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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의 철학자로 불린 에밀 시오랑(E. M. Cioran, 1911년~1995년). 시오랑은 파리 대학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한 학생이었다. 그러나 그는 루마니아의 고등학교에서 잠시 철학 교사직을 맡았던 것 외 평생 한 번도 직업이 없었다. ‘공원을 조용히 거닐고 싶다’는 핑계로 미디어 인터뷰에 응하지 않은 그였으나 프랑수아 미테랑(1916년~1996년) 전 프랑스 대통령 관저와는 직통으로 전화가 연결되는 사람이기도 하다. 대학을 다니는 동안 그는 매춘부가 살고 있는 허름한 집의 쪽방을 얻어 생활하고 있었다. 몸을 팔아 생계를 이어가
연재
이우 / 인문학공동체 에피쿠로스
2015.06.01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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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봄날, 연신내 물빛공원에서 인권활동가들과 서부장애인종합복지관 직원들과 지역주민들에게 스티커설문을 했습니다. ‘발달장애인법을 아십니까?’ 스티커설문으로 시민들의 생각을 물어보았습니다.‘은평구에서 가장 차별받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장애인, 비정규직, 이주여성, 성소수자. 시민들의 생각을 들어보았습니다.다른 쪽에서는 ‘그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은평구 인권조례를 바랍니다’‘발달장애인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마을을 꿈꿉니다’ ‘차별 없는 우리 동네’‘누구나 차별 없는 은평구 인권 조례’ ‘모두의 인권이 존중되는
연재
김삼식 / 서장복 마을기자단
2015.05.20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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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이웃에서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너무나 많은 것 같다. 보통사람들이 인연이 되어 친구처럼 사귀며 아름다운 마을에서 함께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이다. 은평구 불광동에 사는 공 모씨는 작년 10월 어느 날 찻집에 들렀다가 수첩을 두고 왔는데 주인이 그 수첩을 보니 스케줄도 많은 사람이고 중요한 내용들이 빼곡히 적혀 있어 찾아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도 전화번호도 모르는 주인을 찾기 위한 일은 힘이 드는 일이지만 중요한 수첩이라고 판단하고, 수첩 속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서 생김새며 얼굴 형태와 키 등을 말했지만
연재
최호진 시민기자
2015.04.27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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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따뜻한 날씨의 토요일 오후, 나 홀로 애 둘을 데리고 불광천을 나온다. 남편은 당직 근무다. 야근에 주말 당직에 일하느라 바쁘고 힘든 것은 알지만‘나도 차라리 일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할 만큼 독박육아는 힘들다. 나는 스물일곱, 비교적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하고 첫 아이를 바로 낳았다. 대구가 고향인 나는 주위에 우리 아이 또래를 키우고 있는 이가 한 명도 없었다. 아이가 6개월이 될 때까지도 감기라도 걸릴까 노심초사하며 예방접종, 집안행사 외에는 외출도 삼갔다. 어떤 날은 너무 외롭다는 생각에 모유수유를 하면서 창밖을 바라보
연재
이현주 시민기자
2015.04.27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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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자녀를 양육하는 요즘 부모 중 많은 분들은 서비스 확대뿐 아니라 더 나아가 관련법안 마련까지, 당당히 권리를 주장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장애를 가진 자녀가 지역사회에서 ‘그나마 살아갈 만한’ 환경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모습에 그분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내고 있는지를 보고 느끼며, 함께 눈물겨울 때가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투쟁을 통해 이루어낸 장애인복지의 밝은 면을 모든 장애인이 골고루 누리지 못함을 이번 성인발달장애인 실태조사를 통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아슬아슬하게 제도권을 벗어난 경우, 정보획득이 어려
연재
김지성 시민기자
2015.04.27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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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올해 44세 오중철입니다. 은평구 수색초, 숭실중, 충암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졸업하고 부모님이 아는 분에게 부탁해서 고양시 일산에 있는 프레스 공장에서 20년 동안 일했고 천만원을 모아서 엄마가 관리해주고 계십니다. 개인적으로 안 좋은 일이 있어 회사는 그만두었습니다. 제 동생도 지적장애인으로 서부장애인종합복지관 직업훈련반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작년 은평구 성인발달장애인 실태조사에 저도 참여했습니다. 조사 결과처럼 하루 종일 집에만 있는 사람들은 TV만 보고 있어서 폐인 같고 행복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는
연재
오중철 시민기자
2015.04.27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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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 마을엔 예술학교 무크지에 작공 이야기 원고를 쓸 때였다. 갑작스레 불어 닥친 임대료 광풍을 마을사람들의 아름다운 보급투쟁으로 막아낸 후여서 일까? 열 다섯에서 스무 살이 되기까지 작공이 청춘이고 청춘이 작공이던 아이들을 세상 밖으로 내 보낸 후여서 일까? ‘겨울나무에서 봄나무에게로’, 황지우의 시가 작공 아이들로 생생하게 피어 올랐다. 작공이 어떤 곳이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고 싶었다. 작공은 나무가 겨울나무에서 봄 나무에로 싹 틔워갈 때온 몸으로 애타고 불타고 버티고 거부하며 막 밀고 올라가천천히 푸른 잎으로 솟아오
연재
장보성 작공 교사
2015.04.22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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