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바이러스가 한국에 유행하기 시작할 무렵부터 감염병 전문가들은 이른바 ‘판데믹각’이라고 하였습니다. 판데믹(pandemic)은 신종 감염병이 전 세계로 퍼져 많은 사람을 위협하는 상황을 말합니다. 보건의료가 발달한 21세기에는 치명률이 너무 높거나 증상이 중한 감염병은 판데믹으로 번지기 힘듭니다. 조기에 환자가 발견되어 격리되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코로나19 바이러스처럼 무증상에서부터 중증 폐렴·사망에 이르기까지 증상 범위가 넓고, 잠복기가 2주 이상으로 길고, 잠복기 동안에도 전파가 잘 되는 이런 바이러스들이 곧 ‘판데믹
요즘 왕진을 자주 나갑니다. 그래서인지 전에 없이 죽음을 앞둔 분들을 많이 뵙게 됩니다. 전공의(레지던트) 시절 자주 사망선언을 하고 사망진단서를 썼던 것에 비하여, 동네 의사로 살아왔던 지난 몇 년 동안에는 죽음이 아주 가깝지는 않았습니다. 동네 주민분들, 친구들의 부모님 장례식에서 마주치는 정도였지요. 제가 돌보던 분들이 돌아가셔서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일들은 동네 주치의로서는 흔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최근 왕진 시범사업에 참여하면서 왕진을 다니기 시작하니, 동네 구석구석 집에서 죽음을 준비하는 분들이 많음을 새삼 느낍니다.제가
매년 초부터 건강검진을 받아야지 생각하지만, 왠지 꼭 건강검진은 10~12월이 되어야 받을 생각이 나곤 합니다. 전국의 각 검진센터 전화기들이 요즘 불이 나고 있는데요, 이렇게 몰리지 않고 편안하게 받으려면 언제쯤이면 제일 좋을까, 저도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건강검진 받을 적기는 2월~7월까지인 것 같습니다.1월은 중순 무렵이 되어야 그 해의 건강검진 대상자들의 명단이 건강보험에서 결정되어 온라인에 입력되기 시작하니, 1월 초에 검진센터를 방문하시는 경우 아직 검진 대상자인지 아닌지 잘 모르는 경우들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소아과 병동에 주치의로 파견을 나가 일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당시에는 스마트폰은 없었지만, 그래도 삐삐를 대신하여 휴대폰이 주치의와 당직 의사를 콜하는 기본수단으로 자리 잡았던 때였지요. 제가 담당하고 있던 5세 소아 환자에게 피검사를 하기 위해 주사실 침대에 눕혀서 병동 간호사들과 함께 열심히 혈관을 찾고 있던 때, 막 혈관을 찾아서 라인을 연결할까 했던 때, 뇌전증으로 입원을 하였다지만 병원 검사에서는 계속 정상이어서 진단이 불명확했던 그 아이가 경련을 하기 시작했습니다.저는 주치의로서 “산소 걸어주세요, 라인 연결해서 수액 틀
여기저기서 감기 예방법이 많이 나오죠? 가만히 듣다 보면, ‘어, 이건 좀 모순인데’하고 느껴지실 때가 있지 않았나요? 감기에 걸리지 않기 위해 몸을 따뜻하게 하라고 했다가, 몸을 찬물에 담그면 감기에 대한 면역력이 높아진다고 했다가 말이죠. ‘그럼 대체 어떻게 하라는 거야?’ 생각이 들게 마련입니다. 평소 건강을 관리하는 방법이 바이러스 유행 시기의 행동 수칙이 될 수는 없습니다. 특히 감기 기운이 시작되려고 하는 으슬으슬할 때는 평소에 좋은 행동도 피해야 하는 행동일 수 있습니다.수영을 한다?수영을 하거나 찬물에 몸 담그는 것은
건강이나 건강에 관한 권리에 대한 이야기들은 흘러넘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성적 권리(sexual right)’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나요? 성적 권리는 건강이나 건강권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성적 권리 없이 건강을 지키는 것이 가능할까요? 산부인과 진료실은 특히 성적 권리와 직결되는 장소입니다. 이곳에서 당신은 성적 권리를 얼마나 실현하고 있나요? 단지 선언이 아닌 구체적인 성적 권리, 진료실 밖의 사회적 환경과 직결된 진료실 안에서의 환자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제가 있는 살림의원에는
저는 조금 독특하게 진료하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입니다. 매주 세 군데의 병·의원을 순회하며 진료를 하고 있지요. 월·금요일은 경기도 구리시의 느티나무협동조합에서, 화·목요일은 이 곳 살림의원에서, 수요일은 구리시 원진녹색병원에서 진료를 합니다. 세 의료기관의 공통점은 인간적인 의료, 적정진료를 추구한다는 데 있습니다.저를 ‘정신건강의학과 순회진료 의사’라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순회진료 모델은 쿠바 의료에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주치의 제도가 잘 정착되어 있고 비용효율이 우수하면서도 사람이 중심에 있는 의료가 특징입니다. 쿠바에는 대략
이 코너는 진료실 일기라는 코너이지만, 실제로 일기를 보여드린 적은 없었네요. 오늘은 진짜로 제 일기의 한 자락을 보여드릴게요.같이 일하는 친구와 얘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의사 구인에 난항을 겪고 있던 우리는 어떻게 하면 가정의학과 의사들이 살림과 같은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으로 일하러 올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친구가 내게 물었다. 맞아, 나는 감기밖에 몰라.나는 대화를 하다가 문득 내가 감기밖에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기밖에 진료할 수 없는 그런 의사가 된 것인가.그래도 의대 다닐 때에는 감기조차 몰랐는데, 이제 감기는
제가 일하는 치과 위에는 요양병원이 있습니다. 그래서 요양병원 환자들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서 진료를 받기도 하는데 이 환자들을 만나는 일은 저를 더 성장하게 합니다.대학치과병원에서 일할 때 만난 환자들은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가 아니어도 대학병원까지 오는 수고를 감당하는 분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 구강 너머를 볼 수 있는 눈이 제겐 부족했습니다. 살림의료사협에서 일하게 된 후 새로운 가르침을 주는 환자들이 많이 생겼습니다.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던 중, 치아 원인으로 발생한 구강 외 누공(볼에 고름 구멍이 생기는 것)으로 응급
제가 요즘 은평시민신문에 ‘진료를 잘 받으려면’이라는 칼럼을 마치 연재기사라도 되는 것처럼 쓰고 있는데요, 오늘은 진료를 잘 받기 위해서 알아야 할 ‘VIP 신드롬’을 설명드리려고 합니다. VIP 신드롬은, 의료기관에서 직원들이 자주 사용하는 말인데요, 공주병이나 왕자병처럼 ‘실제로는 아닌데 자기 스스로를 VIP라고 착각하는 병’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잘해드리고 싶은데, 계속 일이 꼬이는 상황’ 정도라고 받아들이시면 될 것 같습니다.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지요. 의료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의료진의 실수는 치
제가 요즘 왕진을 이유로 진료실을 비우는 날이 생기자, 원래 살림의원에 다니시던 분들이 급작스럽게 아프게 될 때 다른 의원을 찾는 일이 많아집니다. 그러다가 제게 찾아와서 하소연 아닌 하소연을 하시죠.“그때 원장님 안 계실 때, 어디가 아파서 요 앞에 다른 곳에 가서 약을 받아와서…”“그 약 좀 보여주세요, 처방전”“어, 안 가지고 왔는데요, 그냥 원장님이 처방해줘요. 그거 잘 안 들었어요.”“안 돼요. 무슨 약을 썼는데 안 들었는지 알아야,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요.”“그, 그런가…”어떤 환자분께 왜 처
“콧물이 너무 심해요. 감기도 아닌데요.”“언제부터 증상이 시작되었어요?”“사실은 지난달부터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했어요.”저도 몽실이라는 예쁜 이름의 고양이 집사로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분들이 좀 더 행복하게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요, 오늘은 이 친구들과 함께 더 건강하게 생활하는 방법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알레르기가 생기면 어떻게 하나요?‘나는 동물털 알레르기는 없으니까 괜찮아’라고 생각하고 일단 입양해서 키우기 시작했는데 실제로는 알레르기 발견되는 경우들이 종종 있습니다. 알레르기 반응은 어느 정도의 감각이 있어야
신년이 되면 누구나 새해 건강할 계획을 세우실 거예요. 담배를 끊어야겠다, 술을 줄여야겠다, 다이어트와 운동을 해야지 등등. 이런 계획들은 당연히 세우셔겠지만, 오늘은 그 얘기(그 잔소리 ^-^) 말고 우리가 같이 노력해서 바꿔봤으면 하는 것들에 대한 얘기들을 드릴까 합니다.음식을 따로 먹으면 좋겠습니다.혼밥, 혼술을 하라는 말씀이 아니고요, 국이나 찌개를 여러 사람이 함께 떠 먹거나 반찬을 나눠먹는 등의 상황을 줄이면 좋겠다는 말씀입니다. 더 정확하게는 다른 사람의 침이 묻은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이 좋다는 의미입니다.요즘 독감 시
제가 진료실에서 "과일을 조금 줄이시고요"라고 말씀드리면, 당뇨 환자분들은 깜짝 놀라십니다. "과일은 몸에 좋지 않나요? 아무리 많이 먹어도 괜찮지 않나요?"그러면 저는 설명드리죠. "과일에는 과당이 들어 있어서 혈당을 많이 올리게 됩니다. 과일에는 과당! 우유에는 유당! 모두 혈당을 올릴 수 있는 식품들입니다."옛날에는 신선한 과일을 잘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과일이 생산되는 계절에라도 비타민이 듬뿍 들어있는 과일을 많이 먹는 게 몸에 좋을 수 있었습니다만, 요즘은 사시사철 신선한 과일을 먹을 수 있는데다 과일이
저는 수요일에 진료를 쉬고 있습니다. 의원에 내원하는 환자들분은 "수요일에 진료 쉬세요?"라고 하시거나, 혹은 "수요일에는 노시잖아요"라고 볼멘 소리도 하시지만, 사실 수요일에 쉬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대신 매주 수요일마다 왕진을 나갑니다. 간단하게 왕진나가는 날은 청진기, 펜라이트, 설압자 정도만 챙겨서 나갑니다. 하지만 욕창을 관리하러 갈 때는 거의 수술도구를 챙겨가고, 주사를 놓거나 혈액검사를 하러 갈 때만 해도 짐이 많아집니다. 작게라도 진료실과 검사실을 옮겨 가야 하는 셈이니, 예전 의사선생님들의 왕진 가방이 왜
“아, 뭔가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었는데, 잘 생각나지 않네요.”“앗, 잠시만요, 잠시만요, 진료실 다시 들어가서 한 가지만 물어볼게요.”제가 진료실에서 자주 겪는 상황입니다. 분명 진료실에 들어오시기 전에는 의사에게 이걸 물어봐야지 마음을 단단히 먹으셨던 분들이, 진료실에만 들어오시면 약간 긴장을 하시는지 저렇게 말씀하시곤 하시죠. 혹은 진료실 문 밖을 나서는 순간 불현 듯이 기억이 나기도 합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경험이 있으시지요?진료라는 건 의사와 환자에게 조금 다른 경험입니다. 의사, 간호사, 병원 직원들에게 진료실의 상황과
예전엔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병이 '암'이었던 것 같아요. 암 진단받았다고 하면, 물론 요즘도 무섭고 당황스럽기는 하지요. 그래도 예전의 '암=사망' 공식은 깨지고 '암생존자'분들이 많아지면서 암은 누군가에겐 극복할 수도 있는 병, 같이 살아가기도 하는 병, 그렇지만 무섭고 두려운 병 정도로 생각되기 시작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일까요, 사람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병의 자리는 자연스럽게 '치매'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치매가 당황스러운 이유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나를 잃어버리는' 병이어서 그런가 봅니다.치매란 '노화로는 설명되지
청소년기의 친구들, 중고등학생들이 어지럽다는 얘기를 하면서 진료실에 자주 옵니다. 특히 여학생들이 많죠. 대체로 “빈혈인 것 같아요”라고 말문을 엽니다.“저 빈혈인 것 같아요.”“생리양이 많나요?”“음, 아니요, 어지러워서요.”물론 어지러움이 빈혈의 증상 중 하나이기는 하지만, 어지러운 모든 친구들이 빈혈인 것은 아닙니다.저는 '나도 한번 어지러워서 쓰러져봤으면 좋겠다' 싶은 정도로 튼튼한 청소년기를 보냈습니다. 얼굴이 창백해지면서 이마에 손을 짚고 '아'하는 신음을 내며 살포시 눈을 찡그릴 듯 감는 여
최근에 어떤 분이 폴리코사놀이 고지혈증에 좋냐고 물어보셨어요. 폴리코사놀은 쿠바에서 고지혈증 약을 대체하여 개발된 약입니다. 쿠바에서는 심혈관계 질환을 줄이기 위해 위험요인이 있는 국민들에게 의사들이 폴리코사놀을 배포하였고, 이 결과 심혈관계 질환을 국가적으로 많이 줄였다고 보고를 하였습니다.물론 폴리코사놀은 좋은 약이지만, 다른 나라의 연구에서는 이 정도의 효과를 나타내지는 못했습니다. 왜일까요? 왜 전 세계에서 유독 쿠바의 폴리코사놀만 이렇게 좋은 연구 결과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쿠바 사탕수수의 폴리코사놀이 특히 좋아서 그럴
예전 병원에서 일하던 시절, 같이 일하는 동료 선생님의 5살 어린 아들에게 갑자기 문제가 생겼어요. 그 선생님이 퇴근하여 집으로 돌아가자, 아들이 엄마에게“엄마, 엄마가 두 개로 보여.”라고 한 겁니다.“엄마도 할머니도 두 개로 보여. 저기 컵도 두 개로 보여.”초점이 맞지 않아 물체가 2개로 보이는 현상, 복시. 선생님은 겁이 덜컥 났습니다. 엄마가 병원에서 일하느라 바쁜 동안 아들에게 큰 병이 생긴 건 아닐까, 안과적인 문제, 신경과적인 문제 온갖 심각한 문제들을 상상하며 안과 교수님을 찾은 날, 다행히 아들을 꼼꼼히 살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