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국회의원을 새로 뽑는 선거의 계절이다. 은평구는 서울에서 장애인구가 제일 많은 3구중 하나이다. 한 지역에서 오래 살아온 사람으로 치자면 발달장애인의 지역주민 수로 은평구를 따라올 지역이 없다. 그만큼 장애인 선거인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뜻이다. 그만큼 국회의원 후보들은 장애인을 위한 공약도 많이 내고 지역에 있는 관련 기관장들도 많이 만난다. 만나서 예산과 숙원 사업 지원을 약속하면서 소속 정당 가입서도 내미는 바람에 진땀을 빼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런데 정작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의견을 직접 듣는 사람들을 선거운동원으
청계천 평화시장 길목에 들어서면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기념관이 있다. 노동운동과 인권의 상징적인 인물 전태일 열사를 내가 처음 접한 것은 1995년 11월 개봉한 그를 다룬 영화였다. 전태일 평전이 대학가 정문 앞에서 여전히 압수되는 불온한 시대에도 영화는 개봉했다. 며칠 전 이곳에서 교사들의 인권 연수가 진행되었다. 여전히 학생들에게 체벌은 필요하고 멀쩡한 학생인권조례도 일부 폐지되고 장애인 학생들 인권은 특수학교나 가라며 국가와 언론들이 공개적으로 말할 수 있는 시대에, 그곳에서 교사들에게 인권 연수를 진행하였다. 서울의 노동인
지난 1일 서울재활병원 뇌병변 청소년 캠프를 따라갔다. 2015년부터 병원을 다니는 청소년들의 독립과 진로를 위해 부모님의 동행없이 장애인 청소년들이 스스로 기획하고 실천하는 캠프다. 이 캠프 주요 행사는 경기도 양주에 위치한 송암스페이스 천문대에서 하루를 머물며 한겨울 깊은 밤에 모두 모여 함께 큰 망원경으로 별을 관측하는 것이었다. 늘 본인들의 꿈과 미래, 진로를 이야기 하기보다 얼른 잘 걸어야 했고, 빨리 장애를 벗어나 정상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아닌 압박을 떨치고 누구보다 안전하게 누구보다 즐겁게 자신들의 꿈을 만들기를 바라는
25년 만에 초등학교 동창으로부터 반가운 전화가 왔다. 부산에서 유명한 사립 초등학교였다. 부유한 자재들만 제비뽑기로 간다는 초등학교였으나 그나마 유일하게 뇌병변 장애를 가진 나에게 입학 기회를 준 학교이기도 했다. 6년 동안 같은 반이 아니었는데도 유일하게 대학 졸업식에 나에게 꽃다발도 건네준 친구였다. 90년대 후반 동창 찾기 서비스로 모임을 가지다가 모두 흩어졌는데 그 친구가 다시 친구들을 수소문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동창은 모두 합해봐야 총 3반으로 180명을 넘지 않았다. 나는 기억하는 친구들이 별로 없었지만 학교 복도에서
얼마 전 사무실 아파트 우편함에 은평구청 장애인복지과로부터 온 과태료처분 통지서가 있었다. 바로 사무실 아파트 내의 장애인전용주차구역 위반 신고 사실을 알리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차 안 장애인전용주차표지가 떨어져 있어서 생활신고앱으로 고발한 것이었다. 시간을 보니 늦은 심야 시간이었다. 장애인전용주차구역은 충분해서 나 때문에 주차 못한 사람도 없었을 텐데 굳이 자격을 확인하고 사진까지 찍는 품을 들여 신고를 실천한 것이었다. 주차 표지를 새로 발급받을려고 구산동주민센터를 갔을 때는 마침 점심시간 직전이었는데 담당자는 직원들과 함께
어릴 때 부모님은 밤늦게까지 급한 일이 생기면 언제나 가까이에 작은 이모에게 우리 형제를 돌봐 달라고 부탁했었다. 이제 우리 사회는 아이가 힘들다는 이유로, 아동을 집에 혼자 내버려 두는 것도, 학교에 보내지 않은 것도 모두 폭넓게 아동학대로 사회적으로 법적으로 판단해 왔다. 무엇보다 아동 당사자가 가졌을 두려움과 공포를 의미 있게 보기 때문이다. 아동학대에 대하여 여러 고려해야 될 상황에도 신고자나 피해자의 신원을 철저하게 보장하고 의심 정황만 있어도 즉시 신고하라고 한 것은 무엇보다도 아동 당사자의 안전과 인권을 무엇보다 지키기
많은 교육현장에서 장애인 차별과 학대 가해자들을 만나면 다들 처음에는 ‘몰랐다’라고 하거나 ‘알려주지 않았다’고 변명한다. 그러나 장애인이 국가적으로 제도적으로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동등하게 ‘의무교육대상자’로 법적 권한과 책임을 교육기본법보다 상위법인 특별법으로 구체적으로 명시한 것이 90년대 중반이다. 40년 다 되어 가도록 여전히 국가가, 교육부가, 교육지원청이, 교장이, 통합 교사가, 특수교사가 어떤 사건에 대하여 미처 알지 못했다고 당연히 하는 것에 대하여 아무도 문제제기 하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 아닐까? 그들이 가
코로나 때문에 문을 닫았던 은평대영학교1층 커피가게가 다시 문을 열었다. 가지는 못했으나 분명 조명이 켜지고 커피는 내려지고 있었다. 이제 학교 정문 밖에서 절대 열 수 없었던 출입문도 지역 주민들에게 활짝 열렸을 것이다. 다른 학교에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안쪽 잠금 장치도 다 뜯어내었으리라. 이 참에 스타벅스 은평대영학교 1호점을 내어 보는 것은 어떨까? 매일 같이 근처 회사원들이 학교 근처를 드나들고 커플들이 데이트를 즐기면서 여기 학생들을 만난다면, 학교 안의 누군가가 학생을 때리고 신발을 던지고 라이터로 위협하면서 학생
구산역에 새로이 생긴 가게에서 커피나 먹자 한 것이 동네 친구들 모이는 저녁 준비 자리가 되었다. 돼지 통삽겹살 스테이크는 수육용으로 잘못 주문했고 로봇청소기는 투다닥 혼자 성내며 돌아간다. 소금 후추 올리브를 한꺼번에 뿌리고 팬을 데워 대충 버터와 마늘 거뭇거뭇 태운 다음 수육살을 숯을 만들만큼 바짝 구워댄다. 그 사이 오븐은 200도로 준비 완료로 계속 삐삑 거린다.어릴 때부터 나는 시골 정지에서 외할머니 제사상을 거들고 부산 단칸방에 딸린 부엌에서 엄마에게 요리를 배우면서 자랐다. ‘정지’는 부엌을 이르는 경상도 지역의 방언이
4월은 장애인 당사자에게 무척 피곤한 달이다. 이리 오라는 행사도 많고 저리 오라는 언론도 많다. 학교와 기관은 일 년 안에 진행할 법정 의무 장애 인권 연수를 꼭 4월에 몰아서 다 끝내려 한다. 전두환 신군부가 서울 올림픽에 국제 여론을 의식하고 국내 장애인들의 높은 불만을 무마하고 장애인들의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권이 급조한 4월 20일(장애인의날)부터 삼성 이건희 활동과 비자금 은닉으로 널리 알려진 세계 안내견의 날(4월 마지막 주 수요일)과 마천루와 셀럽들의 파란색 입기로 유명해진 자폐인의 날(4월2일)까지 장애인 당사자
얼마 전 제주 오름 탐방로에 모여드는 등산객의 돌탑 쌓기로 분화구의 돌들이 무심결 옮겨져서 맹꽁이와 같은 양서류가 햇볕을 피할 그늘이 줄어 생존의 위기에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막대한 자연 훼손도 없고 눈에 띄는 생태 파괴도 없는데 고작 아무 의미 없이 널부러진 돌들을 좀 옮겼다고 수많은 생명이 위협받은 것이다. 앞선 기후 변화에 화들짝 피고 져버린 은평구 봄꽃나무들 사이에 우리 서쪽 편을 감싸는 봉산의 2024년에 마칠 예정인 ‘봉산 편백나무 숲 무장애 숲길 조성사업 때문에 기존 자생했던 참나무와 팥배나무를 마구 베어낸 것을 규탄
구산동의 아파트 시공사에서 전화가 왔다. 새 아파트의 하자 보수 기간 2년이 다 되었으니 보수요청이 끝났다는 서류 확인을 하란 연락이었다. 이렇게 공식적으로 은평구에 소리 소문 없는 인권교육시민장애인단체가 된지 만 2년이 다 되어간다. 장애가 심한 뇌병변 장애인으로서 머리수를 보탰건만 2021년에 비해 2023년 3월 현재 은평구 등록 장애인 수는 45명 줄었다.(은평데이터광장 장애인통계 참조) 코로나 창궐 전 사무실 건물 화재를 피해온 지난 2년 동안 서오릉 너머 구산동은 무엇이 변화했을까? 2019년부터 승강기 미비로 소송을 진
나는 살아남았다. 지난 1월 15일 은평구 기온은 영하 19.5도를 기록했지만 길거리에서 얼어 죽을 걱정 없이, 시설에 강제 입소되지도 않고 나는 여기 구산동에 혼자서 핸드폰을 열어 보면서 살아남았다. 지난달에 비해 난방비 요금이 두 배로 뛰고 휠체어로 접근할 수 있는 대중목욕탕을 찾을 수 없었지만 나는 여전히 살아남았다. 오늘 은평구가 초미세먼지 주의보가 발령되어도 카페마다 흔하디흔한 공기 청정기를 가동시키지 않고 KF94 마스크 쓰기도 어려움이 많지만 멀리 바라 뵈는 북한산과 고양시 넘어가는 서오릉 가는 둔덕의 바람길 덕분에 맑
은평구 구산동은 국수집 가게가 많다. 꽈배기 집도 많다. 오래된 노포도 많은 만큼 옛날 건물도 많다. 어떤 곳은 휠체어는커녕 목발로도 접근이 어렵고 계단은 높기만 하다. 바퀴가 달린 것들이 동네를 구르는 것은 고달프다. 그래서 때로 반가운 것은 포장마차 호떡과 드럼통 군고구마 같은 길거리 음식이다. 바퀴가 구르다가 그냥 접근하기 쉽고 바투 다가서면 벌써 주문 받을 채비를 하시거나 앞에 의자를 치우시니 출입거부를 당할 일도 없다. 우리 동네에서 제일 반가운 것이 특히 큰 마트 옆에서 자리 잡고 계신 할머니 호떡 포장마차이다.호떡은 나
우리 마을 제일 높은 언덕에는 정신장애인을 위한 서울시립 은혜로운 집이 있다. 기초생활수급권리자가 우선권이 있는 정신 장애인 당사자가 본인의 의사에 따라 이곳에 입소하면 그 수급권이 개인통장으로 들어오는 게 아닌 시설 수급으로 바뀌고 주민등록상 주소도 여기로 전입 신고가 된다. 정신요양기관으로서 당사자에게 주거 생활 시설이 된다. 그래서 입·퇴소가 언제든 자유롭다고 홍보하고 안내해 준다. 200명 가까운 당사자가 계시는 이 곳 앞에는 큰 떡갈 나무 한그루가 자리 잡아 고즈넉한 정취마저 더 한다.그런데 은평구 마을 사람들이 이 곳에
구산역에서 서오릉 오르는 큰 길은 버스 종점 두 곳이라 늘 번잡하다. 사람 가는 길 역시 구르는 바퀴 위에 있으면 마치 놀이기구를 탄 것 같다. 울퉁불퉁한 길을 온몸으로 느낀다. 퇴근길에 반찬가게나 마트 앞은 많은 물건들이 인도로 쏟아지고 사람들도 인산인해인지라 목발이나 휠체어로 장보기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그래도 내 바퀴의 진입이 아예 가로막히면 피곤에 절은 직장인도, 가게 밖에서 떨이 판매를 외치던 점원분도 얼른 달려와 연신 사과하며 냉큼 물건을 치워 길을 터준다.때로는 사람들에게 치여 찻길로 밀려날 찰나, 마주 오던 인파와
이제 사람들이 3년 전 코로나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오고 있다. 돌아오는 정도가 아니라 마치 그동안 못한 것을 한 번에 해소하려는 마냥 각종 축제 행사에 엄청난 인파가 빅뱅 한다. 심지어 서울역에 쉬이 탈 수 있었던 승강기도 유아차와 반려견차들이 길게 늘어져 있어 정작 목발을 짚는 자는 기차를 놓칠세라 계단을 내달린다. 코로나 때문에 무조건 고위험군라고 겨우 감옥의 운동 시간만큼만 외출을 허용 받던 장애인들의 일상은 과연 그러할까? UN장애인인권권리협약 제정 당시 최초로 함께 만들던 여성가족부가 풍전등화여서 아무도 관심 없던 장애인-
가끔 사람들이 대중적이고 공식적인 자리에서 나를 ‘단지’ 몸이 불편하신 분이라 소개할 때 마다 참으로 견디기 힘든 불편함이 있다. 과거 ‘장애우’란 말처럼 예우한다고 일컫던 것처럼 장애를 단지 불편할 뿐이라고 타인이 지칭하는 것은 객관적인 표현이 아닐뿐더러 오히려 현실의 차별과 혐오를 은폐하는 미세차별, 먼지차별의 표현이다.누구라도 내 장애를 발견하고 알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이 나의 동의 없이 내 장애를 지칭하는 것은 명백한 개인 정보 유출이다. 내 신체 정보가 필요할 때는 장애에 대하여 지원이 필요할 때뿐이다. 날 때부터 뇌변병