 이런 말도 안 되는 논리가 국민들에게 통하는 건 사회구성원이 경제지상주의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수구세력이 과거엔 색깔론 패권적 지역주의 등을 이용하여 여론을 호도했으나 점차 약발이 떨어지다 보니 이를 경제문제로 채우는 것이지요.

은 : 조금 논의를 돌려서 지역의 문제에 대해서 얘기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선생께선 이념에 의한 정당구조가 정착하고 시민의식이 성숙한 후에 제대로 된 지방자치가 가능하다고 하신 적이 있는데요 현재의 지방자치제는 알맹이가 없는 형식적 지방자치제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지방자치가 제대로 자리잡기 위한 대안을 주신다면?

홍 : 시민의식의 차이라고 봅니다. 우리는 근대적 의미의 시민사회를 이제 시작하는 셈입니다. 시민의식 없는 시민은 시민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시민의식이 결여된 상황에서 지방분권이나 지방자치를 얘기하는 건 결국 지역 토호에게 정치적 권력이든 모든 걸 넘겨주는 것 밖에 안됩니다.
일례로 학교운영위원회를 보면 학부모가 시민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참여하는 경우가 다반사고 이 경우 학교운영이 지역토호나 교장에 의해 좌우되다보니 결국 학부모들은 거수기 역할만 하게 됩니다. 민주를 가장한 독재가 이루어지는 것이죠. 이런 식의 지방자치는 의미가 없습니다.

관건은 시민의식입니다.

시민의식은 내가 원하는 교육환경이나 정치환경은 절대로 절대로(강조) 남이 만들어주지 않는다는 자각에서 시작합니다. 시민사회는 봉건제를 뚫고 왕이나 귀족의 권력을 무너뜨리는 과정에서 만들어졌지요. 이렇게 형성된 시민사회는 시민의식이 밑바탕에 깔려있습니다. 우리의 시민의식과는 많이 다를 수 밖에 없지요.

우리가 원하는 사회를 누가 대신 만들어줍니까? 한국인의 정치의식이 높다고 하지만 우리가 바라는 사회를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대신 만들어줘야 한다는 전제를 갖고 그게 안되니 비난하거나 불평을 늘어놓을 뿐입니다. 술집에서든 택시에서든 이런 비난과 불평은 넘쳐 나지만 이건 올바른 정치의식의 발로가 아닙니다.

기본 전제가 틀린 것 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사회는 남이 만들어 주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바로 우리가 만들어야 합니다. 실상 이는 너무나 당연한 말입니다.

은 : 선생께서도 아시듯 저희는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언론입니다. 지역언론의 과제나 문제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홍 : 당연히 시민의식이 바탕이 돼야 할 것이구요 중요한 건 사익추구집단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기득권 수호를 위해 매우 집요합니다. 이들의 집요함에 비해 한국사회에서 공익성 공공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성실성은 상대적으로 많이 부족합니다. 사익추구집단의 강고함에 비해 분자화 되어 있는 것이지요. 일제부역이나 군사독재에 뿌리를 두고 있는 사익추구집단은 어떤 윤리적 정통성도 없다 보니 그들끼리는 강고하게 결집합니다. 이권으로 뭉친 기득권 세력이기때문에 견해 자체도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그들 사이엔 조그만 틈새도 없는 것과 달리 공익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차이는 크게 부각됩니다. 우리가 시민사회 구성원 사이에서 일상적으로 확인하고 노력하여 그들의 집요함을 뛰어넘는 성실성을 가지고 그들의 강고함보다 더 힘있게 단결할 수 있도록 조직적인 문제를 잘 해결해야 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새로운 지역문화를 제시해 줘야 합니다.
재정적인 어려움을 잘 극복해 나가면서 일상 속에서 성실성과 단결을 통한 시민사회 구성원의 결집을 통해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봅니다.

은 : 마지막으로 저희 신문에 주실 말씀이 있으시다면?

홍 : 일상의 덫에 빠지지 말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세계관의 세계로 봤을 때 시민사회운동이나 노동운동이나 언론운동이나 모두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적들 극복대상을 일상에서 만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일상의 좁은 공간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엄혹하고 부조리한 현실에서 소중한 동지들입니다. 자칫 일상의 덫에 빠질 위험이 있다는 것이지요.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이런 소중한 사람들과 조그만 차이때문에 감정적 앙금을 갖지 말고 일상적 성찰을 통해 자그마한 차이는 큰 틀에서 해결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는 거지요.

은 : 오늘 귀한 시간에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홍 : 은평에서 좋은 언론으로 자리잡기를 바라겠습니다.

이렇게 한시간 여에 걸친 인터뷰를 마쳤다. 계속 오는 전화로 무척 바쁘다는 걸 알 수 있었지만 그러한 가운데서도 우리의 질문에 성심껏 응해주신 홍세화 선생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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