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일하는 살림의원에선 만 12세 여자 아이들에게 일면 ‘자궁경부암 백신’이라고 알려져 있는 ‘인간유두종바이러스 예방주사’를 접종합니다. 이 주사를 맞을 때면, 아이들은 진료실에서 일종의 성교육은 들어야 하도록 정해져 있습니다. 저는 종이를 꺼내 그림을 그려가며 열심히 ‘성교육’을 합니다.“자, 자궁경부암을 일으키는 인간유두종바이러스는 사실 사마귀 바이러스랑 같은 종류야. 유두종이라는 게 사마귀거든. 이 바이러스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어떤 종류는 피부에 사마귀를 잘 일으키고, 어떤 종류는 자궁경부암이나 항문암, 구강암 같은 암
LH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 의혹이 공직자 전체의 투기 스캔들로 번져 나가고 있다. 국회의원이나 개발 관련 업무에 종사하는 국회의원 뿐 아니라 경기 시흥시, 하남시, 인천 계양구, 경북 영천시, 고령군 등에서는 지방의원도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부동산 투기에 나섰다는 것이 밝혀져 공무원 전체를 대상으로 한 전수조사가 필요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정보공개센터는 매년 홈페이지에 국회의원들의 재산 내역을 데이터로 정제하여 공개하고 있는데, 이번 사태가 터진 후 해당 게시물의 조회수가 급격하게 늘었다. LH 사태를 계기로 국회의
지난겨울은 너무 춥게 느껴졌다. 유난히 따뜻하게 시작했다가 돌연 큰 온도차를 보이며 어느 해보다 더 추운 겨울 날씨로 변해버렸다. 얼마나 추웠으면 겨울철에 유난을 떠는 미세먼지 조차도 쫓아냈을까?이제는 잔인했던 겨울이 물러나니 황사가 오기 시작했다. 겨울이 잔인하면 잔인할수록 아이스크림은 오히려 따뜻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3층까지 올라오는 계단을 오르면 덥기도 하겠지만, 유난히 지난겨울 아이들은 아이스크림을 찾았다.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이 없다며 투덜거리면서도 3일이 지나면 냉동고에 쟁여두었던 아이스크림이 동이 났다. 아이스크
며칠 동안 지속된 복통으로 오신 분이었습니다. 소화가 잘 안 되고, 좀 더부룩한 느낌이 든다고 하셨어요. 장이 움직이는 소리가 조금 줄어 있어서 배를 이곳저곳 눌러 보았더니, 오른쪽 아랫배를 누를 때 약간 움찔하는 통증이 있었습니다.“혹시 맹장염(충수돌기염)일 지도 모르니, 응급실에 가서 CT를 찍어보는 게 좋겠어요.”“어, 맹장염이요? 저 그렇게 많이 아프지 않은데요.”“맹장염이 사실 아주 많이 아프지 않은 경우도 꽤 있어요. ‘수술하려고 보니까 터지기 직전이었다, 이미 복막염으로 진행했다’ 이런 얘기들 들어보신 적 있죠? 맹장염
정보공개 청구 교육을 할 때마다 수강생들에게 공공기관의 어떤 정보를 알고 싶어서 교육을 듣느냐고 질문한다. 그때마다 항상 나오는 답변이 “구청에서 돈 쓴 내용을 알고 싶다”는 것이다. 물론 정보공개 청구는 구청에서 돈을 어떻게 썼는지 살펴보기 위한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정보공개 청구는 청구하고, 답변이 올 때까지 시간이 걸린다. 자칫 비공개 통지라도 나온다면 더 시간이 걸리고, 이의신청 절차까지 밟는 와중에 더 에너지를 소모해야 한다.사실 ‘구청에서 돈 쓴 내용’은 굳이 정보공개 청구를 하지 않더라도, 이미 구청에서 매일 공개하고
이번 주 의사들의 커뮤니티 사이트에 ‘해외여행부족증후군’에 시달리는 사람들에 대한 코믹한 만화가 실려 있더군요. ‘그렇지, 코로나 시대에는 이런 증후군을 앓는 사람들이 많지, 나도 그렇겠지’ 싶어 웃프게 보았습니다.그러다가 문득 이번 달에 진료 받았던 몇 분의 얼굴이 떠오르며 그냥 여행이 너무 가고 싶어서 우울증에 걸릴 지경인 것 이외에도 실제로 면역력이 떨어지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행부족이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부분이 있다는 거죠. 바로 비타민D가 턱없이 부족해지는 분들이 이번 겨울 유난히 많았다는 것입니다.
나는 방문의료를 전문으로 하는 의사가 아니다. 어떨 때는 진료실에서 일하고, 가끔 방문을 나간다. 나 이외에도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에서 일하는 의사들은 대부분 이런 식으로 일하고 있다. 진료실에서도 진료하던 분들을 가정에서도 돌볼 수 있는 것, 반대로 방문해서 돌보던 분들이 회복된 후에 진료실까지 오실 수 있도록 하는 관계를 지향하는 것이 우리의 방문의료이다. 진료실과 가정을, 병원과 지역사회를 연결하는 바로 그 지점에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의 방문의료가 위치하고 있다.작년 코로나 초기에는 방문의료에 대한 수요가 조금 줄기도 했다.
우리 진료실에서 침대에 애벌레 인형이 하나 놓여 있다. 아이를 꽤 키운 조합원이 진료실에 오는 우는 아이를 달랠 때 쓰라며 가져다주셨다. 신생아의 옆에 길게 놓아 아가들의 키를 재는 용도의 인형인데(맞다, 누구 집에나 있는 바로 그 인형이다!), 애벌레 마디마디가 색색깔이어서 예쁜데다가 만지면 바스락거리는 소리도 나고 질감도 여기저기 달라 아이들을 이목을 집중시켜 달래기에 딱 좋다. 안겨주기에도 알맞은 크기라, 애벌레는 매일 열일을 하고 있다.그런데 진료가 끝나고 진료실을 나가야 할 때, 간혹 애벌레 인형과 함께 집에 가려고 하는
저는 5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딸 넷에 제일 아래로 아들이 있죠. 아버지가 종손이었으니 어떻게든 아들을 낳으려고 하셨던 게 사실이기는 하겠지만 부모님은 딸, 아들 차별하지 않고 키우려고 엄청 노력하셨던 분들입니다. 그런데 정작 주변에서는 저희 남매를 두고 말들이 많았습니다.“아들 낳으려고 그렇게 딸딸딸딸 낳았어?”간혹 저에게 직접 말하시는 분도 있었어요.“네가 아들이었으면 너희 엄마 아빠 고생 안 하고 둘만 키우면 되는 건데, 넌 좀 아들로 태어나지 그랬어?”그걸 제가 어떻게 결정하겠어요. 그런데 세월이 30년 이상 흐르고
환자분이 조심스럽게 입을 떼었다.“사실 갑상선암 진단받았어요. 그런데 수술은 아직 안 했어요. 아직은 암이 작으니 좀 더 기다려서 수술 날짜를 잡아도 된다고 해서, 3개월 후에 다시 초음파 검사 받아보고 결정하기로 했어요.”시선을 살짝 내리면서 담담한 듯 말씀하셨다.나는 그 모습이 안타까웠다.“아무리 갑상선암이 순한 암이라도 해도, 그래도 암인데, 마음이 아주 편하지는 않으시겠어요. 크기가 자라는지 아닌지 보려고 기다리는 동안에도 조금 초조하실 수 있어요.”순간 그녀가 시선을 들어서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갑자기 두 눈에 눈물이 고
살림의원 같은 작은 동네 의원에도 산전관리를 위해 찾아오는 여성들이 있습니다. 산전관리라면 당연히 분만 전문 산부인과를 찾아갈 것 같지만 꾸준히 주치의 진료를 받아온 이들은 ‘나를 잘 알고 있는 의원’에서 이것저것 상담을 받고자 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거든요. 그녀들은 진짜로 임신 전부터 상담을 신청하곤 하는데 임신을 하기 위해 어떤 몸을 만들어야 하냐는 것이 제일의 궁금증입니다. 뭘 먹어야 하지? 무슨 준비를 해야 하지? 당연히 맞아야 할 예방접종도 있고, 검사해 봐야 할 항목들도 있지만, 제가 따로 강조하는 것은 근력운동입니다.“
진료실에서는 예방접종을 좀 미루면 좋겠다거나 거부하려고 하는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아이가 예방접종 후 아토피가 심해진 것 같아 미루고 싶다는 분들도 있습니다. 나름 이유가 있지요. 하지만 그냥 막연히 예방접종 맞추기 무서워서 피하고 싶다거나, 예방접종을 통해 생긴 면역이 직접 그 병을 앓아서 생긴 면역보다 안 좋을 것 같아서 걸려야 한다고 믿고 예방접종을 건너뛰는 분들도 있습니다. 오늘은 예방접종에 대해서 평소 제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정리해서 말씀드릴게요.우선 저는 예방접종을 스케줄대로 맞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서로를 지켜주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줄 기증 얼마 전 난생 처음으로 대학병원 1인실에 입원했습니다. 무릎을 다친 지 얼마되지 않아 입원했던 터라 제가 무릎 수술을 받았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더라고요. (무릎은 잘 나아가고 있습니다) 입원은 제가 아파서 했던 것은 아니고, 조혈모세포 기증을 위해서였습니다. 골수기증이라고도 하지요.골수기증은 15년 전인 의대 학생 시절에 신청을 해 놓은 것이었습니다. 혈액종양학 수업에서 혈액암 환자들을 위한 골수이식의 중요성에 대해서 교수님께 인상적인 수업을 듣고 나오니, 골수기증등록 캠페인데스크가 의
제가 일하는 살림의원은 의료협동조합으로 주민들이 돈과 힘을 모아 함께 만들고 운영하는 곳입니다. 누구나 협동조합의 조합원이 될 수 있고 누구나 진료 받을 수 있는 곳이지요. 처음에 우리가 의원을 만들 때 ‘누구나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의료기관’이어야 한다는 강한 합의가 있었습니다.그런데 사실 ‘누구나 진료 받을 수 있는 곳’은 “누구나 오세요”라고 말만 한다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를 오지 못하게 하는 현실적인 제약, 장벽들이 없어야지요. 그래서 장애인이 진료 받을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는 것이, 살림의원을 처음 만들 때 입지
내면이든 외면이든 존재론적으로 적나라하게 자신을 마주하기 딱 좋은 곳, 그래서 저 깊은 곳이 건드려지기 딱 좋은 곳, 그곳을 여행했다. “은평시민신문에 샘들이 작공일기를 다시 쓰기로 했어. 나누고 싶은 이야기야 차고 넘치지만 우리의 어떤 이야기들을 나눌까? 막상 쓰려면 기묘하게 고민이 돼.”“얘들 한 명 한 명에게 편지를 쓰면 어때?”음, 아이들에게 연애편지를 쓰라는 말이다.“잠은 잘 잤어? ㅎㅎ샘이 고민 있어. 어제 인생특강을 했잖아.. 그 귀한 분을 모셔와 인생이야기를 듣는데 이 느무 시끼들의 그 예의 없음에... 인간에 대한
방문진료를 나가는 댁으로부터 전화 연락이 왔습니다. 한참 환자분의 상태에 대해 보호자분께 얘기를 듣고 설명과 교육을 하고 처방전도 발행하고 다시 방문진료를 나갈 날짜까지 잡았습니다.“어머니 상태는 좀 어떠세요? 공복혈당과 식후혈당도 좀 알려주세요.”“배에 가스가 너무 많이 차시는 것 같아서, 콧줄로 식사 드리는 간격을 1시간 정도 넓혀봤어요. 그랬더니 좀 더 소화를 잘 시키시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요. 식사 들어가고 나서 2시간 지나서 혈당은 170 정도 나오고요, 공복혈당은 요 며칠 안 재봐서 모르겠어요. 의식 상태는 비슷비슷하세
최근 1~2주일 이내에 유난히 대상포진에 걸린 분들이 진료실에 많이 오시네요. 대상포진은 어렸을 때 걸렸던 수두로 인해, 수두 바이러스가 몸에 잠복해 있다가 면역력이 떨어지면 몸의 특정 신경절을 따라 발진, 포진, 신경통이 나타나는 병입니다. 마치 띠를 두른 모양으로 포진이 나타난다고 하여 '대상포진(띠모양포진)'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성인이 되어 면역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우선 노화! 70대 이상의 고령자들에게 대상포진이 잘 생깁니다. 또 이분들은 대상포진 후에 신경통이 영구히 남는 경우도 있어서, 대상포진은 고령자들
언제부터인가 못된 버릇이 생겼다. 지인들이 자식이야기를 하며 걱정과 자랑을 풀어놓을 때면 여지없이 올라오는 마음이 있다. 초등학생 조카를 애지중지하는 동생을 보면서도 여지없이 드는 생각이 있다. 이야기를 듣다 여지없이 옆길로 새 속으로 되뇌고 있는 내 자신을 만난다. ‘입만 열면 걱정해주고, 입만 열면 자랑 아닌 자랑을 늘어놔 주는 이런 존재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 애들한테도…’ 이 못된 버릇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물론 알고 있다. 오늘은 나도 우리 작공 아이 자랑을 하게 될 것만 같다. 나는 위영(가명)이를 5년 전에 만났다. 0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한국에 유행하기 시작할 무렵부터 감염병 전문가들은 이른바 ‘판데믹각’이라고 하였습니다. 판데믹(pandemic)은 신종 감염병이 전 세계로 퍼져 많은 사람을 위협하는 상황을 말합니다. 보건의료가 발달한 21세기에는 치명률이 너무 높거나 증상이 중한 감염병은 판데믹으로 번지기 힘듭니다. 조기에 환자가 발견되어 격리되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코로나19 바이러스처럼 무증상에서부터 중증 폐렴·사망에 이르기까지 증상 범위가 넓고, 잠복기가 2주 이상으로 길고, 잠복기 동안에도 전파가 잘 되는 이런 바이러스들이 곧 ‘판데믹
너무도 식상한 표현이지만 누구에게나 골고루 따뜻하고 모든 아이들이 작공에 발을 들이면서 선생님부터 찾을 정도로 든든하고 한결같으니 괜히 화려하거나 새로운 단어로 바꾸지 않고 불러봅니다.가끔은 한 사람을 낳아 기르는 엄마라는 사실을 잊고 살기도 하고 종종 철없이 내 몸만 챙기며 살고 싶은 마음이 출렁이는 요즘입니다. 9개월에 들어선 아이와 조금씩 합이 맞아가긴 하지만, 잠과 밥이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던 저는 아기가 태어나면서부터 통잠을 자본적이 단 하루도 없고, 밥을 제때 못 먹어 생전 먹지도 않았던 콘플레이크를 먹으면서도 어딘가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